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꼴통이었다.
겸손과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고등입학 전까지 단 한 번도 성적으로 칭찬이나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어항 속 물고기 하나 제대로 못 센다며 주먹으로 머리를 맞고,
초등 고학년 때는 일찍 온 사춘기로 염색을 하고 귀를 뚫고 댄스팀을 졸졸 따라다는 것에만 흥미가 있었고, 정작 학교는 꾸역꾸역 다니며 담임 선생님으로 부터 "은지, 너 정말 짜증 난다."라는 말을 듣고,
중학교에 가서도 굳이 염색을 해서 친구들 보는 앞에서 머리를 가위로 잘리기도 했다.
성적은 초등학교 때는 수학을 4점(40점 아님) 맞았던 게 기억나고(*아무것도 안 쓰고 낸 적이 더 많았는데, 그러면 면담을 하게 된다는 걸 깨달아서 나름 열심히 풀었는데 4점을 맞았다.), 중학교 때는 국어나 사회 등 기본빵(?)이 되는 과목들로 인해 평균 6~70점을 애매하게 유지했던 것 같다. (*경험 상 평균이 이 정도 되면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예 사고 치며 노는 것도 아니고 우수생도 아닌 애매한 안물안궁 학생의 부류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SKY에 가기 위해' 난생처음 공부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성적 우수자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안온한 대우를 받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선생님들의 대우와 나를 보는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끼며, '엄마는 왜 이렇게 좋은걸 진작 알려주지 않았지?'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내 인생을 크게 바꿨다면 크게 바꾼 나의 꼴통 탈출+SKY 입학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96년, 천호동
"아빠, 이대 가려면 공부 잘해야 해?"
초등 1, 2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티비에 이대 법학과 ㅇㅇㅇ학생이 나왔던 것 같고, 나는 아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모두 4년제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부모님은 둘째치고 주변에 친척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명문대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명문대라는 개념을 체감하지 못한 채 먼 나라 얘기로만 알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저 질문을 했고, 아빠는 (아마 본인도 잘 몰랐겠지만)
"그러엄~ 이대 가려면 반에서 1,2등은 해야 할걸?"이라고 말했다.
그때 내 안에서 묘한 감정이 꾸물대는 걸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승부욕이었을 것 같다. 사실 승부욕도 있었지만 '저런 곳에 내가 들어가면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겠구나.' 하는 본능적인 직감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울컥 올라온 감정이 학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나는 책 읽는 거 말고는 10까지도 못 세는 꼴통이었고, 그건 바로 위에 오빠도 마찬가지였고(=보고 배울 대상이 없었고) 부모님의 기대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집에서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만들어 먹으면, "그래그래, 너 요리 고등학교 가서 요리사해라."라고 속 편하게 말하는 부모님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1,2등 해야 간다는 그런 대학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