그저께부터 열이 40도에 육박하더니
금요일에 A형 독감 판정을 받은 7세 아들.
엄마 속도 모르고 자기도 유치원 안 가고, 엄마도 회사 안 간다니 일단 신났다.
그러나 엄청 독하다는 이번 독감.
새벽 내내 고열로 끙끙 앓고, 원래도 식탐이 없는 편인데 밥을 거부한다.
귤 반쪽도 겨우 먹는 정도.
평소에는 허용 안 해주는 유튜브도 실컷 보고 있는데,
거기에 플레인 요거트 먹방(?)이 나왔나 보다. 평소 거들떠도 안보는 요거트인데.
"하얗고 아무것도 안 들어있는 크림 같은 그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부리나케 사다 줬더니 절반 정도 먹고,
"그만 먹고 싶어."라고 말한다.
엄마들이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 아닐까?
"엄마, 나 그만 먹어도 돼?" 혹은 "그만 먹고 싶어."
원래도 자주 하는 말인데 독감 걸린 이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다가, 집에 사다 둔 호떡 믹스가 생각나서 물어봤다.
"이준아 호떡 먹을래?"
"호떡? 호떡이 뭔데? 바닷가에서 먹은 그거?"
"응"
할머니, 할아버지랑 무의도에 갔었는데, 아빠가 사 먹던 호떡 귀퉁이를 조금 맛보더니,
기름맛이 좋았는지 왜 아빠 혼자 다 먹었냐며 또 먹고 싶다고 몇 번 얘기했었다.
그렇다면 지체 없이 바로 준비.
포인트는 최대한 바닷가에서 파는 느낌으로!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거금을 들여 산 무쇠팬.
평소보다 기름도 파는 느낌으로 넉넉히 두르고, 혹시 안 먹을 수 있으니 소심하게 한 장만 부쳐봤다.
"이준아, 나와봐 파는 호떡이랑 똑같이 만들어졌어!"
유튜브를 보다 귀찮은 듯 나와서 호떡을 힐끔 보더니,
"우와 엄마 천재야? 냄새가 좋네"라고 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
말만 이렇게 하고 막상 안 먹은 적도 많아서,
심사위원에게 검사받는 느낌으로 식혀서 조각조각 잘라서 입에 넣어주었다.
결과는 대성공.
나는 천성적으로 엉덩이 무겁고 게으른 편인데, 아이가 뭐 먹고 싶다는 말에는 잽싸게 움직이게 된다.
특히나 아플 때 요구하는 음식은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고 구해주든 만들어주든 하게 된다.
이럴 때 '나 극성맞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도 어릴 때 엄청 열나고 아팠을 때, 엄마가 사줬던 새까만 상자에 들어있던 '매운맛 고래밥'을 아직도 기억한다.
평소에 잘 안 사주던 과자인데, 아프다는 이유로 친절하게(?) 한방에 그 과자를 사준 것은 물론,
집에 와서 내가 누워서 먹을 수 있게 까주고 이랬던 기억이 엄청 따뜻했던 기억이다.
어린 나이에 "아픈 게 나쁘지만은 않구나."라고 처음 느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이가 자랐을 때 비 오는 날 후다닥 극성스럽게 호떡을 구워왔던 엄마를 기억해 줄까.
아니 엄마는 기억 못 해도, 사랑받았던 순간만큼은 희미하게라도 기억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