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서점, 백화점 단상
그들 폐점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상반기
2년 전 반디앤루니스 여의도 신영증권점에서. 사진=딱정벌레오프라인 유통채널이 문 닫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폐점이 몰려 있다 보니 비감한 기분도 많이 든다. 3~4년 전이었나. 본가 근처 이마트가 문 닫을 때도 많이 아쉬웠는데- 올해도 추억의 장소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다. 즐겨가던, 또는 좋아했던 서점, 자주 갔던 백화점 등. 반디앤루니스가 그랬고, 다음 달 문 닫는 대구백화점이 그렇다. 연말에 또 정들었던 대형마트 점포 하나가 폐점할 예정이다. 그곳도 순례를 한번 다녀오긴 해야 할 듯.
지난주였나, 지지난주였나. 반디앤루니스 부도 소식으로 출판업계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것 같다. 반디앤루니스만 문 닫은 게 아니라 스틸북스도 문 닫고- 폐점하는 서점이 많아서 이젠 그런 소식이 특별하게 들리지 않을 법도 한데. 반디앤루니스는 규모가 컸던 서점이라서 놀라웠다. 교보, 영풍 다음으로 제일가는 서점이었으니까. 나도 반디앤루니스에 자주 갔다. 여의도 신영증권 건물에 있는 매장을 종종 갔는데 카페 아티제와 붙어 있어서 커피도 종종 마시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글도 자주 썼고.
한편 반디앤루니스나 기타 서점 폐업 소식이 충격적이지만 않았다. 냉정한 생각도 들었는데-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내 생각이 폐점 원인은 아니겠지만. 츠타야식 인테리어와 강연, 음료 판매로 모객 하려던 서점이 정리되는 과정이다 싶었다. 츠타야식 인테리어는 반디앤루니스를 보면서 든 생각이고. 일부 독립서점은 츠타야식 인테리어+강연, 음료 판매 이미지가 내겐 강했다. 그전부터 서점은 늘 어려웠지만 언젠가 츠타야 열풍과 더불어 서점 창업이 봇물을 이뤘다. 위 세 가지로 수익을 내려해도 그게 근본 대책은 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최근 영업 종료한 반디앤루니스 여의도 신영증권점. 사진=딱정벌레 지인 중에 서점 창업한 이가 있어도 내가 모든 서점 업자를 아는 건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새 서점 창업에 뛰어든 이들도 어려운 현실을 알면서 이 시장에 참전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서점업으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을까란 의문도 든다. 함부로 예단했다면 죄송하다. 그러나 책만 팔아서 돈 많이 버는 게 어렵다는 건 상식이고 강연을 꾸준히 돌리고, 커피는 물론이고 술까지 팔았던 데에는 책 판매보다 그게 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한 어떤 업자도 있었고.
어떤 이는 서점을 오래 운영하겠다기보다 '우선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기도 했다. 하긴 시작했다고 오래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위험부담이 있긴 한데 생각한 뒤, 실행하기보다 실행하면서 생각하는 게 더 맞는 사람도 있으니. '자기 공간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카페를 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서점 업자 가운데에도 그런 생각이 없진 않은 것 같다. 자기만의 살롱, 나만의 개성 있는 공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벌면 더 좋고. 어떤 서점은 서점이라고 하기에는 카페나 바 느낌이 더 강하기도 했다.
나도 판매 도서가 좋고, 공간도 멋진 서점이 좋았다. 관광한 느낌도 들고. 거기서 의미 있는 책을 발견하고 좀 더 시간을 보내면 좋은 추억을 남긴 것 같고. 방문하는 것 자체가 삼림욕 하는 기분이 드는 그런 곳도 있다. 서점뿐만 아니라 개성 있는 오프라인 공간에 그런 기대심리가 있는 듯. 한편으로는 공간은 멋진데 책 큐레이션이 별로인 서점은 아쉬웠다. 특히 독립서점에 가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은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는데 도무지 살만한 책이 없어서 난감할 때가 있었다. 취향 차이일 수 있겠지만. 그냥 큐레이션이 나와 안 맞은 거지.
2년 전 반디앤루니스 여의도 신영증권점 영업 당시 모습. 사진=딱정벌레 한편으로는 책 큐레이션이 개성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는 곳도 있었다. 대형서점에서 인기 있는 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유명인이 운영해서 인기 있고, 많이 회자되고, 음료와 디저트 가격은 높지만 출판업계 주목을 받는 곳을 보면 씁쓸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명인도 독립서점을 많이 운영하고, 그들 매장이 모두 잘 된 것도 아니고, 그중에서도 폐업하는 매장도 있다. 애초에 이 시장도 크지 않은데 포화된 시장이고. 미용실과 비슷한 느낌도 없잖아 들고.
서점이 문을 닫는 건 책을 입고할 곳이 줄어든다는 의미도 있지 않나 싶었다. 이미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들 구입하지만 말이다. 독서 인구수는 줄어들고, 읽는 책 수도 감소하지만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는 역설적 현실 속에서- 한때 서점 창업이 붐을 이루다가 이제 폐업이 줄을 잇는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다. 중언부언하는데 츠타야식으로 서점을 꾸미고, 강연 시리즈를 돌리고 음료를 파는 게 서점 본질도 아니고 서점을 부흥시킬 필살기는 확실히 아닌 듯하다. 이제 누구나 하니까.
반디앤루니스 여의도 신영증권 매장은 자주 가다가 지난겨울 이후 발길이 뜸했다. 돌이켜보니 그 매장에 자주 가도 정작 책은 많이 사지 않았던 것 같다. 전자책을 주로 사고, 종이책을 사도 교보문고나 알라딘을 더 자주 이용하니까. 두 곳 다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마일리지가 제법 쌓여있는 까닭도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반디앤루니스를 자주 가기보다 그 옆에 있는 아띠제를 더 자주 갔던 것 같다. 반디앤루니스 신영증권점도 출입을 통제하고 영업 종료 안내문을 앞에 붙였으며 매장 내 불을 거의 끄는데 가끔 스탠드 불을 켤 때가 있다.
근데 서점만 문 닫았고 아띠제나 편의점은 그대로 운영하고 있어서 요즘도 이 건물에 자주 간다. 지하에 식당이나 카페도 많고. 이 건물 자체는 여러 기업이 입점해서 영업하고 있으니까. 최근 작업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이 매장을 자주 가는데- 영업을 종료한 반디앤루니스 코너를 마주하면서 작업을 겨우 겨우 하고 있다. 간판은 그대로고 일부 책장은 거의 비었는데- 아직 책이 한가득 꽂힌 책장도 있다. 출판사에서 미리 책을 빼갔다고 들었는데 그대로 남은 책은 뭐지 싶고.
영업을 종료했는데도 저녁에 스탠드 불을 켜놓은 걸 보면 기분이 묘하다. 폐업한 매장을 보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본가 근처 이마트가 문 닫기 몇 주 전 아버지와 함께 매장을 순례했다. 이미 매장에서 상당수 제품이 빠져나갔고 많은 매대가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운영을 종료하는 게 티 나는 매장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어수선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도 안 돼 있고. 피난 간 느낌도 들고.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유통 채널도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은 별로 이용하고 싶지 않더라만.
그래도 이제 매장이 사라지기 때문에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기는 했다. 이마트의 경우- 내가 중학생 때부터 있던 매장인데 원래 월마트였다가 이마트로 바뀐 곳이었다. 어릴 때는 번화한 이미지였고 매장도 제법 컸다. 어쩌다 저녁에 가족과 대판 싸우고 기분이 울적할 때 여기 와서 마음을 달랬고. 추억도 많다. 대형마트 실내온도 조사를 하거나. 모교회에서 아동시설에 매달 봉사활동(생월 잔치)을 가면 근처 이마트에서 와서 같이 봉사 활동하고 먹거리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대형마트가 단순 유통채널보다 커뮤니티 느낌도 들었다.
그런 기억, 의미가 있다 보니 어떤 매장은 폐점하는 게- 단순 폐점이 아니라 추억의 장소가 사라져서 비감한 기분이 더 들기도 하다. 개인 경험이지만 난 서점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그런 느낌이 많이 드는 듯하다. 이달 초 대구백화점 본점에 가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본점이 역사가 무척 오래됐고 국내에서 드문 지역 백화점인데 대기업 백화점 공세에 못 이겨 결국 본점 문을 닫았다. 다른 지점이 남아있긴 하지만. 본점은 상징적인 장소라서. 지역을 대표하는 번화가에 있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여기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아무튼 고별전을 한다길래 고별 기념 할인행사와 기념 전시를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가봤다. 기념 전시에는 볼거리가 참 많았다. 역사가 오래된 지역 유통채널이라서 그런지 여기 자체가 지역 역사이기도 했고. 옛날 백화점 명절 선물 카탈로그나 광고모델 변천사, 옛날 백화점 종이가방, 옛날 포장지, 시대별 직원 유니폼, 역대 백화점 카드, 역대 백화점 상품권, 각종 티켓, 수료증, 상장 등. 박물관에서 전시해야 할 물품이었다. 사료 가치가 높은 전시인데 이걸 1층 구석 귀퉁이에 작게 마련해서 많이 아쉬웠다.
이번에는 이 정도로 전시했다 하더라도 다음에는 좀 제대로 하면 좋겠다 싶었다. 지역 역사관에 기획전을 한다거나- 돌아보면 지역 유통채널이 다른 곳도 있을 테니 동아백화점 같은 곳과 연계해서 하거나. 이건 지역 상업 역사이기도 한데 지역 경제를 회고하고 기억하는 의미에서라도 가볍게 흘려보낼 역사는 아닌 듯하다. 삼성상회도 대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유통을 키워드로 할 수 있는 전시나 기념 행위는 여럿 있지 않을까 싶고. 누군가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두 기업 운명이 이렇게 갈렸다'라고 하는데 '수고하셨다'라고 말하고 싶다.
홈플러스 1호점인 대구 칠성점도 문을 닫는다. 올 연말까지 영업한다고 들었는데 부지를 매각하고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다고. 그 동네 아파트 많은데! 1호점이라서 홈플러스에서 새로운 매장 콘셉트를 도입할 때 여기서 먼저 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아쉽다. 돌아보면 10대 시절 썼던 소니 CD플레이어도 여기서 부모님이 사주셨고. 대형마트가 익숙지 않았던 시절에는 되게 고급 매장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산 물건도 좋은 제품이었고. 홈플러스도 삼성-테스코 합작으로 시작해서 굴곡진 시절을 지나고 있구나.
너무 라떼스러운 생각인지 몰라도 난 홈플러스에서 소싱한 해외 상품, 수입 제품이 좀 더 괜찮다고 생각했다. 테스코 PB도 팔았고. 한때 테스코와 합작해서 생긴 채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소싱 역량이 좋은 듯했다. 국내에서 만든 제품도 좋지만. 나중에 시간 되면 근처 제일모직 옛날 공장도 둘러봐야겠다. 지금 삼성창조캠퍼스로 바뀌었는데 여공 기숙사 건물도 남아있고- 엄청 오래된 건물이고 저층 건물이라서 그런지 공장보다는 학교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이다.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회고해야 할 게 많은데- 시기가 시기다 보니 폐점 매장 단상을 멋대로 써봤다.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정들었던 점포에서 느끼는 사소한 단상조차 다 잊어버릴 수 있으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현재와 미래에 유의미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 올해를 제대로 살긴 했나. 잘못한 일만 보인다. 남은 한 해가 벌써 아깝다. 지금부터 시간이 더 빨리 지날 테니 정신 차리고 하반기를 보내야지. 뭔가를 하고 있지만 정체됐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작은 변화는 있어도 큰 변화는 없어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