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2023> 리뷰
새해 첫날에 영화 '괴물'을 봤다. 작품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국내 팬층은 탄탄하지만, 그의 이전 영화를 봤을 때 내 취향은 아니었어서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하지만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과 지인들의 거듭된 추천으로 관람했다.
이 영화는 잘 만든 퀴어 영화다.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해서 퀴어 영화인지 몰랐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니 영화가 암시하는 바를 따라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퀴어라는 소재 자체에 집중한 탓에 영화적 완성도를 뒷전으로 둔 영화들이 있는데, 그런 영화를 볼 땐 영화가 해야 할 바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많은 퀴어 영화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면 영화 속 사건은 세 인물의 관점으로 해석된다. 어느 날 동네 상가에서 발생한 화재가 기점이다. 순서대로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미나토 학급 담임인 호리 선생님, 그리고 미나토의 관점이다. 사오리 관점에서 호리 선생님 관점으로, 그리고 미나토의 관점으로 넘어가면서 작중에서 알 수 없던 사실들이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사랑하는 아들이 왜 이상행동을 보이는지 누구보다 궁금했을 사오리, 인상이 무서워 학생들에게 더욱 친절하게 다가가려 했던 호리 선생님.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미나토를 세심하게 관찰했을 이들이다. 그랬던 그들에게조차 미나토가 '괴물' 같아 보였던 건 한 명의 인간이 관찰하는 타인의 모습이 얼마나 알량한 지 극적으로 드러낸다. 감상자 입장에서도 미나토가 겪은 사건들을 보고 나서야 미나토와 동급생 호시카와 요리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미나토와 요리가 게이임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장치는 단 하나도 없다. 그저 아역배우들의 심리묘사와 몇몇 대사를 통해 암시할 수 있을 뿐이다. 게이인 인물들이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와 사건들이 있다. 그 사건들이 무심하게 시간순으로 이어진다. <괴물>은 감상자들에게 소수자에 대해 어떤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훌륭한 각본, 배우들의 연기, 아름다운 이미지와 음악 같은 영화적 장치들이 만드는 눈부신 엔딩이 어떤 감정을 유발한다. 나에겐 그게 연민이었고, 불완전해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소수자 얘기를 더 꺼내보면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문장은 큰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그건 틀린 명제라서가 아니라 힘을 잃어서다. 나 역시 사회가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없이 그들을 배척할 생각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건 나 자신의 설득력과는 별개다. 논쟁적인 이슈는 논쟁적인 이유가 있고 대부분 한쪽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개입이 필요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미움받는 순수를 보라고, 선의로도 만들어지는 잔혹동화를 보라고.
말과 설득에도 내구성이 있어서, 처음엔 단호했던 주제의식도 반복해서 사용하면 닳고 만다.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문장은 마모됐다. 그래서 가슴 저린 이야기가 필요하고, 그 구성이 게을러서는 안 된다. 영화 괴물 같은 걸작이 필요하다.©(2024.1.21.)
+ 이미지상의 필름그레인이 돋보인다. 할레이션(Halation) 효과도 눈에 띄었는데,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할레이션 효과는 특히 많이 쓰는 것 같다. 필름 그레인, 할레이션 효과가 이 영화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를 감상한 지 3주쯤 지난 관계로, 애석하게도 그 외 이미지상 디테일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 이런 똥글로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어떤 영화를 봤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어 감상한 콘텐츠들은 웬만하면 기록해놓으려 한다. 이 글은 비전문가가 영화를 딱 1번 감상하고 쓴 글이므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이 리뷰를 의심하시고, 전문가가 이 글을 보신다면 글쓴이의 짧은 식견에 혀를 차며 비판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