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습니다
노르웨이 여행 4일차이자 북유럽 여행 마지막 날이 시작됐다. 아침 일찍 오슬로에 도착해야 해서 새벽같이 일어났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 못내 아쉬워 조빅 주변을 잠깐 산책했다. 해가 길다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대낮처럼 밝았다. 가게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대낮에 이 동네 분위기는 어떨까 내심 궁금했다. 출발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조빅을 떠났다. 2시간 여 달려 오슬로에 도착했다. 오슬로 첫 관광은 시청사에서 시작했다. 시청사 문을 여는 오전 9시부터 들어갈 예정이었다. 건물 주변 사진을 찍고 입장을 기다렸다.
오슬로 시청은 노벨 평화상 시상식(매년 12월 10일)이 열린다는 점(1층)에서 상징성이 크다. 노벨 유언에 따른 것이란 말이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는 다른 부분 시상식이 열리고, 노벨상 수상자 만찬장도 있다. 오슬로 시청사에서 인상 깊었던 건 1층 로비 벽을 도시 역사를 그린 그림으로 장식했다는 점이었다. 갤러리 같았다. 국내 모든 지역 시청을 다 가보지 않았지만 멋진 그림으로 지역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사가 지역 콘텐츠 플랫폼 같달까.
오슬로도 입헌군주제라서 왕이 있다. 왕은 오슬로에 있는 로열 팰리스에서 살고 있다. 시청에서 걸어서 로열 팰리스를 지나쳤다.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하지는 못했다. 지나가는 길에 사진만 찍는 정도. 궁전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해 보였다. 건물 디자인이 단순해서 그런지. 핀란드 헬싱키에 있던 대통령궁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건물도, 건물 색도 비슷한 듯하다. 둘 다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조깅 또는 데이트 장소로 많이 쓰인다고. 런던과 에든버러에서 본 궁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어서 비겔란 조각공원으로 이동했다. 위키백과 설명을 빌리자면- 노르웨이 조각가인 비겔란이 오슬로시 지원을 받아 만든 조각원이다. 세계 최대 조각원이라는 말도 있다. 비겔란은 청동과 화강암 조각으로 사람 일생과 희비를 나타내려고 했다고. 사람 탄생부터 죽음까지. 이를 표현한 조각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모노리트'라는 조각인데- 사람 121명이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모습을 나타냈다. 높이가 무려 17m. 인간 군상 본질을 잘 드러낸 작품인 듯. 보기만 해도 숨 막히고 징그럽다. 이 공원에서 대표적인 조각이다.
이곳도 사람들로 꽤 붐볐다. 조각만 온전하게 사진 찍기는 쉽지 않았다. 나도 그런 존재겠지. 조각원에는 조경을 참 잘해뒀다. 예쁜 꽃도 많고. 관광객으로 들끓던 가운데 어떤 노년의 여성 가이드와 젊은 여성 가이드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젊은 여성 가이드가 우리 팀을 인솔하던 분이었다.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빨리빨리 설명하고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노년의 여성 가이드 분께서 그 가이드 분에게 항의했다. "Young lady, 어쩌고저쩌고". 젊은 여성 가이드분은 일정을 시간 내에 소화하기도 바빠서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슬로는 우리가 머물렀던 노르웨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웠다. 스톡홀름, 헬싱키, 코펜하겐과 날씨가 비슷한 듯. 얇은 리넨 재킷을 입었는데 후덥 지끈했다. 공원도 덥기는 마찬가지. 그늘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사람도 많은 데다 공원이 넓어서 조각을 보기만 해도 지쳤다. 오전 안에 최대한 관광을 마쳐야 했던 터라 바삐 움직였다. 베르겐이나 3대 피오르드를 구경할 때처럼 여유 있게 느린(?) 걸음으로 둘러볼 틈이 없었다. 그곳에서 여유가 살짝 그리워지던 오슬로 여행.
조각원을 둘러본 뒤,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갔다. 뭉크의 '절규'를 보기 위해. 절규는 여러 버전이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뭉크는 최초로 유화 작품을 그렸고 이후 3개를 더 그렸다고 한다.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있는 건 유화 작품이다. 가장 알려진 작품도 이 작품. 나머지는 오슬로 뭉크 미술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절규는 이런저런 수난을 많이 겪었다.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도난당했다가 되찾았고. 나머지 그림도 도난당했다가 어렵게 다시 찾았다고.
미술관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있었다. 날도 더운데 밖에서 기다리려고 하니 벌써부터 지치지만. 마지막 여행 일정이기 때문에 아쉽던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했다. 절규는 튼튼하게(?) 잘 봉인된 듯했다. 그래도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모나리자에 비하면 비교적 가깝게 자세히 관람할 수 있었던 듯. 모나리자는 거리를 좀 두고 봤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관에는 절규 외에도 다양한 뭉크 그림이 있었다. 범죄한(?) 종교인이라든가. 갈등에 직면한 인간, 그 고뇌와 당혹스러운 심경을 잘 나타낸 듯.
절규 옆에서 사진 찍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주변이 너무 복잡해서 그러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뭉크 그림을 보고 난 뒤, 스캔하듯 미술관과 기념품 가게를 훑고 나왔다. 미술관에서 기념품을 구경하고 사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짬은 나지 않았다. 노르웨이니까 물가도 겁나 비싸겠지. 미술관 근처에는 '카페브렌네리에(Kaffebrenneriet)'라는 카페가 있었다. '오슬로의 스타벅스'라고 부르는 이도 있던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미국 서부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커피 매장을 모델로 삼았다"라고.
미국식 카페를 모델로 만든 곳이면 북유럽, 노르웨이 느낌도 왠지 들지 않을 듯한. 노르웨이에서, 아니 북유럽 여행 전반에서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이렇게 지역 특색 있는 브랜드를 이용하지 못했다는 점. 지역 커피 체인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다국적 브랜드 매장을 주로 갔다는 거다. 스타벅스나 세븐일레븐 등. 원두라도 살 걸 그랬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브랜드를 현지에서 만나면 반갑고 낯선 느낌이 안 들지만. 여행은 낯섦을 즐기는 일인만큼 이를 만끽하는 게 좋은 듯.
오전 벼락치기 오슬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은 뒤, 가르덴모엔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후 비행기를 탈 예정인데 나와 가족을 위한 몇 가지 쇼핑 목표(?)가 남아 있었다. 공항 스타벅스에서 오슬로 유아 히어 에디션 머그 사기, 면세점 쇼핑 등. 면세점에서 정작 내가 산 거라곤 'Ringnes'라는 맥주와 물, 스낵 정도. 물가가 비싸서 뭘 사기도 쉽지 않았다. 머그는 2만원이 넘었고. 영국에서 산 시티 머그가 훨씬 가격이 낮았다. 링그네스 맥주는, 노르웨이가 물이 좋으니 맥주도 맛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도 칼스버그가 소유했다고.
공항에서 출국 수속받을 때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망상일 수 있지만 공항 직원이 내 앞사람과 내게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고 느꼈다. 수속을 마치고 하염없이 면세점을 구경하며 출국 시간을 기다렸다. 면세점을 비교한다면 난 가르데모엔 공항 면세점이 좀 더 좋았다. 어디서 운영하는 면세점인지 모르겠지만(가장 유명한 곳이 듀프리)- 여기는 맥주를 팔아서 마음에 들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는 맥주를 못 샀는데(히드로에서는 찾아보지 않았다) 여기선 쉽게 샀다. 덕분에 무거워서 팔이 뻐근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