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아이를 ‘보기만’ 해도 힘든 이유

인생사 주인공 빼고 다 지겨운 법입니다

by 편은지 피디
저기 어딘가에 내 아이가 있다

휴일 공원.

오전 내내 블록 놀이로 각종 작품들을 만들어낸 아들의 오후 선택은 오늘도 놀이터다.


이제 클 만큼 커서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고,

가장 무서운 말인,

“엄마 나 잡아봐~”나 “그네 밀어줘~ 엄마 나랑 같이 놀아줘~“를 하지 않는 나이다.


나보다 또래 친구들과의 놀이가 더 좋은 감사한 나이.

쉽게 말해 아이를 풀어놓고 제대로 그 자리에 있는지, 싸움은 나지 않았는지 근처에 상주하며 중간중간 체크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피곤하고 힘들다.

시원한 그늘아래 돗자리에 앉아 눈으로 팔자 좋게 보기만 하는데도 말이다.


남편은 공원 산책이라도 하고 오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그마저 피곤하다고 사양했다.

그런 나에게 내가 피곤한 이유는 수동적으로 시간을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전히 나의 선택이 아닌 보호자로서 아이 보호를 위해 책임감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병든 닭처럼 앉아있다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내 아이의 얼굴은 살펴봤다.

현재 시각 능동성 300%로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같은 아들 녀석은 기운이 넘치다 못해 벌겋게 익은 얼굴에서 빛이 난다.

나와는 달리 자신이 선택한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각 그나마 능동적인 나의 선택은 독서다.

이 마저 시간을 때우며 읽는 느낌이긴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술에 관련된 책을 가져왔다.

독서만으로는 능동성이 충족되지 않아서, 이렇게 아이패드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나마 글을 끄적이니 굳은 뇌에 시원한 바람이 들고 생기가 도는 것 같다.


나와 비교할 수 없이 능동적인 남편은 이미 30분 전에 공원 근처에 새로 생긴 건물 임장에 나섰다.

여러모로 참 대단한 사람이다.


능동적인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한 놀이터의 열기는 거의 두 시간째 식을 줄을 모른다.


해가 지면 슬슬 하루를 정리하려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오히려 늦게까지 남아서 최후의 용자처럼 놀 수 있게 됐다는 특권 의식에 고취라도 된 냥 더 신날 것이다. (지난 3일간 우리 아들의 모습으로 입증된 실험 결과)


최후의 용자여, 지켜볼 테니 맘껏 놀고 또 놀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