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브라운관을 밀어내고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됐지만- 난 생각만큼 유튜브를 많이 보지 않았다. 5년 전만 해도 흘러가는 일요일을 아쉬워하며 유튜브로 월요병을 미리 달랬지만. 보던 채널만 보고 다양하게 즐기지는 않았다. 그나마 지금도 꾸준히 보는 채널은 슛뚜님 브이로그나 권주현 아나운서의 권아나 TV. 그 외에는 일과 관련된 콘텐츠를 필요할 때 찾아보는 정도였다. 꾸준히 보는 채널이 몇 개 없다 보니 유튜브를 수시로 보기보다 토요일 저녁에 잠깐 시청하곤 했다.
요즘 그 일상이 깨지고 있는데 피식대학과 코미디언 강유미 씨 채널이 한몫했다. 둘 사이에는 '최준'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고. 재벌 3세 캐릭터 '이호창'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최준보다 이호창 캐릭터에 더 열광하며 소리 지르면서 유튜브를 보는데- 작업하다가 우연히 이호창 버전의 'B대면 데이트'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전에 '김갑생 할머니' 신년사를 보긴 했다. 그걸 보고 B대면 데이트와 갑질 영상 등 이것저것 보는데 육성으로 이렇게 터진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콘텐츠가 좀 더 자주 올라오면 좋겠다.
볼 때마다 하이킥 하면서 소리 지르지만 확실히 일상의 신음(?)을 달래기에 좋은 콘텐츠였다. '05학번 이즈백'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보고 있지만 역시 최애(?)는 이호창 B대면 데이트. 브이로그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상관없는 이야기나 또 하고 있다. 어제 컬투쇼에 '이택조' 캐릭터가 출연했다. 바쁘시겠지만 이호창 캐릭터로도 또 나와주시면 좋겠다. 대신 어제 이호창 캐릭터가 옷 가게에서 강도를 제압하는 영상이 올라와서 기다림을 달랬지만. 역시나 "Don't move! I don't wanna hurt you" 이 대사 치는 거 보고 또 경악했다.
피식대학 이호창 'B대면 데이트'. 출처=피식대학 유튜브 채널
그렇게 영상을 파도(?) 타며 보다가 강유미 씨 채널을 보게 됐다. 그전에 '도를 아십니까' 전도사 흉내 내는 걸 본 적 있는데 그 뒤로는 따로 챙겨보지 않았더랬다. 근데 최준 카페 아르바이트생 콘셉트로 콘텐츠를 만든 걸 보다가 채널을 구독했고 그 뒤로 유튜브 알고리즘이 여러 영상을 추천해줬더랬다. 그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으니 바로 강유미 씨의 '브이로그'. 삼성전자 광고가 들어간 영상이었고 틈틈이 냉장고가 등장했다. 냉장고에서 책도 꺼내고, 갓 꺼내서 책이 신선하다는 둥. 영상이 좀 길긴 했는데 재미있게 봤다.
이 영상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기존 브이로그 풍자(?)였다. 내가 즐겨보는 슛뚜님 브이로그도 그렇고, 다른 브이로그도 보면 '감성'을 내세운 브이로그가 더러 있다. 난 한 사람 채널만 보는데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몇몇 있다. 그런 분들 영상을 보면 참 예쁘다. 식기도, 집안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하며 아름답고. 요리도 잘하고, 플레이팅도 수준급? 물론 영상을 위해 좀 더 신경 쓰고 연출된 점도 있겠지만. 영상을 정기적으로 올리는데 집안 풍경을 급조하기 쉽지 않고 그동안 살아온 흔적이 그대로 드러날 테니 작위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난 브이로그를 보면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 슛뚜님 브이로그에서는 배울 게 많다. 생활습관이라든지, 요리법이라든지. 야무지게 살림살이하는 거 보면 자극도 받고, 동기부여도 된다. 맛있는 요리를 보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굳이 브이로그가 아니더라도 유명인 유튜브 채널에서도 유용한 팁을 얻는다. 배우 한예슬 씨 유튜브가 그렇고(그러나 자주 챙겨보지 않는다). 예쁘고 감성적인 영상을 주말에 보면 나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걸 주말에만 보다 보니 특유의 느낌이 좋다. 토요일 아침에 홈쇼핑 리빙 프로그램 보듯.
슛뚜 브이로그. 출처=슛뚜 유튜브 채널
설사 연출됐을지라도 브이로그에 나오는 아름다운 일상이 난 보기 좋고, 그게 오글거린다거나 가식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멋지게 영상을 찍는 걸 보면 배워보거나 응용하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집안 사진이나 영상을 이렇게 노출하는 게 용기가 필요하다 싶기도 하다. 그건 사생활이니까. 혹시라도 위치가 노출돼서 표적이라도 되면 어떡하나. 일상을 저렇게 공개하는 건 위험부담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난 브이로그에서 배우거나 자극받고 공감하는 점이 많기 때문에 브이로그를 보는 걸 즐긴다.
강유미 씨 브이로그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 영상에 달린 댓글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유미 씨 브이로그를 보면 기존 브이로거 감성을 최대한 구현하는 듯하면서도 살짝 어설프거나 웃긴 모습을 보여주면서 희화화되는 느낌도 들었다. 그게 제작자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느끼하게 파스타를 해 먹는다거나 저녁에 친구가 온다고 해서 스테이크를 굽는데 야채는 무척 오래된 걸 굽고, 온다던 친구는 알고 보니 집에 있는, 이 영상 광고 대상인 삼성전자 냉장고였고. 그밖에 책 읽고, 다이어리 쓰는 일상 등.
이 영상 댓글을 보니 사람들은 희화화하는 듯한 모습을 좋아하면서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기존 브이로그의 오글거리는 감성을 꼬집는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는 듯했고. '왜 브이로거는 항상 마켓컬리만 이용하느냐', '왜 주방용품 색이 항상 베이지냐'는 둥. 그 댓글을 읽다가 잔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왜 저렇게 꼬아서 보는 거지?'라는 의문이 그랬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비슷한 반응을 보인 댓글이 적지만 몇 개 있었다.
강유미 ASMR 브이로그. 출처=강유미 유튜브 채널
앞서 언급했듯 난 감성 브이로그를 좋아하고 그걸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로 받기 때문에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요즘은 즐겨보지 않지만 배우 이민호 씨 브이로그나 영국 직장인인 유경님 브이로그도 한때 봤는데- 이민호 씨 브이로그는 감성 브이로그 영역에 속한 듯하고. 유경님 브이로그는 감성보다 생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든다. 봉쇄 조치 속에서도 이국에서 꿋꿋하게 어떻게 삶을 일궈가고 있는지 보여주는데 좋다. 덕분에 맛있는 과자도 알게 됐고. 이민호 씨 브이로그는 이승기 씨와의 캠핑 영상이 여운 있었고.
아무튼 그렇다 보니 댓글 반응이 놀라웠다. 모든 브이로그를 보지 않아서 대부분 브이로거가 마켓컬리를 이용하고 베이지색 냄비나 프라이팬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봤을 때, 그냥 그들의 취향일 뿐이고 베이지색 냄비나 프라이팬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타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건 내 일은 아니니까. 그냥 본인이 그걸 좋아해서 이용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감성을 영상에서 드러내는 건데 그게 이렇게까지 비웃음을 살 일인가 싶었다. 어차피 영상은 연출이니 그것도 연출로 생각해선지 모르겠지만. 피해 준 게 아니면 굳이?
브이로그를 보면 이거 만드는 게 피곤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슛뚜님 브이로그에서는 에필로그로 NG 영상을 보여준다. 카메라 초점이 나가거나 의도했던 대로 뭔가 나오지 않을 때. 완성도 높은 영상을 찍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작업을 거치고, 어떤 작업은 수차례 되풀이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싶다. 좋은 영상을 보여줘서 고맙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영상이 나오더라도- 영상에서 보여준 그의 솜씨에서 연출용보다 오랜 기간 다부지게 쌓아온 습관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아서 그냥 무난하게 봐왔다.
최준 브이로그. 출처=김해준 유튜브 채널
결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SNS에는 주로 좋은 걸 올리다 보니 반쪽짜리 삶, 편집된 삶만 보여준다고들 말한다. 인스타그램 사진 특징은 정방형 사진이라는 건데 정방형 바깥에는 자질구레하고 추레한 모습이 잘려 있다. 나도 정방형 사진으로 편집해서 올리는 덕분에 주변은 너저분한데 그럴싸하게(?) 사진을 올릴 수 있고. 유튜브 브이로그도 그럴 수 있겠지. 한편으로는 너무 사실적이면 그게 반응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걸 공개할 이유도 없고, 보는 사람도 편집됐을지언정 보기 예쁜 걸 선호하는 쪽이 더 많지 않을까.
그래서. 그게 그렇게 비웃을 일인가 싶었다. 예쁜 감성으로 무장한 브이로거가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 위해서 연출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교는 누가 요구해서 하기보다 스스로 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그런 브이로그가 취향에 맞지 않고 싫어할 수도 있다. 또 그런 브이로그를 좋아하지 않는 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연출됐든, 예쁜 감성을 가득 발랐든 제작자 자유이자 의지이고. 난 그것마저 좋아하다 보니 거기에서 나쁜 영향을 실감하지 못했다는 거.
지난 주말 버스 안에서 찍은 영상. 출처=딱정벌레
그렇다고 강유미 씨 브이로그를 비판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도 그 영상을 재미있게 봤다. 원초적 웃음을 자아내는 것도 있고. 코믹물 같은 브이로그도 좋다 싶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최준 브이로그도 재미있게 봤다. 카페 사장이라는데 집에서 그냥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나 암튼. 밤에 웃통 벗고 얼굴에 기초 화장품 바르는 것도 웃겼다. 코미디언들이 만든 브이로그에서는 확실히 감성 브이로그에서 느끼지 못했던 장점을 맛봐서 좋다. 웃음이 나면서 즐거워지니까. 계속 만들어줬으면 좋겠고.
아무튼 그랬다. 별 내용 없는 글이지만- 강유미 씨 브이로그 댓글을 보면서 브이로그 단상을 남기고 싶었다. 정말 사실적인 브이로그를 찍는다면(CCTV 수준으로)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아보는 데 도움되긴 하겠다. 고치고 싶은 습관도 발견하고. 회사 다닐 때, 구글 인공지능 카메라 클립으로 내가 일하는 모습 찍어보고 나중에 따로 본 적 있었는데 내가 평소에 짓는 이상한 표정이나 웃음, 뭘 마시거나 먹을 때 모습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악! 내가 이렇단 말인가' 자괴감 비슷한 걸 느꼈다. 재미는 있더라. 어디 절대 안 올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