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7년 차 QA

1. 17살 여고생,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입학해 삼성전자에 합격하다.

by 박지선

이 글은 내가 QA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면서 있었던 여러 우여곡절과 스토리를 풀어낸 글이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IT 업계에서 구직을 하려는 고등학생들이나, 이미 QA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쌓고 계시는 QA 엔지니어 분들에게 소소한 읽을거리가 됨과 동시에 내가 어떻게 커리어를 쌓게 되었는지 나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우당탕탕 마이스터고

R21363328602058.jpg 전교생 120명 중 1등으로 입학해 한 입학 선서.

"IT가 미래다!" 라며 엄마가 던져준 마이스터고 홍보지에 반해 지원했던 마이스터고에 얼떨결에 수석 입학해버렸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목소리에 아랑곳 않고 이 길에 발을 내디뎠다.

학교에서 보낸 3년은 정말 행복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수능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을 보며 상대적인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고 재밌었다.

마이스터 고등학교는 '전문적인 직업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산업계의 수요에 직접 연계된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이다. 그래서 배우는 과목부터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 많이 다르다. 물론 국어, 수학, 외국어와 같은 일반 교과목도 배우긴 했지만 그보다 "JAVA", "C", "C++", "C#", "정보보호"와 같은 전공과목을 듣는 시간이 더 많았다. 첫 전공 수업 날, 학교에서 나눠준 노트북으로 비주얼 스튜디오를 갓 깔고는 흰색 배경에 "hello, world!"를 적고선 콘솔 창에 출력된 것을 보고 "와, 이제 시작이구나" 하며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뒤로 갈수록 넘쳐나는 과제와 해결되지 않는 버그들에 머리를 쥐어짜며 고통스러워 하긴 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




간절했던 첫 취업 준비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삼성전자 마이스터고 전형에 지원하는 기회가 왔다. 입학 전부터 선배들의 취업 명단을 보며 막연하게 "와, 나도 삼성전자에 입사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그 기회가 눈앞에 온 것이다.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은 교내 성적 50%였다. 나름(내 입으로 말하자면 쑥스럽지만) 전교 순위권에 들었던지라 걱정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고, 그 이후로 내 인생 최대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27살인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걸 정말 간절히 원해서 이루어 본 적이 있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삼성전자에 지원하고 취업에 성공한 얘기를 시작할 것이다.

지원 서류를 100번 고치고 고쳐 제출하고 삼성인이면 누구나 치르는 SSAT 시험을 통과했다. 이때까지는 사실 실감도 안 났고 남들이 하는 만큼만 딱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진짜는 면접에서부터 시작된다. 특이하게도 마이스터고 전형이라서 그런지 일반 면접처럼 앉아서 진행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PR 하는 PPT를 만들어 면접관에게 발표하게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들이라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그들의 인성과 살아온 과정을 보고 싶기 때문 아녔을까?) 어떻게 하면 더 기억에 남을까, 어떻게 하면 더 눈에 띌 수 있을까 고민 또 고민하며 PPT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아, 포트폴리오는 면접관들이 보시기 좋으라고 고시촌에 가서 제본을 맡기기도 했다. 그런 작은 정성과 성의가 보여서 날 예쁘게 봐준다면 백번이고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가가 지방인지라 서울을 오가기 편하기 위해서 할머니 댁에서 PPT 발표 준비를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받는 어마 무시한 취업 스트레스에 18시간을 자고 6시간을 깨어있었는데 그 6시간을 전부 화장실에서 보냈다. PPT를 담은 노트북을 통돌이 세탁기 위에 올리고, 맞은편 거울을 보면서 몇 번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었는지 모른다. 누구나 아는 큰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주변 가족들의 응원을 생각하며 그 시간을 버텼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죽을 듯이 준비하니 면접 당일이 되어도 떨리지가 않았다. 면접실 앞에 갓 대졸 신입사원들을 안내자로 앉혀뒀는데 그 선배가 이렇게 안 떠는 학생은 처음 본다고까지 이야기할 정도였다. 원래도 조금 대범한 편이라 어른 셋을 앞에 두고서도 세탁기 앞에 서서 발표하는 것처럼 물 흐르듯 PPT 발표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감사합니다."를 내뱉었을 때 솔직히 (거만해 보이겠지만) 나는 붙었다!라고 생각했다. 앞에 계신 면접관들의 표정과 반응을 보고 했던 생각이 아니라 내 최선을 다했으니 이건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면접관 중 한 분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셨네요."라고 칭찬해주셨을 때의 쾌감이란.. 아직 잊지 못한다.



엄마, 나 합격했어

동아리방에서 노트북으로 정각이 되기까지 속으로 카운트 다운을 외쳤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로딩 창이 사람 애간장을 이렇게 녹일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 결과는 "축하합니다!"로 시작되었고 노트북을 바로 덮고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받자마자 붙었다고, 그렇게 해내고 싶던 것을 해냈다고 전했고 엄마는

"알아. 너 붙을 거 내가 알았어."

라고 해줬다. 나는 내가 붙었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날 이렇게 믿고 멀리서 응원해줬다는 사실이 더 기쁘고 벅찼다. 몇 개월 동안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으며 준비했던 삼성전자에 합격하다니, 나 자신이 대단하고 대견했다. 엄마는 내가 삼성전자에 합격한 사실을 동네 미용실 아줌마까지 알도록 소문을 열심히 내고 다녔다.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여담) 모든 취업하는 고등학교에서 그렇듯 합격 발표날은 초상집이다. 학교 내에서는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운명이 나뉘었고 불합격한 사람들은 눈물을 보였고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었기에 합격해서 방방 뛸 것 같은 마음을 내색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성공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겐 첫 실패였으니 그들의 불합격을 위로하고 안아주는 수밖엔 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기업들의 면접 결과에 이런 상황이 올 걸 생각하니 왜인지 마음이 측은해졌다.



그래서 왜 QA팀을 선택했는가

제목 없음.png 인턴 시작 전 오는 메일. 정직원과 같이 통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겨울방학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총 3개월 인턴 생활을 했다. 인턴 생활이 끝나고 부서 배치를 앞두고 있었을 때 인사팀에서는 TO가 있는 팀이 직접 인턴사원들에게 각 팀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서는 원하는 부서가 있는지에 대한 1:1 미팅에 참여하게 되었다. 소프트웨어팀에서 찐 개발자로 거듭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프린터기(임베디드)를 개발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QA팀을 설명하는 분의 입담에 홀딱 반해 1:1 미팅에서 저는 QA팀 아니면 다른 곳엔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인턴치고는 꽤나 당돌한 말을 해버렸다.(좀 무례했을지도 모르겠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팀도 당연히 대단하지만 개발한 산출물을 검토하고 버그를 발견해 리포트하고 다시 그 버그를 확인하는 활동이 더 매력 있어 보였다. 게다가 자동화한 기기들이 테스트 랩에 쭈욱 줄 서있고 그 기기들이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지만 알아서 터치되며 테스트하고 있다는 게 너무 멋있었다.

정말 QA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뿐이다. 여러 면접에서 왜 QA 엔지니어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만 정말 죄송하게도 제가 QA 엔지니어를 선택한 것은 고작 18살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와! 재밌겠다! 해보고 싶다! 멋있다! 가 그 이유이다.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할 때마다 어떤 대단한 이유로 둘러대야 하는가에 대해서 머리가 아프다. (이제 그런 질문은 그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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