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 인터비즈 기고
무수한 브랜드에서 무수한 굿즈가 쏟아져 나온다. 분명 똑같은 사은품이고 똑같은 1+1인데 어떤 브랜드는 칭찬을 듣고 어떤 브랜드는 혹평을 듣는다. 어떤 차이일까? 실용성을 떠나 어차피 결국은 버리게 될 비효율적인 ‘예쁜 쓰레기’를 굳이 굳이 모으는 마음의 기저에는 바로 ‘팬심(덕심)’이 있다.
<응답하라 1998>의 명장면 중 하나는 H.O.T.와 라이벌 그룹 젝스키스 팬이 싸우는 모습이다. 그 시절 ‘팬’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질타받는 훈계의 대상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팬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분석하려는 노력이나 관심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팬을 분석하는 부서가 없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핵심 부서 중 하나이며, 아티스트도 팬덤 관리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업종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역시 팬덤 마케팅을 적극 활용한다. 팬심에 따라 소위 ‘대박’을 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차례 증명됐기 때문이다.
포스팅 하나로 운명이 달라진 브랜드
2017년 7월, 역사 깊은 장수 국내 치킨 브랜드인 ‘처갓집양념치킨’은 신제품 홍보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새로 출시된 치킨을 주문하는 고객에게 닭 모양의 봉제 인형 ‘처돌이’를 사은품으로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대참패였다. 치킨을 주문하는 사람의 주된 욕구는 갓 튀긴 맛있는 치킨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닭 모양의 솜인형은 아무런 감흥이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디자인도 인형 자체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처돌이는 전국의 처갓집 매장 한구석에 산더미 같은 재고로 쌓여만 갔다.
재고 처리에 근심을 앓고 있던 때, 어느 블로그의 올라온 포스팅 한 건으로 처돌이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처갓집의 신제품 치킨을 먹고 사은품으로 처돌이 인형을 받은 블로거의 리뷰 글이었다. 별다른 것 없는 이 리뷰 글의 한 문장이 처돌이와 처갓집양념치킨의 운명을 바꿨다. 그 한 줄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처갓집양념치킨의 맛은 처돌았지만 처돌이는 처돌지 않았다고 해요.”
이 위트 있는 한 문장으로 처돌이는 엄청난 바이럴에 성공했다. 그는 어쩌다 치킨을 먹고 리뷰 글을 올리게 됐을까? 이 지점에서 팬심이 등장한다. 그는 당시 JBJ라는 아이돌 그룹의 열렬한 팬이었다. JBJ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홍보 겸 먹었던 처갓집양념치킨의 신제품을 팬심으로 따라 먹고 쓴 리뷰였던 것이다.
당시 출시됐던 처갓집 처돌이 인형과 화제의 블로그 포스팅. 출처 : 처갓집, 최만두의 블로그
좋아하는 스타 따라 ‘손민수’
처갓집양념치킨 브랜드의 팬이 아닌 아이돌 그룹의 팬이 쓴 문장이 화제가 된 이후 사람들은 정작 신제품 치킨보다 요상한 모양의 처돌이 인형에 열광했다. 처갓집양념치킨 지점은 물론이고 본사에 처돌이 인형을 재출시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음식을 따라 먹는 것 외에도 같은 디자인의 의류나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일도 흔하다. 이처럼 팬들이 스타가 착용한 패션 아이템을 따라 구매하거나, 스타가 먹은 음식을 따라 먹는 일들을 ‘손민수한다’라고 한다. 손민수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모방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웹툰 〈치즈인더트랩〉의 등장인물의 이름인 손민수에서 유래했다.
처갓집양념치킨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에서 스타들에게 각종 협찬이나 PPL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아하는 스타를 ‘손민수’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팬덤 문화로 정착됐다. 같은 아이템이나 취향을 향유하는 것에 대한 만족과 좋아하는 스타를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팬들이 좋아하는 대상에게 쏟는 몰입도와 구매력은 강력하다. 망할 뻔했던 이벤트를 품귀현상까지 유발하는 대박 이벤트로 탈바꿈 사건으로 만들 정도로 말이다.
우리 일상에 스며든 '처돌이'
"처갓집 치킨의 맛은 처 돌았지만 처돌이는 처돌지 않았다고 해요." 해당 멘트는 밈이 되어 ‘처돌이’ 혹은 ‘처돌았다’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OO처돌이’ 등 무언가를 처돌아버릴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며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포토 카드를 위해 탕후루 93개를 먹어야 한다면?
하지만 단순히 팬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팬들이 쉽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팬덤 마케팅을 잘못 활용하면 되레 질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이었던 대표 아이템 중 하나는 바로 탕후루다. 열 걸음마다 탕후루 가게가 있을 정도로 활황이었으며, 특히 십 대들이 열광했다. 이에 한 브랜드가 탕후루 업체 중 최초로 아이돌 그룹을 모델로 내세웠다. 사실 탕후루 가게는 대규모 자본보다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이기에 인기 아이돌에게 고액의 모델료를 지불하고 기용한 것 자체로 시선을 끌었다.
업체는 톱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탕후루를 먹으면 포토 카드를 주는 파격 이벤트를 시행했다. 아이돌 포토 카드에 열광하는 십 대 팬들을 겨냥한 것이다. 31종의 포토 카드와 팬 사인회 참여 티켓을 사은품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탕후루 세 개를 먹으면 포토 카드 한 장을 주겠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어차피 사 먹는 탕후루에 포토 카드와 팬 사인회 응모권을 추가로 얹어주면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팬들은 탕후루 먹는 것보다 포토카드를 수집하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 31종의 포토카드. 그 말인즉슨 모든 포토 카드를 모으려면 최소 93개의 탕후루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같은 업체의 홍보 전략에 해당 그룹 팬들은 포토 카드 받기 전에 충치가 먼저 생기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해당 아티스트의 이미지마저 나빠질 위기에 처하자, 일반 소비자마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에 업체 측은 아이돌의 기획사와 사전 논의되지 않은 자체적인 결정이자 이벤트였다고 해명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러한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업체의 큰 착오였다.
성공적인 팬덤 마케팅 위해선 ‘팬덤 문화’ 분석 앞서야
앞선 탕후루 업체에 대해 팬들은 업체의 지나친 상술보다도 팬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이벤트를 진행했다는 점에 대해 실망을 표했다. 실제로 탕후루의 주 고객층이 십 대이고 이 중 대다수가 아이돌 팬임을 감안했을 때 다소 안일한 접근이자 대응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나를 몰라주는 기업에 장기적 팬덤이 생기는 건 사실상 어렵다.
팬덤 마케팅은 개개인의 ‘특별한 감정’을 이용한 마케팅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상업적 접근이 아니라 팬의 감정과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팬덤 문화에 대한 분석과 이해. 그 한 끗 차이로 성과가 갈릴 것이다.
해당 아티클은 도서 <덕후가 브랜드에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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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투래빗 출판사·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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