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이 불편해질 때

나 하나쯤 안 써도 문제없으니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요즘 실험하는 사소한 원칙 또는 습관이 생겼다. 새벽 배송 안 쓰기. 나도 새벽 배송 애용자고, 아침에 문 앞에 신선식품 배송 상자가 놓인 걸 보면 선물 받은 기분이 들어서 좋아했다. 새벽 배송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운영한 몇몇 온라인 장보기 채널에는 거기서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있고, 그 업체는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새벽 배송만 운영하다 보니 배송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대형마트나 쿠팡은 배송일을 지정하거나 새벽 배송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데 다른 곳은 그런 게 없다. 그곳 상품을 구매하려면 새벽 배송을 쓸 수밖에 없기도 했다.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언급하길 꺼리는데 그럴 거 뭐 있겠나. 마켓 컬리다. 헬로네이처도 전에는 종종 이용했는데 상품 구색이 마켓 컬리보다 많이 적다고 느껴져서 언제부턴가 이용이 뜸해졌다. 첫 번째 직장에 있을 때 인터뷰했던 경험 때문에 괜히 더 이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특정 채널만 이용하지 않고 이마트, 롯데마트, 마켓 컬리, 쿠팡을 골고루 이용한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현대백화점에는 직접 가서 장 볼 때도 있고. 채널마다 가격이나 상품 구색이 다르다 보니 다양하게 이용할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이 쓰는 건 롯데마트.

새벽 배송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 편의성에 매료되면 쉽게 놓기가 어려웠다. 굳이 새벽 배송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도 다른 채널에서도 새벽 배송받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내 물욕과도 관계돼 있는데 아침에 눈뜨면 맛있는 식재료가 문 앞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거다. 당장 소유하고 싶은 마음? 마켓 컬리에서는 꽃도 살 수 있으니 아침에 집 앞에 꽃이 도착해 있으면 그건 더 기쁘다. 꽃이 싱싱해서 집안에 꽃 향기가 퍼지는 느낌도 좋고.

사진=픽사베이

새벽 배송 주 타깃은 주부들이라고 들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면 식재료가 급히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새벽 배송으로 물건을 받으면 편리하다고. 나도 1인 가구로 살림하며 살고 있으니 타깃층에서 예외는 아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직장인 시절에는 아침을 늘 챙겨 먹지 않고,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새벽 배송이 내게 절실한 건 아니었다. 굳이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새벽 배송으로 받을 거 전날 오후에 받아도 되니까.

내 필요를 둘러보니 굳이 새벽 배송으로 꼭 물건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새벽 배송을 가급적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마켓 컬리에서 쿠폰이라도 주는 날에는 엄청 유혹에 시달리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무덤덤해졌다. 새벽 배송을 되도록 이용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는 데 영향을 준 이슈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경향신문에서 단독으로 보도한 '마켓 컬리 블랙리스트' 논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 외에도 이 기사는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위생문제도 있는데 회사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 믿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찜찜해서 더 이용하기가 어렵다. 설사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해도 요즘 불거지는 논란과 대처방식을 보면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잘못된 일인 건가' 싶어서 소비자로서 이용에 자신감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요즘 ESG가 그저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절실한 사회 의제로 떠올랐고, 소비의 주요 척도로도 기능하는 걸 보면- 기업은 단지 서비스 편의성뿐만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윤리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고, 소비자 구매행위가 이를 뿌리내리는 데 도움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싶다.

사진=경향신문

마켓 컬리 논란은 특수하지만 새벽 배송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또는 새벽 배송이 아니더라도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한 기업이 적잖다. 쿠팡이 특히 이슈가 많았고. 나도 그걸 알면서도 쿠팡을 계속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켓 컬리는 당분간 이용하지 않겠다는 건 '이율배반적이고 일관성 있는 모습이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굳이 마켓 컬리 논란 때문은 아니지만 전부터 새벽 배송 이슈를 보면서 이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지 고민했다. 차선책은 다른 채널에서도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자는 것.

그렇다고 새벽 배송 이용자를 가치 판단하는 건 아니다. 필요한 사람은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게 잘못되지도 않았다. 내 필요를 돌아봤을 때 '난 새벽 배송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혹시 새벽 배송 물량이 너무 많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착취당하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사람마저 생기는 거라면 굳이 그게 불필요한 나까지 이용 행렬에 동참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새벽 배송으로 받을 거 일반 배송으로 받아도 어차피 총량은 같은 거고 사람 힘든 것도 비슷하지 않나 싶겠지만.

새벽 배송을 돌아보면 기자 시절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2018년 여름 무렵이었다. 취재하다 쿠팡이 신선식품 새벽 배송 서비스를 추진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기사로 썼다. 그때는 쿠팡이 여러 가지 궂은 이슈로 큰 논란을 겪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새벽 배송이 없었는데 쿠팡맨 근무방식을 새벽조와 오후조로 나누는 투웨이브 근무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서 기사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자야 할 시간에 일을 하면 기사에게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문제도 있고. 난 그 와중에 그들의 신선식품 새벽 배송 추진 계획을 알게 됐다.

내 기사에 달린 댓글. 사진=네이버

그때만 해도 쿠팡은 농협과 제휴해서 안성에 있는 농협물류센터를 통해 부분적으로 신선식품을 주문받아 배송하고 있었다. 그때는 구색도 다양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신선식품을 처리할 수 있는 물류센터가 하나뿐이었는데 그 무렵 인천에도 냉장냉동신선 물류창고를 확보한 사실을 알게 됐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을 비롯해 빠른 배송 서비스와 관련된 상표도 다수 출원한 상태였고. 모두 지금 서비스 중인 것들이다. 난 투웨이브 근무체제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신선식품 새벽 배송 진출에 초점을 두고 기사를 썼다.

그 기사에는 비난 댓글이 10개 넘게 달렸다. "기자님 뒷돈 받았어요? 지금 새벽 배송 때문에 다른 뉴스들은 엄청 난리던데 이 기자 분만 새벽 배송이 좋다고 쓰시네", "기자분 돈 드셨나요? 쿠팡 2교대 배송으로 청원도 하고 그러는 분위기인데... 정확한 팩트는 좋으나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쓰세요. 저희 쿠팡맨 새벽 배송 2교대 안 할 겁니다!!!!", "쿠팡맨을 살려주세요(청와대 청원글 링크)", "이런 기레기도 2교대로 돌려야 돼", "쿠팡 저임금 일자리 졸라 늘이겠네...시급...최저임금...!".

댓글을 단 이들 가운데에는 쿠팡맨이 많아 보였다. 내 기사가 그분들의 분노를 자아낸 이유는 댓글 내용에 그대로 있다. 근무체제 개편으로 새벽 배송을 도입하는 걸 두고 쿠팡맨들이 반발하고 부담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게 꽤 시끄러운데 난 건조하게 신선식품 새벽 배송 진출 자체에만 초점을 두고 논란 소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논란을 모르지도 않았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이 좋다고 쓰지 않았지만 '내가 먼저 이걸 기사로 썼다' 거기에 들떠서 당사자들 고충과 분노는 헤아리지도 않고 소시오패스처럼 기계적으로 기사를 썼다.

쿠팡 배송기사 '쿠팡친구' 소개 페이지. 사진=쿠팡

심지어 기사에는 투웨이브 근무시간을 새벽조, 오후조 각각 언급하면서 '~을 도입하면 새벽조가 새벽 배송 서비스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라는 문장을 썼다. 투웨이브 근무체제 도입을 신선식품 새벽 배송 진출 근거로 삼아서 이런 문장을 쓴 건데 역시 건조하고 싸가지 없는 문장이었다. 내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근무방식을 개편한다며 직원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새벽조, 오후조로 나누는 건 물론 날 새벽조에 투입시킨다 하면, 졸지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벽에도 일해야 한다면 난 얼마나 빡쳤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너무 화나는 일이다. 근데 난 논란을 도외시한 채 객관의 탈을 쓰고 저런 기사를 썼다. 언젠가 '악의 평범성'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새벽 배송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악의 평범성 개념을 곱씹으면 위 기사를 쓰던 당시 내 모습이나 내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도 악의 평범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부끄럽다. 새벽 배송 시장의 산업 가치나 편의성에만 집중하고 그 시스템을 떠받치기 위해 갈려나갈 사람에는 무심했던 게. 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이내 잊었고 소비자로서 내 무신경함은 여전했다.

지금도 저 댓글을 보면 섬찟하다. 댓글에서 경고한 내용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건 사실이니까. 쿠팡맨만으로 새벽 배송 물량을 다 소화할 수 없고, '플렉스'로 일반인이 배송 업무를 함께 수행하지만- 긱 일자리, 특히 배송 업무 대가가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널뛰기하고 요즘은 워낙 많은 이들이 뛰어들다 보니 썩 좋지 않다. 그건 쿠팡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 긱 일자리도 비슷한데- 노동의 자기 결정권을 말하지만 부담 없이 저가에 언제든 쓸 수 있는 노동력을 확보하는 게 긱 일자리 주목적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사진=픽사베이

돌아보면- 인간으로서 공감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실감한다. 논란과 문제점에 눈 감으면서 객관적인 척, 독립적인 척, 중립적인 척하는 게 더 비겁하고 나쁘다. 일관성을 잃은 채 편의주의적으로 기억하고 행동하는 건- 직접적으로 모욕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당사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악의 평범성과 새벽 배송, 물류센터 논란을 접할 때면 늘 이 기사가 떠오른다. 그때 댓글로 꾸짖은 쿠팡맨들도. 남일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며, 남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서 내가 득을 보거나 위기를 모면하는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듭 말하지만 새벽 배송 이용자가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필요해서 생긴 서비스이고, 그게 절실한 사람이 있다(새벽 배송뿐만 아니라 온라인 배송 자체가 노약자나 장애인 등 활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노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온라인 쇼핑을 편리하게 이용하기에는 UX가 여전히 너무 불편하다는 것). 새벽 배송이 논란된다고 해서 그걸 없애는 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그 일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생계수단이기도 하고. 사다리를 걷어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수요가 너무 많고,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이 가장 착취당하기 쉽기에. 이용자가 많다면 굳이 그 복잡한 현장에 나까지 부담을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새벽 배송을 이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오프라인 장보기도 전보다 더 자주 한다. 온라인 장보기는 무료배송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사고 배송 쓰레기도 많이 나오지만 오프라인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사고 장바구니를 들고 가니 이 문제가 덜하다. 새벽 배송을 이용하든 말든 나 역시 내가 무슨 시혜라고 베푸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자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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