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잘 자라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나는 놀이동산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도 엄청 좋아한다.
과거에 언론고시에 주구장창 떨어져 스트레스받을 때도 난 에버랜드에 가곤 했다.
강남역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가서 2만 보 넘게 걷고, 폐장 직전까지 놀다 오면 그날은 잠이 잘 왔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놀이동산은 늘 나에게 설렘을 주는 가고 싶은 곳이다.
아이가 어느덧 딱 놀이동산을 즐길 수 있는 최소 신장인 120cm가 넘고, 의사표현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나는 아이덕에 합법적으로(?) 놀이동산에 대한 남은 갈증과 욕구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롯데월드, 서울랜드는 이제 많이 가서 대충 위치도 외울 정도가 되었고, 거리가 좀 있는 에버랜드도 최근에 비를 뚫고 다녀왔다.
에버랜드, 서울랜드, 서울랜드가 3 대장 같은 대기업이라면 어린이 대공원보다 그 아래급(?)의 중소기업 같은 지방 중소도시의 각종 랜드들도 엄청 다니고 있다.
0.춘천 레고랜드(3회 이상 방문)-드래곤 코스터라는 거기선 가장 무서운 기구를 탈 수 있게 되면서 아이의 최애 놀이동산으로 급부상했다.
1.배우 임채무 씨가 운영 중인 두리랜드(최소 3회 방문)
2.파주 하니랜드
3.파주 퍼스트가든(최소 3회 방문)
4.임진각 놀이동산(2회 방문)
5.당진 삽교호 놀이동산(아빠 산소에 다녀오는 날을 꼭 들러서 최소 3회 방문)
6.춘천 육림랜드
7.월미도(최소 4회 이상 방문)
8.민속촌 놀이동산(우리에겐 민속촌보단 놀이기구가 메인이었던 곳)
9.섬진강 기차마을 놀이동산(2회 방문)
10.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내 원더박스(2회 방문)
등등 아마 폐장 직전의 소규모 놀이공원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사실 아이를 놀이공원에서 케어하는 건 너무 힘들다.
현실판 하녀와 다름없다. 햇빛을 가려줘야 하고 선블록도 수시로 발라주며 목은 안 마른 지 흥분해서 화장실을 못 가고 있진 않은지 내내 체크하고, 이것저것 사달라는 것도 달래고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리며 나도 즐겁다는 표정을 지어줘야 한다.
사실 규모가 큰 서울랜드나 에버랜드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위해 봉사하고 나서 해가 지고 폐장 직전 마지막 불꽃축제나 레이저 쇼를 보고 있노라면 ‘아 오늘 나의 육신과 하루 멘털도 이렇게 팡팡 터져 사라졌구나...’하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핑계 삼아(?) 나도 많이 걸으며 놀이기구를 같이 타기도 하고 세상 해맑게 웃으며 빠진 윗니 아랫니를 드러내고 웃는 아이 표정을 보는 게 그저 보람이자 성취다.
그래서 남편이 없을 때에도 2만보를 걸을 각오고 둘이 지하철을 타고 놀이공원은 자신 있게 가곤 한다.
조잘대는 아이 손을 잡고 걸으며 생각한다. 이렇게 손을 꼭 잡고 걷는 날이 몇 해나 남았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까맣고 주름 많고 거친 손이 콤플렉스라 악수를 포함해 남의 손을 잡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초등 저학년 때 여자 짝꿍이랑 손을 잡을 때, “왜 네 손은 농부나 노동자 손처럼 까칠해?”라고 친구가 대놓고 말했던 게 꽤 오래 창피했던 것 같다.
그때는 친구의 말투만 듣고 노동자가 엄청 안 좋은 계급(?)이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 이렇게 평생을 언론 노동자로 살 줄 모르고!
콤플렉스에 기반한 이 모든 상황은 아들이 태어난 뒤 해결됐다. 손을 놓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들덕에 지금도 매일 등굣길을 손잡고 걷는다.
이번주는 결방 주간이라 아이손을 잡고 처음 가보는 육림랜드와 레고랜드를 많이도 걷고 걸었다.
아이를 키우며 철렁하는 순간은 많다.
무언가를 잘못했거나 남들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부족함 많은 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평가한 있는 그대로의 아이의 모습인 웃기고 목소리가 큰 모습.
그냥 이 두 가지만으로 잘 자라고 있구나 하고 안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개수업 때도 기대했던(?) 차분한 태도로 앉아서 수업 듣는 모습대신, “우리 엄마,아빠 저기 왔다!!”며 친구한테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 지적받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래도 잘 웃는 아이의 모습이 과분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