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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J크로닌워너비 Jul 21. 2023

게으름 예찬

게으름과 벗하는 쉼

 장맛비가 거세게 퍼붓는 2023년 7월 17일 제헌절이다. 국내 상황은 침수된 곳의 사상자들로 인해 가슴 아프고 어수선하다. 내게 다가온 공휴일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는 이유다.

 야근으로 늘 긴장 속에서 근무해야 했던 나는, 오늘 아침 만큼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데굴데굴 구른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아무 생각을 안 하려니 오히려 온갖 상상들이 떠오르다가 사그라든다. 그렇게 상상의 바다를 헤엄치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해 놓고 나중에 글감으로 쓰겠거니 한다.

 내게는 황금 같은 시간에 살포시 잠들기도 한다. 달콤한 잠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비몽사몽 간에서 깨어나면 느지막한 오후의 습기와 더위가 날 반긴다. 딱히 뭘 하고 싶진 않아서 유튜브 세계를 유영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만 하면 지구 반대편의 색다르고 신기한 일상들을 볼 수도, 그저 한순간을 즐겁게 보낼 흥미 본위의 영상을 볼 수도 있다. 아니면 강의 영상을 통해 유익한 지식을 배우기도 한다. 나의 쉼은 어느덧 더 분주한 세계로 뛰어들고 있었다.


 몇 개의 영상을 지나치다가 한 남성이 약간은 화가 난 듯한 어투로 독설을 내뱉는 영상을 본다. 영상의 제목은 “게으름 고치는 방법”. 호기심이 일어 검색창에 “게으름”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 본다. 수많은 영상이 “게으름과 무기력을 탈출하는 방법”, “게으름 극복해야 하는 이유”, “게으름 동기 부여” 등등의 제목을 달고 게으른 이들을 질책한다. 마치 게으름은 교정해야만 하는 죄악인 듯 말하는 이 영상들을 보면 나는 더욱 격렬하게 할 일들을 미루고 싶어 진다. 나는 어느 동화책의 주인공이 될 법한 “게으른 청개구리”가 아닐까?

 스마트폰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과연 게으름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죄악일까? 무한 경쟁의 요즘 시대에, 늑장 부리며 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게으름이 용납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은 내신을 위해 경쟁했고, 대학교 시절엔 학점을 위해 경쟁해 왔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학교, 학원, 집을 쳇바퀴 돌던 학창 시절이 기억난다. 10시까지 학원에 있던 것이 기본이던 시절. 때로는 새벽 1시 반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집에 돌아와서 3시 넘어 잠들고, 7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교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모든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이 근면과 성실을 최우선 가치로 말씀하시던 시절. 나는 아무런 의문이 없이 그 쳇바퀴에서 격려의 말들에 취해 살았다.

 의대에 진학하고 나서 성적을 위해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던 나날들이 기억난다. 해부학, 생리학, 미생물학, 병리학, 약리학 등등. 대부분 의대 과목의 공부량은 고등학교 시절에 비해서 압도적이었다. 나름대로 공부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공부하면서 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밤새고, 시험 보고, 자고, 일어나서 다시 밤새고. 이런 시험 기간이 5일이 이어지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시험 전날에 공황 발작 비슷하게 와서 시험을 못 볼 뻔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 견뎌내기는 했다. 한 번의 휴학을 했었지만, 결국 모든 시험을 다 치렀고 병원 실습도 돌았으며 국가고시도 치렀다. 마침내 의사가 되었지만, 인턴 수련 과정이라는 질주하는 레일 앞에 서니 내 인생의 점검이 필요했다. 잠시 요양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모두가 끊임없이 달리는 레일에서 벗어나 잠시 오솔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인턴 수련 과정을 쉬는 것 자체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다. 느림에서 오는 평화는 너무나 낯설었다. 마치 태풍 전의 고요처럼, 무언가 일어나기 전이라 이렇게 평화로운 것인지 불안하기도 했다. 주변인들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 어린 말로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선택한 여유로움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어느 날부터일까? 나는 학창 시절이나 의대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이 나에게 충실한 삶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루를 공부에 몰두하며 정신없이 보내던 시절보다 침대에 늘어져서 자유를 만끽하다가, 글 몇 자 적는 것이 더 충만하고 보람찬 삶이라니. 아마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네 게으름을 정당화하지 마라”라고 말할 듯싶다.

  게으름은 쉼으로 인도하는 문과 같다. 자신을 점검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에게 게으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으를 수 없는 인간은 각박한 삶의 꼭짓점에서 낙하할 수밖에 없다. 신이 아니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에는 게으름은 특별한 계기 없이 자신이 사람임을 깨달아가는 필수 과목의 하나다. 제때 휴식하는 법을 모르고 게으름을 모르는 사람은 항시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나태하다고 표현해도 좋고, 게으르다고 해도 좋다. 내 삶은 타인의 소견에 맞춰주기 위한 가벼운 삶은 아니다. 오히려 홀로 느슨한 게으름을 스스로 익혀갈 때, 지혜가 무르익어가고, 창작의 에너지가 샘솟는다. 게으름과 벗하는 쉼 속에서 나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경륜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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