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스톡홀름 여름을 떠올리며

가장 좋았던 건 백야

by 딱정벌레
스톡홀름을 떠나 핀란드 헬싱키 투르크항으로 향하는 실자라인 배에서 찍은 백야. 사진=딱정벌레

북유럽에서 가장 먼저 여행을 시작한 나라는 스웨덴이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로 입국했지만 들어온 즉시 바로 스웨덴으로 이동했기 때문. 아시아나 직항을 타고 오슬로에 갔는데 그게 그 회사에서 그해 처음 열린 거라고 들은 듯하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가까워서 육로로 버스 타고 이동했다. 솅겐 조약을 맺고 있어서 오가기가 자유로웠다. 노르웨이 물가가 비싸서 스웨덴 와서 쇼핑하고 가는 현지인도 있다고 들었다. 북유럽 물가는 대체로 비싸지만. 유로화 환전해서 갔는데 정작 쓰는 곳은 핀란드 정도. 그 외에는 다들 크로네를 썼다.

스웨덴으로 넘어와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가 다돼갔다. 그러나 백야 때문에 밖은 쨍쨍했다. 늦은 오후 시간대 풍경 같달까. 자정은 돼야 초저녁처럼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숙소 주변에 달리 둘러볼 곳은 없었다. 시간도 늦었고 휴일(토요일)이라 방안에 있는 게 상책? 출국하기 30분 전 월요일자 기사를 송고한 터라 숙소에서 뉴스 데스크로 데스킹 현황을 확인했다. 모두 최종 편집돼 있었다. 금요일에 청주로 출장 다녀오고 밤새 월요일자 기사들을 마감했다. 공항 가서도 일하느라 면세점 쇼핑도 못했다.

숙소 주변과 스톡홀름 가는 길 풍경, 사진 4~5번은 맥도날드 내부와 외관, 6번 스톡홀름 풍경. 사진=딱정벌레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 주변을 둘러본 뒤,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버스 타고 이동하는데 중간에 화장실에 들를 겸 맥도날드에 갔다. 북유럽에서는 화장실을 유료로 이용해야 해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카페 화장실을 종종 갔다. 해외 매장에서 키오스크를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늘고 있던 중이었는데- 키오스크 여러 대가 주르륵 일렬로 비치돼 있었다. 결은 다르지만 북유럽은 '현금 없는 사회'에 일찍 돌입해서 말 그대로 현금 쓰지 않는 곳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헌금하는 것도 익숙하고.

스톡홀름에서는 시청에 먼저 갔다. 여기는 노벨상 기념 만찬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멜라렌 호수변에 있어서 바깥 풍경도 아름답다.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도 좋고. 도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가 인상 깊었다. 시청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이곳저곳 내부를 둘러봤고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그때그때 바로 정리하지 않으니 금방 잊는다. 곳곳에 있던 흉상 주인은 누구 것인지도 모르겠고. 헬싱키나 코펜하겐보다 별 기억이 없는 듯. 아마 스톡홀름이 그렇게 좋지만 않았기 때문도 있다. 싫다기보다 내게 그리 인상 깊지 않았다.

스톡홀름 시청. 사진=딱정벌레

시청을 뒤로하고 왕궁과 노벨 박물관이 있는 동네로 향했다. 노벨 박물관이 왕궁 근처에 있는데 성수기 직전이라서 그런지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기념품 가게도 많고. 스웨덴에서는 선물로 행주를 많이 산다길래 난 내 거, 가족 거, 이모 거 이렇게 세장만 샀다. 그러고 보니 L 모 홈쇼핑에서 북유럽풍 행주를 판매한다고 보도자료 낸 것도 떠오른다. 스웨덴은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어서 왕조가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왕족 사진엽서를 많이 팔았다. 영국에는 그런 곳을 찾아가지 않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걸어서 왕궁으로 이동했는데 역시나 기억나는 거라곤 예배당 정도? 천정 그림은 화려했고 벽면 장식은 고풍스러웠다. 왕궁이다 보니 제복을 입은 경비병이 눈에 띄였는데 더울 듯해서 안타까웠다. 제복이 얇아 보이지도 않고 모자나 이것저것 다 갖춰 입어야 하니. 때는 7월 중순이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2018년 여름에는 북유럽도 이례적으로 너무 더웠다. 안내하시던 분이 "예전에는 여름 피서로 북유럽에 오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여름에 덥지 않았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곳도 많고.

사진 1번 스톡홀름 시내 풍경, 3번 노벨 박물관, 2~7번 박물관 주변, 8~15번 스톡홀름 왕궁. 사진=딱정벌레

왕궁에서 아바 박물관을 지나 바사 박물관에 갔다. 스톡홀름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관광지는 바사 박물관이었다. 바사호 사연 때문이기도 한데- 이 배는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1628년 첫 항해를 하다 침몰됐기 때문. 왠지 세월호나 타이타닉호 사건도 떠오르고. 바사호가 더 극적인 건 333년 뒤, 다시 건져 올렸기 때문이다. 세월호 인양 문제가 생각난다. 박물관에는 이 배를 보존시켜서 전시해뒀다. 무척 거대했다. 전체를 다 훑어보려면 2층인가, 3층까지 올라가야 했던 듯. 놀라운 건 선박 98%가 원래 부품, 조각으로 이뤄졌다고.

박물관에서 바사호 역사와 인양 과정을 다룬 영상도 시청했다. 이 영상도 볼만한 가치가 컸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다 보니 참고할 점도 있고. 구조 작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인양해서 이렇게 복원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울림이 컸다. 바사호에서는 17세기 선박 양식과 건조법도 볼 수 있어서 사료 가치가 높다. 바사호 박물관이 좋았던 건 바사호 역사도 인상 깊지만 내부가 시원한 까닭도 있는 듯. 스톡홀름 너무 더웠다.

사진 1~3번 스톡홀름 풍경, 4번 바사호 박물관 주변, 6~9번 바사호, 10~11번 관련 유물. 사진=딱정벌레

관광은 이 정도로 하고 헬싱키로 넘어가는 배를 타러 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실자라인이라는 배를 탔다. 안에 숙박시설, 식당도 있고 공연장, 면세점도 있었다. 그러나 코펜하겐에서 탈 DFDS 규모에 비하면 작다고. 배에서 잠자리는 그리 편하지 않았지만 스톡홀름에서 핀란드 투르크 항으로 넘어갈 때가 제일 신나고 좋았다. 밤 9시 넘어서 갑판 위로 올라가 백야를 실컷 구경했다.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제야 북유럽에 온 보람도 느끼고. 몸은 고단했지만 잠들기 아쉬울 정도로 백야가 멋졌다. 마음도 벅차오르고.

백야를 보면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백야를 감상하고 싶었다. 이건 여기 아니면 못 보는 거니까. 비로소 휴가 온 것도 실감 나고. 입사 이래 처음으로 긴 휴가를 내본 거라서. '아, 이제 제대로 된 휴가 한번 와보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때 회사 조직개편 이후,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럴 거면 빨리 휴가나 다녀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지른 여행이었다. 오래 백야를 보고 싶었는데 배 위에 커다란 반려견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개가 무섭고, 시간이 늦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핀란드 투르크항으로 향하는 실자라인 배에서 본 스웨덴 백야. 사진=딱정벌레

하루짜리 스톡홀름 여행을 총평한다면- 앞서 언급했지만 되게 좋거나 인상 깊지 않았다.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짠 게 아니라 누군가 차려준 밥상 위에 숟가락만 든 여행이라서 그럴지도. 잘 사는 나라인 건 알겠지만 내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도 바사호 박물관에서 바사호를 실물로 본 건 의미 있었다. 사연도 여운이 있고. 스톡홀름 여행에서 최고 경험은 오히려 스웨덴을 떠나는 배안에서 구경한 백야 풍경이었다. 여름에 북유럽 백야를 바다에서 다시 보고 싶다. 2년 전보다 더 길게 보면서 밤을 지새우고 싶을 정도.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게 종이의 나라, 볼보의 나라, 아바의 나라, 이케아의 나라 이런 건데. 아, 이제는 스포티파이 나라기도 하구나. 볼보는 중국 기업 소유고. 어릴 때 본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도 스웨덴과 관련 있어서 그때 이미지는 어두웠다. 수잔 브링크 님도 힘들게 살다 가셨고. 사연도 너무 슬펐기 때문. 만약 스웨덴 여행 주제를 다시 짠다면 산업 관광을 오지게 해보면 좋겠다. 스포티파이나 이케아 등 스웨덴 유명 기업을 주제로 기업 생태계 코스를 짜는 등. 그걸 주제로 여기저기 다니면 재미있을 듯하다.

스웨덴에도 걸출한 뮤지션이 많다. 아바를 빼면 라세 린드나 잉베이 맘스틴, 록시트가 내가 아는 이들. 히트곡 제조기 맥스 마틴도 있구나. 내 느낌에 굉장히 미국스러운데 스웨덴 출신이래서 놀랬다. 록시트 노래는 잘 알지 못하지만 'Listen To Your Heart'는 대학 때 좋아했다. 보컬 마리 프레데릭손이 투병 끝에 지난해 세상을 떠나서 안타까웠다. 아바 노래는 'Waterloo'가 마음에 든다. 어릴 때 언니가 아바 노래 메들리를 좋아해서 계속 틀었는데 너무 많이 들어서 특히 Dancing Queen은 지겹다. 한때 스웨덴은 선진국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대유행 앞에는 그 누구도 장사 없고 스웨덴도 그런 듯. 모두 안전하고 무사하며 회복되길 바랄 뿐.


Roxette - Listen To Your Heart 뮤직비디오. 출처=유튜브
ABBA - Waterloo 뮤직비디오. 출처=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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