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부터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한 조던 메크너 일기를 띄엄띄엄 읽는다. 'The Making of Prince Of Persia'가 원제이며 국내에도 번역됐지만 절판됐다. 알라딘에서 터무니없는 고가에 중고로 살 수 있긴 하다. 킨들에서 원서 사서 읽는 게 훨씬 더 싸다. 나온 지는 오래된 책 같은데 스트라이프 프레스에서 예쁜 디자인으로 다시 냈다. 난 번역서 존재는 몰랐고 그냥 빨리 읽고 싶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조던 메크너가 30여 년 전 20대 시절 페르시아 왕자를 개발할 때 쓴 일기다.
조던 메크너는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다. '올 어라운드 크리에이터'라고 할 만하다. 작가에, 게임 디자이너에, 영화 각본가에, 영화 제작자에. 페르시아 왕자를 개발할 때는 시나리오 작업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둘 다 큰 작업이다 보니 시나리오에 몰두할 때는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개발 일지를 읽으면 그런 일화가 나온다. 페르시아의 왕자도 유명하지만 그의 역작 중에는 카라테카도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애플 2 컴퓨터 버전으로 나왔지만 이후 범용화 됐고 비디오 게임으로까지 나왔다.
난 페르시아의 왕자를 즐겨본 적은 없다. 다만 어릴 때 집에서 복제 디스켓을 본 기억이 있다. 그게 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디스크였던 것 같고 집에 컴퓨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언니들이 컴퓨터 학원 다니면서 접한 건지 아님 이모가 학교에서 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해본 적 없는 게임이지만 디스크에 적힌 이름 때문에 내겐 친숙했다. 그때는 정말 컴퓨터가 내겐 너무도 거리가 먼 기기였다. 이제는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을 뿐만 아니라 몸에도 차고 다니는 시대인데- 격세지감이다, 좋은 의미로.
개발 일지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 책에는 토막글이 많다. 일기다 보니 맥락 없고 두서없이 쓴 듯한 이야기도 적잖다. 그래도 통찰을 주는 문장은 있다. 재미있는 일화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항상 멋진 이미지(?)로 그 내용을 저장했다. 내가 킨들에서 주로 쓰는 이미지는 까만 바탕에 흰 글씨지만(눈이 아파서 이걸로 항상 저장한다). 얼마 전 SNS에 하나를 공유했다. 그것 말고도 다른 내용도 많아서 길게 풀어보고 싶었다. 글에 공감을 표시한 이들이 평소보다 많았는데- 페르시아의 왕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했다.
1.느낌이 좋다고 실제로 좋은 게 아냐
출처=킨들
맨 처음 공유했던 내용이다. 새로운 게임에 착수해서 좋고 미래에 기쁨과 자신감으로 마음이 충만해졌지만- 침착한 자세를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 뼈 때리는 문장도. "느낌이 좋다고 반드시 내가 짠 코드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어쩌면 최고의 것은 가장 어두운 절망에서 나올 수 있다"라고. "뭐, 아닐 수도 있고." 단정 짓지 않고 아니면 말고식 마음가짐도 나쁘지 않았다. 순간의 기분과 감정에 속아서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들어 좋았다.
나도 종종 느낌에 속곤 한다. 일할 때든, 다른 걸 할 때든- 좋은 느낌을 받으면서 글 쓴 게 결과적으로 괜찮을 때도 있지만(일필휘지로 쭉쭉 써 내려간 글). 나중에 보면 똥인 경우도 없잖다. 때로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고 막막할 때 좋은 결과도 나온다. 얼마 전 '박하선의 씨네타운'을 듣다가 김초희 영화감독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자학과 자뻑을 오간다"라고. 요즘은 자학 상태에 있다고 했던가. 다들 그렇구나. 비슷한 고통을 견디며 산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다. 다들 힘든 거야, 견뎌야 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글감 찾고, 글 쓰는 데 보내는 이들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대부분은 자학 상태에 빠져 있다. 쓰는 동안에는 내가 벌레가 된 느낌도 든다. 벌레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이런 데 동원돼서 미안하지만- 내가 너무도 미물인 게 느껴진다. 원래 자학과 자괴에 익숙한 사람인지라- 더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부정적 자아를 총동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채찍질하려는 마음에. 자부심이 없진 않으나 그걸 너무 키우고 싶지도, 주목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선지 건강하지 않은 생각으로 작업에 임할 때가 적잖다.
그게 익숙하고 편해선지 계속 그런 마음 상태에 머무르기도 한다. 좋은 느낌에 속아서 일을 그르칠까 봐 두렵기도 하고. 아마 삶에서 성취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내가 자학하는 데서 스스로 위안 얻고 잘될 걸로 착각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거다. 조던 메크너 말처럼 가장 어두운 절망에서 꼭 최고의 것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결과물은 내 절망 수준만큼 나올지도 모른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상황인식이든, 감정인지든 간에.
2.울고 싶은 결과물이 나올 때 느낀 절망감이란
출처=킨들
이 책에는 카라테카를 작업할 때 이야기도 나온다. 카라테카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졌을 때 같기도 한데- 카라테카 PC 버전이 나왔을 때 그가 느낀 절망감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통찰을 주는 건 아니었고 그냥 공감이 갔다. 내 작업이 최종 결과물로 나올 때- 그게 내 손을 타지 않고 남의 손을 타서 나올 때가 있다. 기자 시절에도 그랬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내가 직접 기사를 발행해서 그게 덜했는데- 첫 번째 직장에서는 데스크와 편집부 손을 타니까. 기사 핵심이 바뀌고, 내 의도와 다른 제목이 들어가는데 고칠 수 없고.
어떤 수정은 충분히 수긍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수정도 있다. 예를 들어 데스크에서 고친 기사가 더 이상해졌거나 속된 말로 기사를 똥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중 하나인데 발생 이슈일 경우, 통신사나 타사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문장을 그대로 베껴서 데스킹을 한다던가. 많은 언론사에서 통신사 기사를 유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자기들 기사에 이용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거 신문윤리위원회에 표절로 불만 청구하면 경고나 주의 조치가 나가는 데도.
예전에 어느 벤처 기업 사무실을 취재하고 르포인지 스케치인지 구분이 모호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거기를 가보지도 않은 데스크는 그 기사 서두에 '실리콘밸리에서 느낀 자유가 느껴졌니 어쩌니' 이런 문장을 추가했다. 난 실리콘밸리 가본 적도 없는데. 본인이야 여러 번 가봤겠지만. 근데 바이라인은 내 이름이 나가고-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외국에는 편집인 이름도 나가던데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고. 기자 이름만 나가는데 기자가 실제 쓰지 않은 방향으로 막 편집해서 나가기도 하니.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 책에는 조던 메크너가 카라테카 PC 버전을 봤을 때 절망감을 느낀 일화가 나온다. 애플 버전과 비교해봤는데 차이가 많이 났다. ”원래 나와야 할 것의 50% 밖에 되지 않았고”. 그걸 만든 이들에게 자신이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사소한 문제가 100만 가지는 되는데- 자신은 디테일에 집중하며 애플 버전을 작업하는 데 2년씩 걸렸는데-“ 그 울고 싶은 마음이 이해됐다. 같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던 게 떠올라서. 내가 쓴 글이 이상하게 편집됐을 때 너무 괴로웠던, 어떤 시절 이야기.
그래도 조던 메크너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강점을 실감했던 것 같다. 자기가 왜 그 일을 잘할 수밖에 없는지. 다른 사람들은 못하는 일을 자기가 잘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런 경험에서 새삼 깨닫는달까. 데스킹 단계에서 기사가 이상하게 가위질당하는 상황을 접하면서 느낀 게 있다. 데스크가 원망스럽겠지만 내가 좀 더 잘 쓰지 못했던 책임이 있다고. 그에게 가위질당할 빌미를 주지 않도록 더 정교하게 잘 써야 한다고. 어디도 손댈 구석을 찾지 못하도록. 그렇다. 처음부터 자기가 잘하면 된다. 카라테카 PC 버전은 결이 다른 듯하지만.
3.로열티 후려치기에 대처하는 자세
출처=킨들
이 책에는 조던 메크너가 카라테카 2 버전 디자인에 참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이야기가 나온다. 상대방은 거절한다. ”이미 디자이너가 둘이나 있다고. 세명은 필요 없다”고. 이어서 로열티 이야기도 나오는데 “3%를 제안받았다”고 한다. 원래 요율의 5분의 1 수준이라나. “조던 메크너 아버지는 15%를 받으라고 조언하고, 그는 10%라도 좋겠다는 생각인데 그만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하고 있다. 심지어 로열티를 한 푼도 안 주고 다른 타이틀로 게임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심지어 그들은 3%도 굉장한 호의를 베푸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 ”조던 메크너에게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카라테카 성공에 기대 유익을 누릴 수도 있다”고. 열 뻗치는 이야기지만 그는 스스로 화를 누르고 자제력을 잃지 않은 걸 자랑스러워했다. 그게 인상 깊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데 저런 이야기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 화를 낼 때는 내야 하지만 사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서로 다칠 뿐이지. 뭐, 자신만 다칠 수도 있고. 화를 내고 나서도 기분 나쁠 거라면 화 안 내고 기분 나쁜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직 다 공유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 책이 괜찮은 이유가 그렇다. 일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함부로 훈수 두지 않고 과하게 잘난 척하지 않는다. 절제된 자신감이나 자긍심 정도 있다고 할까. 스스로 줏대가 서있고 자기 철학이 분명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중심이 서 있는 실력자의 차분한 마음가짐. 내가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모습에서 배울 점을 발견한다. 조던 메크너가 이 일기를 썼을 당시보다 내 나이가 훨씬 많은데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하고 미성숙하며 소유아기 발상에 갇힌 내 모습도 깨닫고.
4.막대한 투자가 우수한 결과물을 담보하지 않는다
출처=킨들
조던 메크너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수 있지만- 내가 받아들인 의미는 그랬다. 그가 대니 골린을 만난 이야기인데 “그가 모든 개발 시스템을 끝낼 개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는 이야기. 그걸 들으면서 조던 메크너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개발 시스템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 이점이 있을 거라고 당사자는 생각하는 듯하고 그게 맞을 수도 있지만- "최고의 애플 게임은 디스크 드라이브가 두개인 평범한 애플 2 컴퓨터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을 조던 메크너는 짚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게임 '레스큐 온 프랙탈러스'와 '볼 블레이저'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두 게임이 경쟁작보다 특별히 더 낫거나 차별화되지 않았던, 루카스 필름 이야기를 한다. "'래스터 블래스터', '초플리프터', '카라테카'는 특별한 자원이 없었던 솔로 프로그래머의 결과물이었음을 상기하며- 대니가 게임 디자인을 21세기로 이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화장실에 돈을 갖다 버리는 걸지도 모른다"며. "난 내 애플 2 컴퓨터로 해보겠다"라고. 연장을 탓하지 않는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투자는 필요하다. 저투자 고효율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투자도 없이 좋은 결과물을 욕심내는 것도 어불성설일 수 있다. 특히 사람을 쓰는 일이라면- 그건 동기부여도 안 된다. 오히려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하는 일이니 대충 하고 말지, 뭐'라는 생각을 자아낼 수 있다.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그런 건 아니기에. 활동범위나 난이도, 기여도 이상으로 누리는 사람과 그 반대인 사람을 대할 때 최소한 형평성은 있어야 한다. 양심이 있고 의지가 있으면 그걸 지킨다. 현실에서는 핑계에 떠밀려 도외시되지만.
너무 멀리 간 생각을 하는데- 투자나 대우나 혜택에 너무 기대지 않고 이미 가진 자원으로 최선을 다해보려는 마음가짐은 배울만 했다. 애초에 준비되지도 않고, 능력도 안 되면서 투자나 대우, 혜택만 요구할 수도 있으니. 결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특전만으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없고, 설사 그것 때문에 일하는 것도 마냥 바람직하지 않다는 제프 베조스 생각도 떠오른다. 그가 말하는 선교사 정신이라고 해야 하나. 좋은 생각이고 간과하기 쉬운 마음이기도 하다. 그 선교사 정신을 착취당할까 봐 늘 신경이 곤두서는 게 현실이지만.
5.마감 정하고 으쌰으쌰하는 마음
출처=킨들
앞서 언급했지만 조던 메크너는 몇 달 동안 다른 작업을 하느라 게임 개발에 손도 못 댄 적도 있다. 오랜만에 게임을 부팅해서 들여다보고 암담했던 심정을 일기에 담았다. 그때 토미라는 인물이 "여유 시간에 오래된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처럼 게임을 생각하라"라고 제언한다. 문제는 그 오래된 차 엔진 블록은 단단히 녹슬었다는 것. 작업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된 데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아니 얼마나 손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갈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지는 심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그건 초고를 쓰고 나서 퇴고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싶기도 했다. 초고는 쓰레기인 경우가 많아서 뭘, 어떻게 얼마나 다듬어야 할지 감이 안 설 때가 있다. 물론 작업 목록은 있다. 내가 고쳐야 할 것을 목록화했고 그거 고치면서 지우는 재미로 퇴고하기도 한다만. 가끔 확신이 안 설 때가 있다. 최근에 좀 그랬다. 제일 슬플 때가 내가 날 못 믿을 때. 중심을 잃은 기분도 들고.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 일기를 계속 읽다 보면 다행스럽게도 조던 메크너는 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마감 일정을 정하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3달 뒤 쓴 일기를 보면 좀 안정된 느낌도 든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중노동을 했다. 장시간 작업하고 거의 일만 했다.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일 말고 재미를 위해 뭔가를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조차 아득할” 정도. 시나리오 작업은 저 멀리 있고. 그러면서도 “극도로 지치거나 떨지 않도록” 스스로 다잡으면서 남은 시간을 환기하는 게 인상 깊었다. 여기에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그가 시간을 쪼개서 언제까지 게임 작업하고, 언제부터 시나리오 작업한다는 계획을 세운 이야기도 있다. 그래, 계획이 그대로 실행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
6.쪼는 사람이 필요해
출처=킨들
읽다가 약간 웃기기도 했던 내용인데- 브라이언 에펠러라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미팅 이야기다. “그가 공책을 꺼내서 게임 진행상황을 묻는데 디스크, 메모리는 어느 정도 들고, 어떤 종류의 도큐멘테이션인지” 질문한다. 조던 메크너는 그런 질문을 받고 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프로젝트가 실제라는 느낌도 들고, 4~5달 안에 출고될 것 같고 일이 진행되고 실체가 보인다는 생각에 신났던 것 같다. 심지어 “8주 안에 예비 버전이 준비될 거라는 구체적 약속까지 했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한 약속이라고”.
그 뒤에 나온 내용이 재밌는데 그동안 "1999년 1월까지는 준비돼야지 ㅎㅎ"라고 말하곤 했다나. 중간에 PM이 바뀐 건지 까먹었는데 조던 메크너는 “PM으로서 브라이언 효과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미팅하고 나서 이 의구심을 지웠다고. 그러면서 느낀 게 자신을 밀어붙일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어보니 쪼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지만 게임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상황을 짚는 게 일을 진척시키는 느낌도 들고. 개발자 입장에서는 좋은 의미에서 긴장감과 부담을 불어넣는다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조던 메크너가 준비됐기 때문에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거대로 긴장감을 느끼고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조던 메크너는 게임을 어서 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 스스로도 일을 잘 진행시키고 있으며, 준비됐기 때문에 미팅에서 의욕을 더 불어넣었다 싶기도 하다. 불안감이 없지는 않겠지만. 돌아보면 글 작업하면서 불안감을 느낄 때도 스스로 부족함으로 느끼고 많이 모자란 데다 진척이 잘 안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진도가 잘 안 나갈 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머리 식힌다는 핑계로 다른 일하는 건데-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게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안 그럴 때도 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승부를 내야 할 일도 있다. 아무리 지지부진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계속 고민해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다른 일하고 있으면 해야 할 일을 제쳐뒀다는 생각 때문에 불편하고 찜찜하다. 힘들어도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고 좀 지치더라도 마음 편히 쉬는 게 낫다. 정해진 계획을 미루지 말고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7.이거 히트 치고 싶은데
출처=킨들
책을 읽다 보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과정에서 느낀 구체적인 고민이 나온다. 다음 단계로 가는 것외에 보상이 없는 거나, 공주를 구하는 것 외에 목표가 없는 거나, 적이 없는 거나. 다 메모했지만 게임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이라 여기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세세한 고민이 좋았다. 내가 페르시아의 왕자를 해본 적 없어도- 뭔가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것저것 구상한 흔적을 활자로 접하니- 이 또한 역사적 게임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세세히 담은 소중한 기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콘텐츠 회고 의미도 돌아보고.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카라테카처럼 페르시아의 왕자를 성공시키고 싶은 욕망을 담은 내용이었다. 이제는 히트 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내 목표는 아니지만(솔직히 그게 목표였던 적도 없다) 게임은 성격이 다르니. 저런 욕망도 중요하고, 그게 결과로 나타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게 새삼 실감 났다. 그걸 솔직히 드러내는 것도 좋았고. 성공을 향한 절박한 마음이 좋은 결과물을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거니까. 난 성과지향적 인간이 못 됐지만 그걸 지향하고 일하는 것과 아닌 건 차이가 크긴 한 듯.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있는지, 그 게임이 얼마나 히트 쳤고 인정받았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20대 시절 조던 메크너를 보면 짠한 느낌도 든다. 종일 틀어박혀서 일만 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해야 하는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또 막막하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그 시절 그에게 '너 잘 될 거야’라고 알려주면 마음이 편했을까. 글쎄. 그러면 페르시아의 왕자가 잘 나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불확실한 미래, 불안감이 더 잘 해내는 동력이 될 수 있으니까. 불안이 싫어도 그게 주는 유익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띄엄띄엄 읽고 있어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데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개발 본 작업 이야기에 들어가면서 책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흥미진진했다. 쪽수를 보니 분량이 길지는 않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와인 네 잔을 마신 상태였다. 이 문장을 쓰고 난 지금은 술이 다 깬 듯. 게임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결과물은 달라도 만드는 사람으로서 마음가짐이나 고민에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통찰을 얻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