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렇게 생각이 많았던 해가 있었나.
일을 안 해도 걱정이고, 일을 해도 고민인 이상한 인생
2023. 04
"요즘 뭐 하세요?"
대화의 포문을 열기 위해 무심코 던졌을지라도 백수에게는 세상 잔혹한 질문. 친한 친구들에게는 나 놀아~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예전 동료라던지, 얼굴이 흐릿해져 가는 친구에게는 솔직한 대답을 내놓기가 애매한 질문 중 하나. 아니 어쩌면,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일'이라는 걸 하지 않고 지낸 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뭐 하고 지내냐며 연락을 해오곤 하는 지인들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사회생활이니까. 하지만 단순하고도 간결한 저 질문의 대답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
월요일에는 글을 쓰고요. 화요일에는 중국어 공부를 하고 운동도 다녀와서 글을 쓰고요. 수요일에는 취미 생활을 하고요.. 이렇게 지내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쌓여 네 달째.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이루어지는 하루하루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 마저도 돈이 들어가는 일들이 대부분이니, 통장에서 야금야금 빠저나 가는 돈을 볼 때면 이 생활도 언제까지 가능할까 싶어 진다. (다이어트도 건강하게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으니)
2023.06
진짜 간만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왜 인지 모르게 집중력도 바닥이고 글도 써지지가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의미 없는 글을 남기고 있다. 분명 언젠가 이 글에 살을 붙여 세상의 빛을 보게 만들겠지.
수입이 0이었던 상반기에는 나 나름대로의 생활 패턴이 있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분명 백수였던 때와 비슷한 패턴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어설프게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출퇴근하느라, 밤낮없이 일하느라 바쁜 TV방송과는 조금은 다른 플랫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만만하게 보았던 영역이 주는 압박감은 의외로 어마어마했다.
촬영 하루를 위해 보고용 페이퍼를 만들고, 구성안을 수정하고, 대본을 작성하고 이 모든 걸 위해 가끔은 내가 여기에 왜 앉아있는가 고민하게 만드는 회의를 여러 차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생략되었지만. 자료조사를 도맡아 줄 후배가 없고, 책임의 부담을 덜어줄 선배가 없이 홀로 일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세상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2023.08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 일을 할 사람은 많다"
저 문장이 1년 전까지 해도 일을 대하는 태도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24시간 일만 생각하는 나에게 도움을 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실제로 대체 가능한 인간이 되어버린, 이곳에 내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기에 저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것이 우울증인가 무기력함인가를 생각하며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다 보면 하루가 훅훅 지나간다. 분명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는 듯한 이 느낌.
인터넷에서 "회사에 일이 너무 없어서 고민이에요"라는 고민을 보면, 월급루팡 개꿀!이라고 답을 달고는 했는데 실제로 내가 이 상황이 되어보니. 본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드는 게 사실이다. 분명 그곳의 일상이 그리운 것은 아닌데, 어느새 나는 그곳의 패턴에 맞춰진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음. 지금도 집중이 1도 안 되는 게, 밖에 나가서 생각 정리를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