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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비에 돌란' 영화에 대한 생각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마미', '단지 세상의 끝'의 단편적 기억

by 딱정벌레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에 카메오로 출연한 자비에 돌란 감독. 사진=네이버

CGV에서 지난달 말부터 자비에 돌란 감독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 이건 무조건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CGV에서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기획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돌란의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게나마 봤던 몇몇 작품이 기억에 깊이 각인돼 있어서 호감이 있었다. 영화 배경음악도 마음에 들고. 내가 처음 본 돌란의 작품은 영화 '마미'였다. 2014년 12월 30일인가 31일에 이종사촌 언니와 영화관에서 봤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돌란은 캐나다 퀘벡 출신이며 그의 영화는 프랑스어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난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지역이 배경으로 나오는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물론 몬트리올 같은 데서 촬영한 작품은 여럿 있다. 그러나 '여기가 몬트리올'이야 이렇게 대놓고 영화에서 언급한 작품을 많이 본 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험의 한계. 그런 내게 돌란의 작품은 공간적 배경 측면에서 신선했다. 프랑스에서 쓰는 것과 미묘하게 다른 캐나다식 프랑스어도 참신해 보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

앞서 언급했듯 영화 배경음악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미가 특히 그랬다. 돌란은 1989년생인데 그 또래에게 익숙한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많이 나왔다. 많은 곡들이 좋았지만 Simple Plan의 'Welcome To My Life', Counting Crows의 'Colorblind'가 그런 느낌이었다. Oasis 'Wonderwall'도 그렇고. 그러나 내가 돌란 영화에서 들은 배경음악 중 가장 좋은 곡은 셀린 디온의 곡이다. 그중에서도 마미에서 남자 주인공과 어머니, 어머니의 친구가 함께 맞춰 춤을 추던 'On Ne Change Pas'.

1999년 셀린 디온의 au Stade de France 콘서트에서 'S'il Suffisait D' aimer' 공연. 출처=유튜브

셀린 디온은 원래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가수였는데도 난 그의 영어 노래만 들어봤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셀린 디온의 프랑스어 노래에 관심을 가졌다. 여러 곡을 알게 됐는데 대체로 다 좋았다. 영어 노래보다 더 좋은 듯하다. 굳이 뽑으라면 난 'S'il Suffisait D' aimer'를 가장 좋아한다. On Ne Change Pas와 같은 앨범에 수록됐다. 재작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스위스 베른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그때 프랑스를 떠나는 걸 기념하려고 이 곡을 들었다. 날이 밝아올 때 이 곡을 들으니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리고 좋아서 계속 들었다.

1999년 셀린 디온의 파리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영상을 보면 관객들이 라이터를 켜고 손을 흔든다. 요즘으로 치면 공연장에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사람들이 팔 흔드는 것과 비슷한데 라이터가 더 위험해 보인다. 어쨌든 재미있는 포인트이고, 공연도 왠지 감동적이었다. 20대 후반의 셀린 디온도 너무 아름다웠고. 공연장도 멋있었다. 특히 이 공연에서 On Ne Change Pas 부르는 게 정말 좋았다. 중간에 가사 없이 음악만 나오는 부분에서 셀린 디온 혼자 춤을 추는데 그게 너무 보기 좋았다.

마미에서 이 노래에 맞춰 등장인물들이 춤추는 장면도 그 작품의 백미였다. 전쟁 같던 그들의 관계가 평화를 찾은 느낌도 들고. 사실 이 장면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긴장의 연속이긴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음악을 즐기며 춤추는 걸 보니 나도 괜히 춤추고 싶어졌다. 그 이후 미술관에서 어떤 전시를 봤는데 정연두 작가의 '보라매 댄쓰홀'이라는 작품에 감명받았다. 이 작품은 댄서들이 춤추는 장면을 라벨지에 프린트해서 이를 벽에 스티커처럼 붙였고, 전시장 중간에는 미러볼이 돌아가며, 음악이 흐르는 모습이었다.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전시를 보면서 춤을 춰도 괜찮아 보였다. 영화 마미 장면도 같이 떠올라서 그 작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정연두 작가의 '보라매 땐스홀'. 사진=딱정벌레

자비에 돌란 이야기를 하는데 셀린 디온 이야기하고, 미술 전시 이야기하고 이놈의 삼천포를 어쩐담. 돌란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지만 이야기나 등장인물의 특징을 보면 이런 공통점이 보였다. 예전에 친구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해 보인다. 어머니를 연인처럼 생각하는 느낌도 들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런 게 떠오른다. 마미의 남자 주인공도 그랬고, '단지 세상의 끝'의 남자 주인공도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미와 달리 단지 세상의 끝 어머니는 많이 무심해 보였다.

오늘 본 로렌스 애니웨이에서도 그랬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내가 이번 주 월요일에 글을 털고 난 뒤 다음 글을 쓰기 전까지 며칠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도 하고. 돌란 기획전을 따로 한다니 그동안 못 봤던 그의 작품을 더 보고 싶기도 하고. 지독한 사랑을 다룬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사실 마지막 이유가 강렬했다. 오늘 상영작을 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보는데 그런 느낌이 왔다. 보통 게이를 많이 다뤘는데 이건 남녀 커플 이야기고, 물론 남자 주인공이 여성으로서 성 정체성을 깨닫고 거기에 충실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지만. 남자 주인공이 여성으로 삶을 살아도 그는 여성을 사랑하는 것도 내게 익숙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쓰지는 않으려 한다. 초반에 남자 주인공의 선택을 응원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여자 주인공의 마음도 절절히 와 닿았다. 어머니에 대한 남자 주인공의 애착 또는 집착, 오이디푸스스러운 심상은 이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 멋있었다. TV 집어던지고 아들 데리고 밖에 나갈 때 특히. 영화 끝 무렵에 남녀 주인공이 3년 만에 만나 대화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결단에 신념을 갖고 다르게 해석한 누군가의 말이 귀에 쏙 박혔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스틸컷. 사진=네이버

두 주인공의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이라서 이해되지만 이기적이기도 했다. 어쩌면 모순적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윤색하지 않았겠지. 옆에 누군가 있어도 바람을 피우고. 늘 자기 곁을 지켜주며 지지해주는 사람에게 충실하지 않고, 예전 연인을 주시하며 그를 향한 마음을 담은 시집을 내고. 거기에 충격받은 현재 연인이 떠나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는 한눈팔면서도 가정은 깨고 싶지 않아 하고. 남의 마음을 박살 내놓고 자신은 아무것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하는. '그래, 이게 인간이구나' 싶지만 난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도 상대방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고, 그게 전 연인이면. 너무 끔찍하다.

역시나 돌란 작품답게 배경음악은 다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셀린 디온의 노래도 나왔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다시 듣고 싶은데. 러닝타임은 많이 길었다. 오늘 두통이 좀 있었던 터라 영화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다 보니 대학시절 '영상으로 보는 독일 문화' 수업에서 분단 독일 시절을 다룬 그곳 영화를 본 게 생각났다. '러시아 문화론' 수업에서 본 옛날 러시아 영화 분위기도.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자비에 돌란의 이미지는 꽤나 강렬했다. 이제는 연기에 더 욕심 있다는 것 같던데. 영화 각본 쓰는 게 정말 힘들 듯하다. OST를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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