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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이 좋은 이유

시원하고, 시원하고, 시원하다

by 딱정벌레
오키나와 츠라우미 수족관. 사진=딱정벌레

수족관에 가는 데 재미를 들린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21살 여름이었던가. 그때 학교 신문방송사 연수로 부산에 다녀왔다. 당일치기 일정이었는데 용궁사도 가고, 해운대 아쿠아리움도 갔다. 태종대도 갔던 것 같다. 다누비 열차를 그때 탄 듯하다.

해운대는 거의 마지막 코스로 갔다. 해운대 해수욕장에 아쿠아리움이 있었는데 내겐 완전 신세계였다. 난 어릴 때도 부모님과 수족관에 가본 적이 없었다. 21살에 간 해운대 아쿠아리움은 내 생애 첫 수족관 관람이었던 셈. 그때 오후 4시쯤 인어공주 쇼를 했다. 인어 비늘 입고 유영하는 아쿠아리스트가 너무 멋있었다. 완전 애처럼 들떠서 그걸 보고 있으니 1년 차 후배가 날 신기하게 봤다. 선배한테 저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대나.

호주 골드코스트 씨월드에서 열린 돌고래 쇼. 사진=딱정벌레

그러고 2년쯤 지났을 때였나. 호주에 어학연수를 갔다. 브리즈번에 갔는데 주말마다 같이 간 동료들과 놀러 다녔다. 어떤 날에는 바이런 베이를, 또 다른 날에는 모턴 아일랜드라는 섬을, 또 어떤 날에는 동물원에 가고 영화를 봤고. 또 다른 날에는 브리즈번 근처에 있는 골드 코스트라는 곳에 다녀왔다. 거기에 씨월드라는 놀이공원이 있는데 아는 언니와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골드 코스트는 브리즈번처럼 크지 않고 고요했다. 휴양지 느낌. 씨월드에는 놀이기구도 있고, 바다 생물도 많았다. 거기서도 수족관을 구경했다. 펭귄도 보고, 돌고래쇼도 봤다. 신나는 건 돌고래쇼였다. 돌고래들이 일제히 점프도 하는데 지금 그 사진을 다시 봐도 시원한 느낌이 들어 좋다. 그때 기억이 좋게 남은 건 같이 간 언니와 나눈 대화 영향도 컸다. 잔잔한 대화를 나눴는데 편안했다. '난 루시드폴 음악을 좋아한다' 이런 이야기.

대구 신세계백화점 수족관. 사진=딱정벌레

그러고 한동안 수족관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수족관을 다시 간 건 기자가 되고 나서 대구 신세계백화점 기자간담회에 갔을 때였다. 2016년 12월. 신세계가 40년 만에 대구에 다시 백화점을 열었는데 동대구역 근처에 있었다. 옥상에 수족관과 테마파크도 올리고. 유통업체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새로 열면 기자간담회와 투어를 같이 한다. 대구 신세계백화점도 투어를 진행하면서 우리에게 수족관도 보여줬다.

수족관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뭐 적당히 보기에 괜찮았다. 내가 알기로는 거기 아니면 대구에 그 정도 규모의 수족관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지역민에게 또 다른 볼거리, 즐길거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곳이었다. 입장료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돈 안 내고 거길 구경한 데 의의를 뒀다. 요즘은 잘 모르지만 대구 신세계백화점은 동대구역환승센터에 있어서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전국 백화점 매출 톱 10 안에 든다니.

오키나와 츠라우미 수족관 돌고래 쇼. 사진=딱정벌레

그 이후로는 수족관을 매년 한번 꼴로 자주 갔다. 진정한(?) 수족관을 관람한 건 2017년 여름휴가로 오키나와에 갔을 때였다. 오키나와에 츠라우미 수족관이 유명하다. 나도 거기에 갔다. 츠라우미 수족관 가면 꼭 찍어오는 기념사진이 있다. 바로 대형 수조 앞에서 사람들 실루엣이 담긴 사진. 그 수조가 엄청 커서 아우라도 있고. 그 수조를 보면 내가 오키나와에 온 게 실감도 났다. 츠라우미 수족관 돌고래쇼도 백미고.

오키나와에는 일본 본토에서 온 관광객은 물론 한국인, 중국인 가족 관광객이 많았다. 수족관에는 국적 상관없이 모든 엄빠들이 카메라를 들고 토끼 같은 자식들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여념 없었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수족관에 가봤다면 좋았을 텐데. 유원지, 놀이공원, 유적지도 갔는데 왜 수족관에 안 갔을까. 그러나 츠라우미 수족관이 기억에 남는 건 규모가 압도적이기 때문인 듯. 내가 가본 수족관 중에서 가장 컸다.

63 빌딩 수족관 인어공주 쇼. 사진=딱정벌레

그러고 2018년 1월 초에 63 빌딩의 수족관에 갔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주말에 시체 놀이하다가 저녁 앞두고 부랴부랴 목도리 두르고 나가서 오후 7시 인어공주 쇼를 본의 아니게 시간 맞춰서 봤다. 그걸 보니 10여 년 전 해운대에서 봤던 인어공주 쇼가 떠오르고. 서른이 넘어도 인어공주 쇼는 여전히 설레고 들뜨고 재밌었다. 내용은 순수하게 인어공주 이야기는 아니고 여러 이야기를 짬뽕했지만.

그날 왜 63 빌딩 수족관에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가까웠기 때문인 듯하다. 63 빌딩은 오래돼서 그런지 수족관도 기대에 크게 미치지 않았다. 츠라우미 수족관과 비교하면 시시하고. 해운대보다도. 규모뿐만 아니라 바다 생물 종류도 제한적인 듯. 수족관과 전망대 표를 묶어서 팔기도 하는데 수족관만 가면 밋밋할 수 있겠다. 서울에 고층 건물이 늘어서 전망대도 쏘쏘. 전망대는 올라가서 보는 것보다 밖에서 구경하는 게 제일 멋있다.

잠실 롯데 아쿠아리움. 사진=딱정벌레

그날 저녁 봤던 인어공주는 평일 격무(?)에 지친 내게 힘이 됐다. 주말에 혼자 쉬면서 고요하게 힘 얻는 느낌이 좋다. 일도 어렵지만 가장 힘든 건 사람 스트레스. 회사 사람 스트레스만 있는 게 아니지만. 돌아보니 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걸 즐기지 않는 듯하다. 사람 만나는 게 싫지 않다. 누구나 그러하듯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한데.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며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사람을 보는 게 시간 아깝다. 1:다보다 1:1이 편하고.

그러고 두 달쯤 지나서였나. 명절 연휴를 앞두고 잠실 L 모 그룹 기자실로 출근했다가 퇴근하던 날이었다. 그 회사는 대형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거기에도 수족관이 있었다. 곧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이완되는 느낌도 들고. 쉬는 분위기 느끼고 싶어서 퇴근길에 그 회사 수족관에 갔다.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번쩍번쩍한 느낌이었고, 여느 수족관처럼 대형 수조가 있었다. 그 앞에 사람 실루엣을 함께 찍으니 사진이 운치 있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가오리. 사진=딱정벌레

늘 쉬는 날에 가다가 퇴근길에 수족관에 간 건 처음이었다. 그 느낌도 괜찮았다. 일터에서 비로소 제대로 로그 아웃했다는 느낌도 좋고. 그때 평창올림픽 때문에 회사에서 이상한 걸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난리 칠 때여서 정신이 지쳐있을 때였다. 사실 난 그때 차출되지 않았지만. 회사 요구에 가만히 있는 사람도 기 빨리는 느낌이라. 분위기도 안 좋고 기분도 별로였는데. 그날 본 물고기와 대형 수조가 지친 하루에 위로가 됐다.

그러고 보니 2018년에는 수족관에 참 자주 갔다. 그해 봄이었나. 그때는 언니와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갔다. 주말이었는데 아마 내가 가족과 수족관에 간 건 그게 처음이었을 거다. 코엑스 수족관은 제법 컸다. 보통 수도권 지역 수족관을 꼽으면 63, 잠실, 코엑스, 일산 아쿠아플라넷이 있는데 코엑스는 규모가 꽤 됐다. 바다 생물 종류도 다양했고. 다만 흠이 있다면 냄새가 좀 났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언니가 찾던 거북이. 사진=딱정벌레

내가 거기서 재밌었던 건 거북이 사진을 찍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언니의 모습이었다. 거북이가 계속 위로 떠다니고 있었는데 사진을 잘 찍으려면 좀 내려와 줘야 했다. 근데 잘 안 내려와서 언니가 "아, 좀 내려오지"하면서 아쉬워하는데 그게 내 눈에 귀여워 보였다. '그래, 이 자식아. 좀 내려 오라잖아'라고 혼자 생각했다만. 또 수조에 정어리 떼가 가득 들어찬 모습도 어딘가 예뻤다. 반짝이는 은빛 정어리 떼 무리가.

아무튼 서울의 수족관은 때깔이 곱다 싶으면 규모가 아쉽고, 규모가 괜찮으면 때깔이 그저 그렇거나 그랬다. 여전히 내 마음속의 1등 수족관은 오키나와 츠라우미 수족관. 마지막으로(?) 내가 이 동네에서 안 가본 수족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산 아쿠아플라넷. 거길 오늘 가봤다. 여기도 한화에서 운영하는데 63보다는 규모도 크고 바다생물도 다양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제주와 일산에만 있다는 바로 바다코끼리.

일산 아쿠아플라넷 바다코끼리. 사진=딱정벌레

바다코끼리 매리는 물대포도 곧잘 쏘고, 식성이 엄청났다.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물고기를 먹고 있었다. 무게도 꽤 나간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무게로 어떻게 그리도 유연하게 헤엄치는지 신기했다. 휘파람도 곧잘 불고. 아쿠아리스트의 얼굴과 목소리도 구분한다니. 똑똑하다. 펭귄도 인상 깊었다. 걸을 때는 뒤뚱뒤뚱 느리기만 한데 헤엄은 엄청 빨리 쳤다. 수족관인데 사막여우도 있고, 원숭이도 봤다.

사실 수족관에 가면 늘 인상 깊게 보는 게 바로 해파리다. 해파리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아쿠아플라넷은 더했다. 동족상잔의 오류는 저지르지 않는 의리파 해파리도 있고. 조명빨인지 모르겠지만 수족관에서 보는 해파리는 늘 아름답다. 그냥 희멀건 실타래 같은데 저것도 하나의 생명체고 밥도 알아서 잘 챙겨 먹는다니. 신기하고 예뻐서 늘 수족관 가면 눈여겨본다.

일산 아쿠아플라넷 업사이드다운해파리. 사진=딱정벌레

버도 봤는데 마침 식사 때라서 그런지 사과를 얇게 썰어놓은 걸 나눠주는 걸 봤다. 근데 두 손을 발발 떨면서 사과 조각을 받아 들고 그걸 입에 물고 헤엄을 치다가 어디 구석에 가서 누가 뺏어먹을까 조심스럽게 먹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내 옆에 있던 어린이도 비버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사과 조각을 받는 걸 보고 "귀여워"라고 외쳤다('네가 더 귀엽습니다만').

아무튼 바다코끼리를 감상하면서 든 생각은. 수족관에 와서 좋은 건. 그게 꼭 수족관에 있는 장점만 아니지만. 그냥 평소에 볼 일 없는 것을 봐서 신기하고 재미있고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바다 생물을 보면 시원한 느낌도 든다. 특히 가오리를 보면 그게 걔네 표정은 아니겠지만 건빵 구멍처럼 눈코입이 생긴 게 너무 귀엽다. 가오리 종류도 그리 다양한 줄 몰랐다.

일산 아쿠아플라넷에서 헤엄치는 펭귄. 사진=딱정벌레

독특한 무늬를 지닌 물고기도 패셔너블해서 멋있다. 대형 수조를 적당히 거리 두고 우두커니 바라볼 때 느낌도 좋다. 세상의 소란과 내가 떨어진 느낌. 망상에 빠지더라도 혼자 차분해지고 싶을 때 수조를 보면 마음이 평온하다. 여러 상황이 있지만. 퇴근길처럼 하루를 마무리할 때 수족관을 구경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수족관은 여름에 보는 것도 좋지만 겨울에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그냥 사계절 다 좋다.

제목은 저렇게 시작해놓고 이유는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수족관이 좋은 이유 1.대형 수조와 거기에 비친 사람들의 까만 실루엣이 보기 좋다 2.그걸 떨어져서 감상할 때 차분한 기분도, 고요한 분위기도 좋다 3.가끔씩 쇼를 할 때 왁자지껄한 느낌과 설레고 들뜨는 기분이 마음에 든다 4.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생물이 자유로워 보이고 그걸 감상하는 게 좋다 5.평소에 몰랐던 다양한 바다생물을 보고 배우는 것도 좋다

일산 아쿠아플라넷에서 만난 이름 모를 친구들.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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