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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Dec 03. 2023

어린 시절 가장 따뜻했던 연예 대상의 추억

기차를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을 꼽자면 연말이었다.

그때의 감흥이 남아 아직도 12월이 넘어가면 설렌다.


코 끝 시린 겨울에 혼자서 플라스틱 컵에 얼음과 사이다를 가득 채우고 티비 앞에 앉아 가요대상, 연예 대상 등 각종 시상식을 보며 카운트다운을 지켜보는 게 6-7살 이후 꽤 긴 시간 동안 나의 연말 루틴이었다.


7살 때부터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 탓에 주로 밤늦게 혼자 거실에서 덩그러니 시상식을 보곤 했는데 딱히 외롭기보다는 황홀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연말 시상식을 사랑하던 아이는 커서 연예 대상에 필참해야 하는 예능국 피디가 되었다.


올해도 씨피 님이 연예대상 당일 우리 팀의 필요한 객석 수를 물어보셨다. 그제야 연말이 왔다는 실감이 났다.

현실적인 기준으론 출연자 도착 관리부터 회식까지 주말에 업무가 추가되는 것뿐일지라도 나에겐 설레는 연말이다.

현재 8살인 우리 아들이 내가 그 시절 연말 시상식을 사랑했던 것만큼 사랑하는 것이 기차다. 거의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아했던 것 같은데 여전하다.


집에 있는 기차 장난감을 다 모아도 100개는 족히 될 것 같다. 심지어 기차 레일도 기종마다 달라서 수십 개다.

우리에겐 이동수단일 뿐인 기차가 우리 아들에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유일하고 소중한 주제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소원도 <폴라 익스프레스>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기차 장난감을 받는 것이고,

그중 제일 사랑하는 기차 기종(?)은 석탄으로 가는 증기기관차이다. 당연히 장래희망도 증기 기관차 기관사가 되는 것이다.

증기 기관차는 현존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구현해 놓은 증기기관차라도 타러 섬진강 기차마을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무시무시하게 먼 그곳을 아이는 본인의 고향인 양 다시 언제 갈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런 아이를 위해 나나 남편은 늘 “기차 좋아하는 아이”를 키워드로 검색해서 작은 기차라도 있는 곳을 다니는 게 일이었고,

지금의 나는 어디를 가든 기차 관련된 것이나 기차 모양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사들인다.


8살인 지금에도 학교에 등교할 때도 입으로는 “칙칙” “추추”하며 기차소리를, 양팔로 원을 그리며 증기기관차 바퀴모양으로 걷는 통에 지각하기 일쑤다.


이제 좀 더 자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차 따윈 관심도 없을 테지만, 지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나는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넉넉히 물을 뿌려주고 싶다.


그러면 먼 훗날 지금의 내가 그렇듯, 삶이 아무리 퍽퍽해도 연말에 설렘을 느끼듯

아이에게 힘든 순간이 올 때 기차를 보거나 이 시절을 떠올리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작은 불씨하나가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거진 다 가봤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혹시 기차 좋아하는 아이가 갈 만한 곳있다면 댓글로 추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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