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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시작하는 이탈리아 여행

밀라노 이야기 별로 없음 주의

by 딱정벌레
밀라노 대성당. 사진=딱정벌레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 건 서유럽 여행 5일차 되는 날이었다. 낮에는 융프라우를 다녀오고 차를 달리고 달려 이탈리아 국경을 넘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밀라노.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저녁 시간대였다. 밀라노 대성당 앞과 주변 광장, 쇼핑몰 거리를 둘러보는 것 외에 이날 특별히 한 건 없었다. 9월 초였고, 무더위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융프라우 간다고 이것저것 껴입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흰색 칼라가 달렸고 제법 두께가 있는 내 줄무늬 면티셔츠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어딜 다녀오면 기록은 최대한 빨리 남기는 게 좋다. 1년 이내면 괜찮은데 그 이후로 넘어가면 많이 잊는다. 인상만 남아있고 정보는 별로 없다. 그냥 사진 보고 '아, 나 저기 갔구나' 하고 만다. 정보는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검색해보고.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한 여행이 아니라서 더 잘 잊는지도 모르겠다. 밀라노에서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초저녁에 도착해서 밀라노 대성당과 주변 광장, 쇼핑몰 거리를 둘러보고 숙소로 이동하는지라. 눈으로만 외관을 구경한 정도라 특별히 인상 깊을 것도 없었다.

굳이 말한다면 밀라노 대성당 건물 참 삐까뻔쩍하고 화려하고 멋있구나. 사진을 다시 보니 이날 하늘과 구름이 죽여줬네. 광장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모두 지금도 무사하면 좋겠다. 이런. 밀라노 하면 패션도시 이미지가 강한데 돌아보면 피렌체와 밀라노가 이탈리아에서 내가 깔끔하다고 느낀 도시였다. 베니스나 로마도 멋지지만- 동네마다 느낌이 다른데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은 피렌체, 밀라노가 더 강했다. 다른 곳은 너저분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고. 날이 더워서 괜히 내가 너저분한 기분이었나.

사진 1번 엠마누엘 2세 기마상. 사진 2~5번 엠마누엘 2세 갤러리 .사진=딱정벌레

밀라노 대성당 앞에는 근대 이탈리아를 통일한 인물로 알려진 엠마누엘 2세 기마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밀라노 대표 쇼핑몰 아케이드가 있는데 이름이 '엠마누엘 갤러리'라고. 짧게만 지나가서 큰 인상이 남아있지는 않았는데(피곤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패션위크다 뭐다 밀라노 가서 밤에 대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 올린 걸 보면 뒤늦게서야 '멋지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울 때 가서 야경을 보는 것도 나름 운치 있을 것 같긴 하다. 명품 브랜드 매장도 있었지만 정작 난 이 거리에서 서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밀라노 거리에는 트램이 지나고 있었다. 유럽에서 세포라 매장을 많이 봤는데 트램에는 신규 세포라 매장 광고가 래핑 돼 있었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꽤 흔해진 세포라지만- 그때는 국내 진출하기 전이라 세포라와 관련된 것만 보면 다 흥미롭고 신기했다. 국내 뷰티 편집숍도 좋은 곳이 많아서 세포라가 특별한가 싶기도 하다. 시코르 같은 곳도 처음 생길 때는 '한국의 세포라' 어쩌고 하긴 했다만. 부츠가 국내 진출할 때 기대가 컸는데 금방 철수하는 걸 보면 외산 유통 브랜드라고 꼭 강력하거나 위협적인 것 아닌 듯하다. 월마트처럼.

밀라노에서 아쉬웠던 게 있다면- 이건 다녀오고 난 뒤 일인데. 그동안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었다. 커피에 자부심이 워낙 큰 나라니까. 아메리카노도 안 파는 나라(정말인가요?). 근데 내가 여행 갔을 무렵에 밀라노에 첫 스타벅스 매장이 생겨서 화제를 모았다. 매장도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이탈리아 스타일을 좀 반영했다는 것 같고. 갔을 때 열었는지, 다녀오고 얼마 안 돼서 열었는지 헷갈린다만- 시기가 맞고, 시간이 좀 있었다면 다녀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사진 2번 밀라노 대성당 뒤편에 있던 갤럭시 S9 광고. 사진=딱정벌레

저녁을 먹고 숙소로 이동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피자를 먹었다. 숙소는 이비스 스타일스였는데 괜찮았다. 대체로 믿고 보는 이비스. 다음 날 아침에는 피사에 갔다. 전날 융프라우 간다고 새벽부터 분주했던지라 다음 날에는 좀 여유 있게 일어나서 움직였다. 피사는 주차장에서 좀 걸어가야 했다. 관광지는 어딜 가나 집시나 물건을 강매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피사도 그랬다. 싸구려거나 짝퉁 제품인데 바가지 씌운 가격에 들이미는. 돌아보니 유럽에서는 소매치기 때문에 늘 긴장 모드였다. 영국은 생각보다 덜 불안했지만.

피사 관광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실물로 본 피사의 사탑도 아름다웠고- 이탈리아를 되게 좋아하지 않지만 유럽 가면 이탈리아부터 꼭 여행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 역사도 엄청나고 정말 오래된 유적이 많다. 음식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커피나 디저트류는 맛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한국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카페나 휴게소에서 에스프레소 홀짝이는 재미가 있었다. 디저트는 로마 여행 정리할 때 이야기하겠지만- 삼천포로 샜는데- 온갖 질풍노도를 이겨내고 현재까지 제자리를 지키는 유적 위용을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느꼈다.

그걸 처음 느낀 곳이 피사의 사탑이었다. 몸체는 기울어졌지만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이 멋졌다. 건물 자체도 아름다웠다. 저기도 위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는 듯했는데. 완공시기는 밀라노 대성당보다 몇 년 늦지만 기공을 시작한 시기는 그보다 약 200년 전이라서 역사도 깊었다. 관광지이고 사람도 많았지만 로마나 베니스에 비하면 비교적 덜 붐빈다고 생각했다. 여유롭게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주변 풍광이 좋았다. 특히 잔디에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보기 좋았다.

피사의 사탑. 사진=딱정벌레

피사의 사탑 사진은 다시 봐도 너무 멋지다. 보통 피사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찍는 사진이 있다. 피사의 사탑을 손으로 받치는 것처럼 사진 찍는 등. 거기 가면 꼭 필수로 해야 하는 일 같다고 해야 하나. 난 그렇게 찍지 않았지만. 남이 내 사진 찍어주는 것보다 내가 내 사진 찍는 게 더 편한데(사용하는 렌즈가 다르니까?) 당시 쓰던 휴대전화 전면 카메라가 광각이 엄청 심해서 혼자서 유적지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편했다. 셀카봉을 쓰지 않아도 배경이 넓고 멀리 잡히니까. 그때 내 모습 다시 보니까 참 복스럽다.

피사의 사탑을 360도로 빙빙 돌아보면서 느긋하게 구경했다. 건물이 기울기 시작한 건 1차 공사 때부터였다고 하는데 중간에 이에 대비한 공사가 여럿 있긴 했지만 균형을 잡고 여태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하다. 경주에서 큰 지진이 몇 번 일어났을 때도 끄떡없던 첨성대 같달까.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진 이유는 지반 토질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간에 기울기가 더 심해질 때도 있었던 것 같고. 저렇게 기울어진 상태도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기울어진 모습 자체가 정체성이 돼버려서 바로 세워도 매력이 덜할 것 같다.

피사에는 기념품 가게가 몇 곳 있었는데- 판에 박힌 듯한 자석 파는 곳 말고 기념품에 개성이 느껴지는 가게가 있었다. 거기서 피사 그림을 담은 배지인지, 자석인지 샀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서 뭘 샀는지도 기억이 희미해지는군. 어디 구석에 있는 듯한데 찾아봐야지. 당장 쓸 게 아니면 관광지에서 사는 기념품이 생각보다 쓸모없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피사에서는 여행자 안내하는 장소도 깔끔하고 보기 좋게 꾸며서 마음에 들었다. 피사를 구경한 뒤, 로마에 가야 해서 이동하는 데만 나머지 시간을 다 썼다. 기억이 많이 휘발돼서 글이 담백하네.

사진 5~8번 피사 여행자 안내 센터 겸 기념품 가게.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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