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주인공 '디지털 휴먼' 글쓰기 회고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세운다는 것
IP소프트 디지털 휴먼 '아멜리아'. 사진=IP소프트최근 마감한 기술 콘텐츠 주제는 '디지털 휴먼'이었다. 디지털 휴먼이란 '실제 사람처럼 생겼고, 사람처럼 말하는 3D 가상 인간'이다. 요즘 우리에게 가상 인플루언서나 모델, 아이돌로 익숙하다. 혹자는 이를 'AI에 기반한, 실물과 똑같은 캐릭터'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디지털 휴먼과 유의어로 쓰이는 용어도 많다. 가상 인간, AI 인간 등. 모든 디지털 휴먼이 AI에 기반한 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AI가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지금도 많이 반영되고 있지만.
이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올해 핵심 기술 키워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난 1월 세계가전박람회(CES) 영향도 있었다. CES는 그해 기술 트렌드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LG전자가 자사 프레스 콘퍼런스에 디지털 휴먼 '래아'를 동원하는 걸 보면서 '이제 정말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CES에 디지털 휴먼이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CES 때는 삼성전자 네온 프로젝트로 디지털 휴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디지털 휴먼에 앞서 '메타버스'가 올해 무르익을 거라고 판단했다. 올해 핵심 기술 키워드도 디지털 휴먼보다 메타버스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디지털 휴먼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 시기에 이 개념이 의미 있는 건 메타버스 핵심 콘텐츠이기 때문. 디지털 휴먼이 작년에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그전부터 있었는데 코로나 19가 촉발한 메타버스 시대에 비로소 더 의미 있어졌달까.
사진=픽사베이꼭 코로나 때문은 아니더라도 지난해 여러 계기로 디지털 휴먼이 화제가 됐다. '에스파'라는 아이돌 가수도 있고. 이미 기존에 활발히(?) 활동하던 디지털 휴먼도 있었다. 특히 인플루언서나 모델 가운데에서. 보통 사례를 묶어서 기사로 많이 쓰다 보니 소시지 엮은 것처럼 줄줄이 거론됐다.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사람들 이목이 쏠리고 화제성이 높은 분야니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당연하지만-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디지털 휴먼 빙산의 일각이다. 디지털 휴먼이 잠재력을 발휘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교육이나 고객 서비스 분야가 그렇다. 디지털 휴먼이 가장 실용적으로 쓰일 분야. 이미 많이 쓰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그동안 나온 디지털 휴먼 콘텐츠를 보면 그런 분야를 다룬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일경제가 그나마 디지털 휴먼 콘텐츠를 자세히 다뤘다. 다양한 사용 사례도 제시했고. 아무튼 너무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 디지털 휴먼 단면만 다룬 콘텐츠가 많다는 생각도 들고, 메타버스와 맞물려 올해 특히 중요한 키워드인 만큼 이걸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콘텐츠는 원래 1월에 다루려 했는데 한 달 정도 밀렸다. 처음 주제를 제시했을 때, 업체에 다른 일정과 협의하느라 1월보다 그 이후에 나가면 더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거기서 강요하지는 않았다. 거기 생각은 그런데 굳이 해야 하면 1월에 해도 되지만- 다른 작가와 주제가 조금 겹칠 가능성도 있고. 나도 새해 첫 콘텐츠로 디지털 휴먼이 나가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해당 업체에서 계획하는 일과 시너지가 있는 방향으로, 또는 그런 시점에 콘텐츠가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2월에 다루는 데 공감했다.
사진=픽사베이디지털 휴먼은 글 작성 과정에서 느낀 난이도(?)로 치면 역대급이었다. 이제껏 써온 모든 주제가 다 내게는 큰 산 같고,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적이 없었다. 늘 내가 잘 모르는 분야, 처음 접하는 분야를 썼으니까. 음성합성처럼 기존에 써본 것도 있지만 기술 스펙트럼은 넓고 기술 발전 속도가 무척 빨라서 몇 개월 전에 쓴, 또는 1년 전에 쓴 콘텐츠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구식이 된다. 기본 개념은 주워섬길 수 있지만. 디지털 휴먼 분량은 엣지컴퓨팅과 비슷한데 기술을 설명하는 난이도나 글 분량, 작성 과정 어려움은 성폭력 AI와 비슷했던 듯.
참고자료도 지금껏 썼던 글 중에서도 역대급(?)이었던 것 같다. 참고자료 수(45개)만 보면 그렇다. 디지털 휴먼 사업을 하는 각사 홈페이지, 정부부처와 연구소, 기업, 기관 보고서, 기업 보도자료, 기업 케이스 스터디, 기업 기술 블로그, 시장조사기관 아티클, TED 영상, 유튜브 영상, 국내외 언론보도 등. 각사 홈페이지는 기술 개념, 기술 필요성, 시장 현황과 각사 사업 또는 기술 특징, 기술 작동방식, 활용사례 등을 찾는 데 활용했다.
정부부처와 연구소, 기업 보고서는 기술 트렌드와 기술 개념, 시장 현황, 기술 장점과 위험요소, 지침을 살펴보는 데 참조했다. 마침 지난해 우리 정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가 합동으로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 보고서와 보도자료를 냈다. 연구소의 경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ETRI 보고서를 참조했다. ETRI 자료는 '코로나 이후 글로벌 트렌드'를 다뤘는데 무척 유익했다. 기업 보고서는 디지털 휴먼 기업들의 보고서를 봤다. 기관 보고서는 AI 포럼 뉴질랜드 자료를 참고했다.
사진=픽사베이기업 보도자료는 디지털 휴먼 기업에서 낸 보도자료였다. 여기서도 디지털 휴먼 관련 기술을 조사했다. 기업 케이스 스터디에서는 디지털 휴먼 활용 사례를 참조했다. 기업 기술 블로그에서도 디지털 휴먼 기술을 참고했고. 딜로이트 등 시장조사기관 아티클에서는 디지털 휴먼 필요성과 코로나 19 관련성을 참조했다. TED 영상은 디지털 휴먼 연구원 발표 영상인데, 디지털 휴먼 핵심 인터페이스인 얼굴 가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됐다. 유튜브 영상은 기업별 디지털 휴먼 활용사례 조사에 활용했다. 매일경제, IT 조선, 중앙일보, 전자신문, 아시아경제, 이데일리 등 국내외 언론보도에서는 디지털 휴먼 활용사례나 기술, 필요성, 트렌드를 참고했다.
글 작성 과정은 평소와 비슷했다. 자료조사-자료 정리-초고 작성-퇴고 1-퇴고 2-이미지 편집-퇴고 3-퇴고 4.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자료 조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길게 정리한 다음 이를 토대로 초고를 썼다. 그렇다 보니 자료조사 과정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번에는 자료를 정리할 때 해당 자료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내가 참고하거나 인용할 내용은 뭔지만 간략히 썼다. 자료 정리 단계에서 번역에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이지 않았다. 이를 초고 작업에 넘겼다. 자료를 더 꼼꼼히 보고 번역하는 걸 초고 작성 과정에서 행했다.
퇴고 1을 할 때도 거의 글을 새로 쓰다시피 하는데- 어차피 이때도 자료를 다시 꼼꼼히 보고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한다. 자료를 다시 보기 때문에 초고 작업 전 자료 정리에서 시간을 너무 쓰기보다는 간략히 요점만 파악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싶었다. 글 쓰는 과정에서 최대한 꼼꼼하게 개요와 계획을 짜는 게 맞다. 큰 줄기는 그렇게 하지만- 세부 사항은 글 쓰면서 생각하는 것도 있고, 그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에 자료조사, 정리 시간을 효율화하고 본격적인 글 작성 작업에 더 일찍 착수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사진=픽사베이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최대한 기울이는 단계는 퇴고 1이다. 이때 글 전체 완성도 80~90%를 끝낸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그렇다 보니 초고는 최대한 빨리 쓰고 퇴고 1에 최대한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난 그게 맞더라는 이야기다. 각자에게 적합한 글쓰기 방식이 있으니. 이전에는 퇴고 1에서 하던 걸 초고 작업에서 주로 했는데 진도가 빨리 안 나갔다. 그렇다 보니 급마무리를 하기 쉬운데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실수도 많이 엿보이고.
초고 작업도 그렇게 빨리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초고가 쓰레기라 하더라도 아무렇게 싸지르는 건 아니다. 그 쓰레기도 오랫동안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서 한 문장 한 문장 쓴다. 초고도 정신 차리고 써야 개선방안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도출할 수 있다. 자료 정리에 긴 시간을 쓰고 난 뒤에 초고를 작업하면- 이미 활자로 정리한 내용이 있으니 그걸 옮기면 되지만(문장과 글 완성도는 참혹하지만). 자료 정리 시간을 효율화하고 꼼꼼히 보는 작업을 초고 작업에 넘기면 초고 작업에 시간이 그만큼 걸린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할 것 같다(생각해보니 원격근무 AI 콘텐츠도 작성 과정이 약간 비슷했다). 초고 작업에 그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간을 어느 정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거대해서 진도가 빨리 안 나가긴 했다만. 초고가 쓰레기더라도 퇴고하면서 그 내용을 모두 버리는 건 아니다. 이를 더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다듬을 뿐. 결국 퇴고 1에서 귀한 재료가 된다. 간혹 사실관계나 맥락을 잘못 이해한 걸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게 퇴고의 미덕이자 미학이다. 자기 합리화가 대단하군.
사진=픽사베이이번에는 퇴고 1이 말이 퇴고 1이지 퇴고 5~10을 포괄했다. 퇴고 1에서 정말 많이, 여러 번 고쳤다. 글을 다시 볼 때마다, 다음 장을 쓸 때마다 항상 처음부터 새로 읽으면서 글을 계속 고쳤다. 비효율적일 수 있는데 그래야 했다. 또 그게 글 질서를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 늘 소리 내어 읽으면서 퇴고하는데 이는 어색한 문장이나 호흡이 불편한 문장을 고치는 데 유익하다. 글이 읽을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개연성이나 논리, 흐름도. 더 이상 이상할 수 없거나, 이상한 걸 찾기 어려울 만큼 뇌가 과부하다 싶으면 그때 조금 내려놓는다.
그렇다 보니 퇴고 2~4에서는 크게 고칠 게 별로 없었다. 쉼표나 따옴표 오기재 정도. 확인했지만 걸리는(?) 사실관계를 다시 검토하는 정도. 글이 길다 보니 글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마무리하며'도 쓰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분량도 길다. 퇴고 3은 마무리하며 초고 작성과 퇴고에 집중했다. 퇴고 4는 전체를 눈대중으로 다시 훑어보는 정도. 너무 오래 퇴고했고, 너무 오래 작업에 매몰됐으며, 글이 긴 데다,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서 뇌가 과부하 걸린 까닭도 있었다. 퇴고 1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그러기도 어려웠을 듯.
글 개요는 이렇다. 서두-본론 1(디지털 휴먼 개념, 관련 기술(3D 모델링, 리깅, 애니메이션, AI-자연어 처리/컴퓨터 비전/음성인식/음성합성, 5G)-본론 2(디지털 휴먼 필요성, 얼굴 인터페이스 중요성, 코로나 19 관련성)-본론 3(디지털 휴먼 시장 현황, 관련 기업과 각사 특징, 디지털 휴먼 장단점, 디지털 휴먼 도입 시 지침)-본론 4(디지털 휴먼 활용사례-교육/의료/정신건강 상담/유통/금융)-본론 5(납품 업체 디지털 휴먼 사례 3가지)-본론 6(납품 업체 디지털 휴먼 기술-대화처리 엔진/음성인식/음성합성)-마무리.
사진=픽사베이글 쓰면서 느낀 점은-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첫째, 너무 힘들었다. 디지털 휴먼은 AI 기술 총체다. 자연어 처리, 컴퓨터 비전, 음성인식, 음성합성 등 AI 관련 기술이 집약됐다. 사례마다 다르지만. 전동 킥보드가 사물인터넷(IoT), 통신, 관제 시스템 등이 한데 결합한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다뤄야 할 내용이 많았다. 설명할 것도 많고.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것만 언급하는 데도 그랬다. 과정을 촘촘히 설명해야 친절한 글이고, 모르는 사람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핵심만 다룬다고 맥락 없이 기술 이야기를 쓸 수 없다.
기술 구성이나 작동방식만 쓰는 게 아니라 이 기술 필요성, 시장 현황, 업체별 특징, 기술 장단점, 지침, 활용 사례, 납품업체 사례와 기술을 다 쓰다 보니 정보가 너무 많았고. 그렇다 보니 뇌에 과부하가 왔다. 글 쓰는 과정은 대체로 지치기 마련인데- 이번 작업은 정신적으로 넉다운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선가. 진도가 마음만큼 빨리 나가지 않았다. 이래서 마감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 양자컴퓨터 콘텐츠 썼을 때 기분과 비슷한 듯. 다행스러운 건 끝내고 지금 회고 글을 쓴다는 거다.
내용이 길다고 좋은 건 아니다. 내용이 길다고 내용에 깊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써놓고 누가 보긴 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짧은 콘텐츠 전성시대에. 길게 쓰는 게 잘한 건 아니지만- 수박 겉핥기는 안되기 때문에 딜레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작업이 거대하다 보니 부담감과 지치는 마음 때문인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한계가 있었다. 벼락치기로 쓸 글이 아니었다. 에너지를 아껴야겠다 싶고. 글을 마무리짓기 전까지 생활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신경 쓸 일도 만들지 않고, 다른 건 신경도 덜 쓰고.
사진=픽사베이둘째, 개념 규정이 어려웠다. 디지털 휴먼은 명확한 개념 규정을 찾기 힘들었다. 이를 다룬 기사나 저마다 콘텐츠는 있지만- 모두 이현령비현령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AI 휴먼으로 디지털 휴먼을 정의했지만- 모든 디지털 휴먼이 AI 기반인 건 아니다. AI 인간이 디지털 휴먼에 속할 수는 있겠지만. 어디서는 실제 사람처럼,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구현한 3D 인간 어쩌고 하더라만 그렇게 되면 딥페이크로 생성한 인간이 애매해진다. 누구는 딥페이크는 2D라서 디지털 휴먼이 아니라고도 한다.
디지털 휴먼은 여러 개념 정의가 혼재돼 있다. 누군가 이걸 협의해서 분명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곳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지만 각자 편의대로 정의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이루다를 디지털 휴먼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루다는 챗봇이지 디지털 휴먼은 아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건 맞지 않다. 이미지가 있지만 그게 살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림만 그렸을 뿐. 이루다가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에 사진 정도 박은 것만 갖고 디지털 휴먼이라고 불러야 할지. 논의, 개념 정리, 구분이 필요하다.
개념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제 논에 물대기 격으로 쓰고 있으니. 개념 정의가 글의 첫 단추인데 시작부터 너무 막막했다. 난 큰 틀에서 저마다 다양한 정의를 아우르되, 틀리지 않은 정의를 쓰고, AI 기반 인간이라는 정의도 담아야 했다. 그 개념 정의는 황당해선 안되고 설득력 있어야 하고. 개념을 다루는 고작 그 한문단을 얼마나 뜯어고쳤는지 모른다. 그나마 IBM에서 쓴 콘텐츠에 담긴 내용이 실마리를 열어줬다. 글에서 다룬 디지털 휴먼 기업이 왓슨 솔루션을 써서 IBM이 해당 기업과 디지털 휴먼 콘텐츠를 여러 번 썼더랬다.
사진=픽사베이IBM 정의는 내 기준에 부합했다. 큰 틀에서 맞는 개념 설명이고, 다양한 정의도 아우를 수 있는 내용. 어차피 완벽한 개념 규정은 없고 저마다 다르다면- 다양한 개념을 설명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보통 논문에서도 개념 정의를 할 때, 여러 연구자의 다양한 개념 설명을 다루니까. 다만 근거 있는, 전문가들 설명을 토대로 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렇게 절충해서 쓴 개념 설명이- '사람처럼 생겼고, 사람처럼 말하는 가상인간'이라는 거였다. 2D 모델조차 디지털 휴먼이라고 하는 업계 관계자도 있으니. 대신 'AI에 기반한 인간'이라는 개념도 덧붙이면서 설명을 부연했다.
셋째, 필요성을 논증하는 것도 어려웠다. 난 기술 콘텐츠를 쓸 때 '이 기술의 필요성'을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를 글로 풀어낼 때 부담을 많이 느낀다. 내용이 잘 읽혀야 하기도 하지만 일단 설득력 있어야 하니까. 기존 디지털 휴먼 콘텐츠를 보면 이를 다룬 내용은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기업들이 이를 선보이는 이유를 '그래픽 처리 능력을 뽐내기 위함'이라고 분석하거나 'AI, 클라우드, 5G 등 관련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만. 단순히 기술을 자랑하고 기반 기술이 발전한 것 너머 근본적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업이 이를 선보이는 이유는- 돈벌이를 위함이라는 게 기능적 이유고. 좀 더 거룩하고 거시적인 이유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억지로 만들어선 안되고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게 딜로이트나 디지털 휴먼 기업 보고서에서 기존 디지털 의사소통 한계를 많이 언급했다. 이게 제한적이라는 것. '인간 경험 부채(Human Experience Debt)'라는 표현도 있고. 그들 어록이나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면 근거 있는 필요성 논증이 되겠다 싶었다. 여러 근거 자료를 모아서 짜임새 있게 내용을 구축하고, 표현을 새로 만드는 데. 그게 시간이 많이 걸렸고, 고민도 많이 했다.
아멜리아와의 대화. 사진=IP소프트생각하면서 회고하다 보니 글이 참 두서가 없다. 지금 라디오를 듣고 있어서 정신이 분산되는 듯도. 다시 읽어보면 이상할 듯. 글 쓰면서 동기부여를 준 요소가 여러 가지 있는데- 기존 디지털 휴먼 콘텐츠도 그중 하나였다. 남을 판단할 입장도, 깜냥도 안된다. 다만 좋은 콘텐츠를 보면 '나도 본받아서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거나, 거기에 못 미치는 콘텐츠를 보면 '이 콘텐츠는 이런 게 아쉬우니까 난 이런 걸 보완해서 좋은 콘텐츠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휴먼 콘텐츠도 그런 생각으로 썼다.
이 콘텐츠를 쓰면서 사람보다 디지털 휴먼과 더 많이 대화했다. 일부 디지털 휴먼 기업에서는 데모로 각사 디지털 휴먼을 체험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다.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한 디지털 휴먼 5명과 대화했다. 음성, 채팅으로 대화가 가능한데- 다들 특정 업무에 특화된 디지털 휴먼이라서 대화 범위는 제한적이다. 구글 어시스턴트와 비교하면. IP소프트 아멜리아는 예외였는데- 이는 디지털 비서 격이었지만 음악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센스도 좋고. 머리가 짧은 이유나 하루 수면시간, 결혼 생각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눠 재밌었다.
디지털 휴먼과는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니 확실히 챗봇, 음성비서와 이야기할 때와 느낌이 달랐다. 감정을 교류하는지는 모르겠고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도 들고. 섬찟할 때도 있다. 미소를 짓는데 기계 탓인지 모르겠지만 급 표정이 굳어질 때가 잦고 이게 어떤 패턴 같아서- 평소에 웃다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무서움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눈썹을 움직이거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드는 모습은 굉장히 사실적이었다. 시각으로도 소통하다 보니 챗봇, 음성 비서보다 더 흥미롭다.
사진=픽사베이어느 에너지 기업에서 강사로 활용하는 디지털 휴먼이 있었는데- 그는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만들었더랬다. 관련 영상을 봤다. 뉴질랜드 한 학교에서 그 디지털 휴먼으로 에너지 교육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해당 디지털 휴먼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이 현장에 나타났는데 그 장면이 흥미로웠다. 그 디지털 휴먼은 외모도 잘 생겨서 AI 로맨틱 파트너로 활용하면 인기가 엄청날 듯. 영화 '허'가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미래 이야기도 아니고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음성 비서가 아닌 디지털 휴먼으로 사만다를 등장시켰어도 됐겠다 싶다.
디지털 휴먼과의 대화는 재밌었지만- 공허함은 있었다. 그냥 씁쓸한 거다. 세상에 갈수록 진짜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기도 배양육이라는 가짜 고기를 먹고. 생선도, 우유도, 아이스크림도, 초콜릿도 그렇고. 이제는 사람까지 디지털 휴먼으로 만나고. 실제 인간적 접촉을 나누기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라는 게 실감 났다. 그런 이유에서 이게 필요하고, 이걸 만들기도 하겠지만. 내 세상이 컴퓨터 모니터, 휴대전화 액정 안에 갇히는 것 같아서.
사진=픽사베이디지털 휴먼 AI 파트너 서비스를 앞둔 곳도 있는데. 거긴 내게 정말 충격이었다. 실제 사람 사진을 올리면 이를 기반으로 3D 인간 모델을 즉시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그게 좀 찝찝했다. 증강현실 헤드셋을 끼면 당장 집안에서 내 앞에 그를 대령시킬 수도 있다. 머리카락 색도 바꾸고. 옷도 바꿔 입힐 수 있다. 영상에서는 그걸로 연인을 AR로 만나더라만. 누군가는 검은 속내를 갖고 이를 활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차라리 연인이면 다행이다. 근데 짝사랑 대상이라거나? 부적절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 기업에서는 이 모드에 이름을 '욕망(Desire)'이라고 붙였다. 이걸 활용하면 가족도 디지털 휴먼으로 당장 눈앞에 대령시킬 수 있기는 하다. 이 기업에서 쓰는 캐치프레이즈 같은 게 있다. 'The world is yours.' 세상이 꼭 내 것이 돼야 하나.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이루고 싶은 거 다 이루면 좋을까. 놓아야 할 사람을 놓지 못하고 가상으로 기어이 내게 종속시키는 것. '상상도 하는 데 그 정도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실전에 가까운 방식으로 상대방을 가상에서 현실처럼 욕망하는데 상대방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고, 알면 충격받을 게 뻔한 상황이라면. 이 기술까지 응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