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로마의 휴일
실컷 먹고 구경하고 즐기다
이탈리아 여행 4일차 되는 날에 비로소 로마를 구경했다. 로마에 온 지는 며칠 됐지만 본격적으로 관광한 건 이날이 처음.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먼저 콜로세움에 갔는데 안을 구경한 건 아니고 바깥만 둘러봤다. 갈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콜로세움-키르쿠스 막시무스-진실의 입-포로 로마노-트레비 분수-스페인 광장-판테온-바티칸 등. 가야 할 곳이 많았기 때문에 벤츠 타고 중간중간에 내려 구경하는 코스를 이용했다. 기사님이 따로 있고. 이 많은 곳을 하루 안에 다 둘러보려면 이게 가장 효율적이고 편했다.
콜로세움은 알다시피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이다. 수용 관중 수는 5만명이라고. 경기장은 보다시피 많이 파괴됐다. 사실 고대 건축물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로마에 그런 유적이 많다는 것도 대단하고. 이른 아침이었지만 일찍부터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많았다. 전 세계에서 몰려오니까.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 '가슴이 웅장해진다'인데 콜로세움이 그 표현에 딱 어울린다. 주변은 반 바퀴 정도 걸으면서 둘러봤다. 안에 들어가서 봐도 볼만 했겠다.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어서 키르쿠스 막시무스로 이동했다. 딱 그곳까지 간 건 아니고 먼발치서 바라보고 배경 삼아 사진 찍는 게 목적이었다. 여기도 고대 로마 전차 경기장이자 대중 오락 시설이었다. 터 정도만 남아있다. 옛날부터 건물에서 이것저것 떼어가고 골조는 남아있는 듯. 경기장 부지에서 공연이나 축제 등을 연다고 한다. 자세히 볼 건 아니라 사진만 찍고 먼발치서 바라보고 진실의 입으로 이동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나온 진실의 입.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이 조각의 입에 손을 넣어서 잘려도 좋다"라고 서약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나.
사진 1번 키르쿠스 막시무스, 2번 진실의 입, 5~6번 포로로마노. 사진=딱정벌레 이어서 포로 로마노에 갔다. 여기도 고대 로마 유적지. '포로 로마눔'이라고도 하는데 로마 정치와 경제 중심지였다고 한다. 현재 위치는 로마 구도심에 있고.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도 열리고 검투사 경기도 진행했다고 하고. 고대에 선거라니. 그때와 지금 선거 의미는 다르겠지만. 로마에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냐고 하면 난 여기가 먼저 떠오른다. 처음 봤을 때도 너무 좋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데 아래에 있는 것들이 마치 찬장처럼 보이는 느낌이랄까. 장난감 왕국 같은데 역사가 오래된, 실존했던 공간이고. 전율이 느껴진다.
로마 여행하던 날은 맑고 화창했으며 무척 더웠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도 햇빛이 따사로웠다. 덥긴 했지만 이렇게 멋진 광경을 볼 수 있고, 내가 여기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포로 로마노 의의도 마음에 들었다. 역사성도 엄청나지만 정치와 경제 중심지였다니. 옛날에는 더 컸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내 눈에는 아담한 유적지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도 감회가 남달랐다. 고대 이후로는 여길 오는 사람들이 과거 찬란했던 시절을 주로 그리워하는 의미 정도 남은 것 같기도 하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갈길이 구만리라 적당히 보고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지만 트레비 분수나 바티칸에 사람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트레비 분수는 근처에 아이스크림도 사 먹어야 하고, 분수 앞에서 사진도 찍어야 하고, 동전도 던지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내게 트레비 분수는-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에 있는 가짜 트레비 분수대 이미지로 친숙했다. 지금도 있는 듯. 옛날에도 그 분수에 동전 많이 던졌고 제법 쌓여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멋진 거 새로 만들지 왜 따라 했을까.
사진 1번 트레비 분수, 2번 트레비 카페 대기 카드(?), 3번 트레비 카페에서 사먹은 젤라또 아이스크림, 4~6번 뽐삐에서 사먹은 티라미수, 7번 뽐삐 냉장고. 사진=딱정벌레 트레비 분수대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대서 오래 있기는 어려웠다. 역시 갈길이 멀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먼발치서 구경하고 좀 가까이 가서 보고 사진을 찍었다. 롯데백화점 모조품만 보다가 드디어 진짜 트레비 분수를 보는구나. 감격스러운 순간. 트레비 카페는 그 주변에서 맛있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초코 젤라토를 먹었는데 맛있긴 했다. 로마도 맛집이 많은데- 티라미수가 유명한 '뽐삐'라는 곳에 가서 티라미수를 사 먹었다. 다시 사진을 봐도 너무 먹음직하다. 딸기가 한가득 담기 티라미수.
가격은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뽐삐도 국내에도 들어왔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동대문에 있는 현대 아웃렛에 있었는데 가격이 극악(?)했던 기억이. 로마에서 먹고 맛있어서 국내에서도 다시 먹어보고 싶었지만 가격을 알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국내 디저트도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것들이 많다. 티라미수도. 현대백화점그룹이 맛있는 해외 디저트 브랜드를 국내에 많이 수입했던 기억이 난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온 매그놀리아도 그렇고. 거기는 바나나 푸딩이 유명하지. 현대백화점 일부 매장에 있었는데 이제 없는 듯.
로마 뽐삐 매장에서 눈에 띈 건- 우버 잇츠 표시가 붙여져 있었는데 배달이 되는 매장인 듯했다. 또 냉장고에 제품이 가득 들어있는데 관광객이 많이 오고 도둑이 많은지 직접 꺼내지 말고 점원에게 이야기하라는 표시가 적혀 있었다. 더 웃겼던 건 티라미수를 담은 종이 상자 뒷면인데- 제품 정보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뭐지. 한국인인 거 알고 이런 데다 넣어준 건가. 아님 한국 수출용 상자를 너무 많이 찍어냈나. 설마 한국에서 생산하는 건 아닐 테고. 인상 깊어서 사진을 찍었다. 당도나 맛에 비하면 칼로리는 평타인 것 같다. 내 기준에서는.
사진 4번 스페인 광장, 5~6번 세포라. 사진=딱정벌레 해외 가면 널린 게 세포라고, 이제 국내에도 세포라 매장이 제법 늘었지만- 그때는 난 처음보다 보니 매장이 눈에 보이면 꼭 들어가 봤다. 스페인 광장 근처에도 있었는데 매장 규모는 기억나지 않는다. 파리 세포라에 K 화장품 코너가 있던 게 인상 깊어서 여기도 있나 싶었는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다. 세포라는 자체 브랜드가 좋다고 들었는데 아직 한 번도 사서 써보지 않았다. 세포라가 들어올 당시에는 이미 국내에도 좋은 편집숍이 많이 생겼고, 그곳들이 한국의 세포라를 표방하고 있어서. 코시국 이후로 화장도 잘 안 하고 기초에 관심 많다.
세계적 관광지다 보니 사람이 많고 내가 찍은 사진에도 사람들이 많이 찍혀 있다. 얼굴이 나온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하는데 그마저도 약간 귀찮아서 다른 사람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은 아예 올리지 않는다. 스페인 광장도 마음에 들었는데 사진에 사람이 많이 찍혀 있어서 제대로 된 사진은 못 올렸다. 이 정도로 보고 판테온에 갔다. 신전으로 유명한 판테온. 고대 로마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 용도로 지었다.
여기도 사람들이 엄청났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아래 두 번째 사진이 광장 중간쯤에 있는 조각인데 거기 넘어서까지 줄이 길었다. 줄은 금방 짧아지긴 했다. 더운 날씨에 이 행렬에 참여해야 하는 게 짜증 나긴 하지만 줄이 빨리 줄어들어서. 건물 안에 들어가면 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바티칸 가서도 느낀 거지만 로마 유적지는 천장도 각장 문양과 그림이 화려해서 시간을 뗄 곳이 없었다. 그 와중에 사람은 많고 소매치기도 많으니 그들에게서 귀중품을 사수하느라 신경 쓰이고 구경은 해야 되고. 가방을 어루만지며 샅샅이 내부를 훑었다.
사진 1~5번 판테온 신전, 6~8번 타짜도르 커피. 사진=딱정벌레 판테온에 가면 근처에 꼭 들를 곳이 있다. 바로 타짜도르 커피. 지금은 국내에도 매장이 몇 개 생겼는데 그때는 없었다. 판테온 신전 근처에 있어서 원두도 좀 사고 커피도 좀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이탈리아는 살 게 많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주로 쇼핑했는데- 피렌체는 가죽공방도 있고, 로마만 해도 커피에 먹을 게 많으니. 티라미수 같은 건 못 사겠지만. 판테온 인파를 헤치고 나와 타짜도르에 가서 커피를 샀다. 에스프레소는 아쉽게도 못 마시고 원두 간 것만 샀다. 내 것도, 선물용도. 가족과 친척에게 줬는데 반응이 좋았다.
매장은 널찍했던 것 같다. 사람도 많고. 여기서 모카포트도 사는가 본데 그건 엄두를 못 냈다. 거기다 마시면 커피도 더 맛있을 텐데. 국내에 들어온 타짜도르 매장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 SNS에 올라오는 것만 봤는데 명성 있는 브랜드고, 수입 브랜드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비싸다고 생각했다. 국내 커피도 맛있고, 홈카페 시대라서 집에서도 웬만한 커피는 맛있게 내려마실 수 있으니. 현지에서는 팔지 않는,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메뉴도 파는 듯했다. 요즘도 운영하는지 모르겠는데 겸사겸사 한번 가볼까 싶기도 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바티칸에 갔다. 사실상 로마 여행 마지막 코스. 바티칸은 볼 게 어마어마하다. 웬만한 건 둘러보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면서 로마에서 마지막 여흥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참고로 서유럽에서 묵은 숙소 가운데 로마 숙소가 가장 좋았다. 바티칸에는 각종 조각이나 볼거리가 넘쳤는데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주로 천장을 찍은 게 많다. 천장에도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천천히 걷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천장을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미술품처럼.
바티칸에서는 오디오 가이드 기기에 끼울 수 있도록 이어폰을 하나 줬다. 초록색 이어폰인데 그냥 가져가도 됐던 것 같다. 말이 이어폰이지 양쪽 귀에 꽂을 수 있는 건 아니었고. 한쪽 귀에 꽂는 용도라만 나옴. 혹시나 다시 쓸 일 있을까 했지만 역시나 쓸 일은 별로 없다. 그냥 기념품. 바티칸 내부를 구경하고 나와서 화장실도 가고 기념품 가게도 가고 바깥 광장도 둘러봤다. 광장은 넓었고 건물에 사도로 보이는 이들을 조각처럼 새겨놓아서 인상 깊었다.
문득 대학시절 친구가 여행 도중 바티칸 우체국에서 내게 엽서를 써서 보내준 게 생각났다. 여기서 일하는 수녀님이 한국인이라서 신기했다고. 국제 우편인 만큼 그 엽서를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친구가 멀리 여행 가서 날 생각해주고 엽서까지 손수 써서 보내준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점점 이런 마음 씀씀이를 받기가 어려운 나날이지. 우리가 좀 더 어릴 때라서 가능했던 일인가 싶기도 하고. 예전에 간사로 일했던 연구소 원장님도 바티칸 대사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로마 여행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변에 이런저런 매장을 쏘다녔다. 휴대전화 매장에도 들어갔는데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다양한 삼성 휴대전화를 보면서 '이런 것도 좀 국내에 팔지' 싶었다. 중저가 보급형 제품도 팔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프리미엄 폰 중심이고 중저가로 겨냥하는 시장은 아닌 듯. 서서히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로마 여행 다음 날에는 피렌체에 갈 예정이고, 그다음 날은 베니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그다음 날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갔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바티칸 광장. 사진=딱정벌레여행 수기를 쓰는 건 재미있다. 다녀온 뒤 바로 하면 좋은데- 일상 톱니바퀴에 맞물려 정신없이 돌아가느라 의지를 내서 바로 쓰기 쉽지 않다. 그때그때 메모해서 나중에서 몰아서 쓰기도 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도 예전 사진 다시 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게 나쁘지 않다. 더욱이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됐지 않나. 그나마 요즘 홈쇼핑에서 여행 상품을 팔긴 한다. 지난주에는 이탈리아 여행 상품도 봤다. 흥미로운 게 출발일이 정해져 있지 않고, 1년 이내 출발로만 돼 있다.
대만이나 베트남 등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지역으로 간주된 곳도 여행상품을 팔긴 했다. 베트남은 요즘 어떤지 모르겠는데- 백신을 다 접종하더라도 나중에 또 맞아야 할 거고, 변종 바이러스 때문에 일이 아니면 여행을 목적으로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가야 하니까. 신기하게도 내 브런치 검색어 유입을 보면 여행을 키워드로 들어오는 게 많다. 특히 북유럽 쪽이 많았다. 노르웨이 여행을 검색해서 종종 들어오던데 다른 곳도 아니고 왜 노르웨이일까 싶다.
여행 수기를 썼을 때 불편한 게 있다면- 자꾸 다음이나 카카오로 노출이 된다는 거다. 메인에 뜨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그럴 때마다 조회수가 미쳐 올라간다. 얼마 전에는 내 브런치북 두 개가 브런치 메인에도 노출된 것 같던데 그때도 조회수가 미쳐 올라갔다. 구독자도 좀 늘었고. 날 알리려는 목적으로 브런치를 운영하는 건 아니라서 이런 식으로 노출돼서 조회수가 폭주할 때마다 좀 불편하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그렇게 폭주하는 것도 아니지만. 브런치에서 다음, 카카오 노출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좋겠다. 이 글도 노출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