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얼마 전 집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한 문건을 발견했다. 3년 전 한국기자협회와 삼성언론재단이 코딩을 주제로 연 강연이었다. 이날 연사는 김민성 한경닷컴 뉴스랩팀장님과 같은 회사, 같은 팀 소속인 엔지니어 겸 기자 분이었다. 강연에서는 코딩을 배워야 하는 이유, 코딩을 활용해서 만든 콘텐츠 사례를 설명했다. 그날 강연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많은 여운을 줬고, 듣고 나서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도 많았다. 코딩을 알고 싶어하는 언론인의 향학열이 느껴졌달까.
이날 강연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것 같은데- 한 참가자가 "기자도 코딩을 배워야 하냐"고 질문했다. 발표 연사인 팀장님은 이렇게 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뉴스룸을 엔지니어에게도 개방하시면 됩니다." 보수적인 뉴스룸 환경을 생각해보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기자가 코딩을 배워서 회사 뉴미디어 콘텐츠에 활용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2014년 뉴욕타임스 스노우폴 보도를 계기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시도하는 언론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안 맞니 어쩌니 해도 의미있는 성과물도 있었다.
사진=픽사베이요즘 노코드 프로그램이 많이 주목받지만- 코딩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있다. 코딩할 줄도 모르는 글쟁이가 말하기엔 섣부르지만. 내가 남의 어록과 아이디어에서 배운 바는 이렇다. 한경닷컴 뉴스랩팀장님은 강연에서 "개발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코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업무 협장에서 코딩을 가미한 뉴스 콘텐츠를 만들려면 개발, 기획, 디자인 등 여러 부서, 담당자와 소통해야 합니다. 개발물 구조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정확하게 요청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동상이몽으로 끝나버리죠. 코딩을 배우는 최종 목표는 '문제해결'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앞서 업무와 생활 속에서 컴퓨터적 사고를 일상화해 더 나은 삶, 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을 기르기 위함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어록도 인용했는데 주워섬길만 했다. 게이츠는 "이 나라 모든 사람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합니다. 프로그래밍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사고의 범위를 넓혀주고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며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을 생각할 힘을 길러줍니다"라고 말했다. 강연에선 컴퓨터적 사고와 먼저 배우면 좋은 프로그래밍 언어(파이썬)도 제시했다.
최근 팀 쿡 전기를 읽었는데 그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쿡은 기회만 되면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외국어보다 코딩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코딩은 글로벌 언어입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70억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지요.” “코딩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꿀 능력을 줍니다. 내 생각에 코딩은 가장 중요한 제2의 언어이자 유일한 글로벌 언어라고 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 이 말에 좀 더 울림이 컸다.
사진=애플애플은 ‘누구나 코딩을 할 수 있다(Everyone Can Code)’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선뵀다. 2014년에는 코딩 소프트웨어 '스위프트'도 도입했다. 2017년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쿡은 “우리는 하드웨어 측면뿐만 아니라 개발자의 도구로서도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구가 훌륭해야 그들이 최상의 방법으로 하드웨어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스위프트를 만든 우리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코딩을 배워 최신의 하드웨어를 보다 잘 활용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iOS와 맥을 위해 더 좋은 애플 플랫폼 앱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말로 해석된다(리앤더 카니의 '팀 쿡' 전기 인용).
이들의 말을 정리하면 코딩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1.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려면 컴퓨터적 사고가 필요해서, 3.컴퓨터적 사고는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사고 범위를 넓혀 더 나은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기 때문, 4.코딩은 글로벌 언어로 전 세계 수십억명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 5.(특정 기업에 한정됐을 수 있지만)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하드웨어 활용도를 높일 수 있고, 이로써 사용자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코딩을 배우면 좋은 이유에 더 가까운 듯.
물론 배움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은 코딩을 배우기 앞서 이걸 배워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할 듯하다. 한경닷컴처럼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고유한 콘텐츠를 만들겠다거나, 내가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는 데 코딩이 도움될 수 있어서 배우겠다거나. 그냥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누구든 시간은 한정돼 있고. 막상 배워도 써먹을 데가 없으면 시간과 비용이 아까우니. 불필요한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어릴 때 배우면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다루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레고 부스트나 마인드스톰처럼 말이다.
사진=픽사베이컴퓨터 사고를 배우고, 생각을 트이게 하며, 능력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코딩을 배워도 좋겠지만- 꼭 코딩이 아니어도 그걸 키울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다. 노코드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일 듯하다. 챗봇 빌더 글을 쓰면서, 구글 티쳐블 머신으로 마스크 착용 인식기 만들기를 실습하면서, 북저널리즘에서 노션 대표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결은 다르지만 최근 AIaaS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누구나(정말?) 챗봇을 만들 수 있으며, 프로그램을 만들고, AI를 응용 프로그램에 도입할 수 있는 장치는 이미 많다.
사용법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개발자가 아니라도 쉽게 쓸 수 있다고 글을 쓴 사람으로서 찔리는 말일 수 있는데. 튜토리얼 영상을 보거나 직접 프로그램을 만져보면 녹록지만 않았다. 처음은 원래 어려운 법이지만. 그래도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도록, 코딩할 줄 몰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장치가 나와있다. 이제 기술기업만 이런 걸 쓰는 시대가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그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배워서 응용하는 것도 내겐 간단치 않으니 그걸 좀 더 잘 활용해보고 싶기도 하다. 무료로 쓸 수 있는 도구도 있고.
그래도 코딩을 배우면 기본기부터 제대로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딥러닝을 다룬 책 서평에서도 'GUI 도구를 쓰더라도 결국 기본부터 배워야 한다' 이런 문구를 읽은 적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코딩에 관심이 생긴 건 첫 직장에서 '2016 온라인 코딩파티' 기사를 쓴 게 계기였다. 엔트리교육연구소에서 나온 '엔트리 블록형 코딩 미션' 중 '엔트리 학교 가기' 미션이라는 걸 실습하면서 이를 기사 도입부로 인용했다. 장난감 다루듯 하는 데 흥미로웠다. 이듬해 소프트에듀페스트에서 소프트웨어 강연을 듣고, 코딩 장난감 부스를 돌면서, 레고 코딩 장난감 간담회를 다녀오면서 더 관심이 생겼다.
사진=픽사베이성인보다 어린이를 위한 제품이었는데 내 수준에 맞아 보였다. 특히 저학년 수준. 그러나 관계자도 말하길 일단 이렇게 시작하되, 일정 수준부터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송한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결과물을 내려면 장난감 갖고 조립하며 노는 수준만으로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iOS 앱을 개발한 80대 일본인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그 당시)도 그리 늦지만 않은 듯하고. 뭐, 그랬다. 직접 배우면 더 통찰을 얻겠지만 그 전에 이를 둘러싼 주변 지식도 배울 게 많을테니. 레고나 마텔같은 장난감 회사는 전부터 스마트 토이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어린이에게 스마트폰이 장난감보다 훨씬 재밌기도 하고.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앗아갈 가능성을 두고 오래 전부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그 논쟁도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이고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기술이 사회를 파괴력있게 혁신하면서 누군가는 손해 보고 등 떠밀린다. 어떤 이는 그런 사람의 일자리까지 신경써줘야 하냐고 한다. 그런 사람의 생존이 위협받는 데 구조 변화가 영향을 줬다면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의 경제활동은 국가 재정에도 영향을 주고. 정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공적이다. 난 AI와 일자리 잠식 갈등도 그런 맥락에서 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이에 따른 갈등을 중재하며 때로 규제하는 것도 당연하고. 규제가 실효성이 부족하면 문제이지만.
이는 이미 일어나는 변화이고, 그 질문은 계속 던지면서도 스스로도 AI를 사용해 자신의 능력을 증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문제를 돌아보면서 AI 또는 기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뭔지, 또는 현재 기술이 내게 줄 수 있는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있는지 그걸 내 업에서 찾아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나아가 그걸 내 업에 응용하면 내게도 가능성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내 선택지도 다양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거기에는 이반 자오 노션 대표와 북저널리즘 인터뷰 내용이 영감을 주기도 했다.
사진=픽사베이북저널리즘에서는 '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왜 필요한가?'라고 자오에게 물었다. 자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모든 도구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 뒤 질문에서도 자오는 더 많은 사람이 각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일관되게 밝혔다. 현재 극소수만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수정할 수 있다며. "항상 코딩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컴퓨팅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그의 비전이라고.
다시 노코드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오면- 난 자오의 이 말이 노코드 프로그램 의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드랙앤드롭만하면 되는 GUI 기반 프로그램 덕분에 이제 누구나 뉴스레터를 만들어 고객 또는 독자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 참 기여하는 게 많은 도구다. 그걸 AI로 넓혀 생각해보면- 요즘 나오는 AIaaS도 노코드 프로그램과 같은 편의성을 무기로, 기술 전문가가 아닌 개인 또는 기업의 AI 활용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될 수 있다. 기술의 민주화가 자기개발의 민주화를 이끈달까. 이것도 사용법이 처음에는 쉽지만 않을테니 튜토리얼을 잘 공부하고 응용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