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을 읽고 든 생각
요즘 들어 비개발자나 문과생을 위한 IT 전문지식을 다룬 책이 눈에 띈다. '문과생,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되다'를 읽고 든 생각을 글로 풀면서 언급했지만. 그런 가운데 역으로 이런 제목의 책이 내 눈길을 끌었다. 역시 지난번에 한번 말했는데 바로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이란 책이다. 유유 출판사 책 목록을 훑어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기술도 잘 알고 싶고, 이를 개발하는 이들도 잘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2014년에 나온 책인데 전자책은 없다. 아쉽지만 종이책을 샀는데 표지가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책값이 아깝지 않았다.
저자 새뮤얼 플러먼은 공학도 출신이며 중견 건설사 경영자라고 한다. 평소 과학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글을 자주 썼다고 했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일부는 '아메리칸 엔지니어', '토목공학', '컨설팅 엔지니어'에 썼던 내용이라고 한다. 서문에서는 책의 목적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공학과 인문학을 잇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며 두 문화 사이에 흥미와 관심의 다리를 놓는다고. 또 다른 하나는 인문학 속성과 내용을 훑어보면서 평범한 엔지니어가 금세 기억을 되살리게 돕는 것. 마지막으로 엔지니어가 인문학 세계를 더 깊이 여행하도록 이끌고 선택 가능한 몇 가지 길을 추천한다.
엔지니어를 위한 글이라고 하지만 문과생도 볼만 했다. 문과생이라도, 인문학도라고 인문학을 잘 아는 건 아니니까. 기술의 역사, 문학의 세계, 철학의 세계, 미술의 세계, 음악의 세계 등은 문과생도 교양 학습으로 보면 좋을 내용이었다. 다만 저자는 문학, 철학, 미술, 음악과 공학의 관련성을 틈틈이 언급했다. 픽션 주인공으로 공학자를 어떻게 그렸는지도 다뤘고. 난 철학과 음악은 공학과 밀접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과학사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철학 수업과 다름없었다.
음악은 소리를 증폭하는 방식, 특히 전자 음악 기기로 소리를 구현하는 방식은 공학이 바탕이 된다. 인공지능 연구자 가운데 밴드 활동을 했거나 기타를 연주하는 등 음악 애호가를 여럿 봤다. 이들은 AI 스피커 개발에 참여하고 음성합성을 연구하는데 음악을 향한 관심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소리에 관심이 있고, 그 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분석하는 데 기술이 역할하니까. 하긴 음반을 녹음하고, 공연을 진행하며,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데 엔지니어가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이 책에서는 음악과 엔지니어의 관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눈에 띄는 부분만 발췌했다.
'우선 엔지니어는 악기 설계와 제작에 관여한다....(중략)... 음악을 실제 연주하는 것은 탁월한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도구를 불고 긁고 때리는 행위이다....(중략) 엔지니어는 또 음향학을 통해 음악과 접한다....(중략)... 어떤 엔지니어는 최근 압도적으로 성장한 전자공학을 통해 음악에 접근한다. 음악을 전자공학적으로 증폭하고 녹음하고 방송하는 것이다....(중략) 열렬하고 세심하게 '하이파이'를 추구하는 엔지니어 덕분에 어떤 영역에서는 예술과 공학의 구분이 거의 없어졌다....(중략) 게다가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대부분의 과학자처럼 수학의 관문을 거쳐 음악으로 접근한다.'
이 책에서 핵심 내용은 '왜 엔지니어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고, 담론 형성에 영향을 끼쳐야 하느냐'다. 역으로 생각하면 '문과생은, 인문학도는, 비공학자는 왜 기술을 알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 생각은 정리하지 못했지만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질문하며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 보면 이렇다. 저자는 엔지니어가 가장 운이 좋은 이유 중 하나로 '엔지니어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기술적 사건을 이해하고 즐길 소양이 있다'라고 말한다.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내가 지식이 부족해서 기술 자체를 이해하고 의미를 추론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일을 이들은 보다 빨리 헤아릴 수 있으니까.
저자는 '현대인은 갈수록 소외되는 처지라고 하지만, 엔지니어는 다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사회에서 엔지니어의 자리는 안전하다'라고 말한다. 고개를 주억거릴 이들이 많을 듯하다. 문송한 현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엔지니어의 쓸모는 많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기술력 중요성은 더 높아지고 있고, 시니어 개발자 몸값도 높아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라고 하니까(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정정해주셔도 좋습니다). 1가구 1엔지니어 보급이 가능하면 얼마나 좋겠나. 비개발자나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 많이 나오는 것도 엔지니어 수요가 높은 현실과 관련돼 있으리라.
그러나 저자는 엔지니어의 삶이 바쁘고 안정됐지만 불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회의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는 지적, 철학적 담론에서 우리는 약간 배제된 기분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예술적이고 지적의 삶에 참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세력이 우리가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전문적 생산물, 즉 기술을 오용하고 오도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게다가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가 못마땅하고, 우리 엔지니어에게 응당한 존경과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다'라고.
난 이런 내용을 접하면 속으로 뜨끔하다. 내가 쓴 글이 엔지니어 시선에서 보기에 같잖은 수준의 글일까봐.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IT업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 입장에서 어설픈 내용일까봐. 과거에도, 현재도 늘 무섭다. 유통업계 기사를 쓸 때도 그런 게 신경 쓰였는데 IT는 더했다. 그러나 글에는 그런 걸 티 내면 안 된다. 적어도 어떤 주제로 글을 쓸 때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 기자도 이 분야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신감을 갖고 120%를 취재하고 내용을 추려 기사를 쓴다. 첫 직장 첫 부장께서는 "네가 이 내용은 씹어먹는다고 생각하며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머리로 알지만 마음은 내심 불안하다.
저자는 엔지니어가 '우리 시대 정치와 문화와 사회의 발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함은 엔지니어가 직업의 기술 측면에 집중하느라 '균형 잡힌' 인간이 되지 못하는 데서 온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엔지니어가 결핍과 불만을 느끼는 것은 폭넓은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한마디로 세련된 교양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일침 한다. 여기선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저자 입장은 '오늘날 평균 엔지니어에게 교양이 부족하다'는 거다. 난 교육받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가 학습하는 엔지니어도 많다. 사회에 담론을 만드는 먹물보다 더 현실적이고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도 제시하고.
그게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앞서 나간 기술이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도 이어지는 내용은 수긍이 갔다. '엔지니어가 없으면 오늘날의 문명과 문화가 존재할 수 없건만 엔지니어는 교양을 부여하는 문화 영향력에서 소외돼 있다니, 너무나 역설적 상황이 아닌가. 이는 엔지니어 개인에게도 공학 직종에도 세상에도 불행하다.'
저자는 엔지니어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를 5가지 정리했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면 좋겠고. 그는 엔지니어에게 교양 교육이 '엔지니어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공학의 건전한 발달에 기여하고, 사회를 보존하고 살찌울 것이라고 주장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한다. 교양 교육에는 이런 가치가 있다. '지적 역량을 높이고, 상상력을 넓히며, 지적 호기심과 전반적 이해력, 품위와 재치와 평정심을 더불어 발전'시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사회 지도자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데 엔지니어에는 그런 속성이 부족하기 쉽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난 이건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다. 결은 다르지만 인종, 성별이 어떤 기질 이유라고 설명하는 게 우생학과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생학이 역사에서 홀로코스트 같은 비극을 낳았다는 점에서 난 '타고난 성분, 기질을 이유로 이 사람이 이렇다' 이런 주장이 거북하다. 엔지니어는 경우가 다를 것이다. 엔지니어 성향이란 타고난 기질보다 학습된 결과에 가깝지 않을까. 타고난 기질 때문에 엔지니어 일이 잘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도.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다양하다. 각자 환경도 다르고. 특정 요인을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 시각은 늘 조심스럽다. 내가 엔지니어가 아니다 보니 저자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도 그렇고.
그래도 로마 공학자 비트루비우스가 했다는 이 말은 주워섬길 필요가 있겠다. "학식 없이 기술만 습득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에 상응하는 권위 있는 위치에 결코 오르지 못한다....... 양쪽 지식을 모두 철저히 습득한 사람만이 완전무장한 병사처럼 더 빨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권위를 누린다." 엔지니어에게만 적용할 건 아니고 우리 다 돌아봐야 할 점 같다. 기술을 실무로 넓혀서 보면 그렇다. 어떤 일을 하는 방법만 기계적으로 알아선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수 있다. 노하우나 업무 철학도 필요할 수 있다. 기술이 만들어낼 긍부정적 결과도 생각해야 하고. 꼭 출세가 목적은 아니라도 기술 또는 실무가 좋은 영향을 끼치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많은 엔지니어가 그들의 사회적 위상이 낮고, 엔지니어 이미지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면 문을 숭상하다 보니 무나 기술을 평가절하하긴 했다. 번역가도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으니까. 실무에 도움되고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하대 받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게 조선시대 일만은 아니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도 그랬고,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긴 그 나라도 견고한 신분제 사회였고 보수적이긴 했다. 저자는 위와 같은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교양 있는 공학자가 지금보다 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엔지니어의 큰 경쟁력은 '세상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 지식이 있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이 리더십을 얻지 못하면 그 재능은 계속 낭비되고 오용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우려점이고. 이 책의 장점이 있다면 저자와 다른 생각도 충분히 다룬다는 점이다. 책은 직접 읽는 게 더 도움되기 때문에 여기서 그걸 다 언급하지 않겠지만. 일방적인 자기주장에 그치지 않고 반론을 충분히 소개한다는 점에서 저자 인식이 꽤 균형 잡혔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볼만한 이유 중 이런 것도 있고. 이밖에 저자는 '공공 철학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논쟁에서도 교양 있는 엔지니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엔지니어가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 과학과 공학의 관계도 자세히 이야기한다. 나는 그 부분까지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소득이 있다면 비공학자가 보는 엔지니어의 모습과, 엔지니어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었다는 것. 난 엔지니어 위상이 사회에서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엔지니어 입장에서 이를 제한적으로 보는 듯하다. 문득 예전 출입처였던 어떤 전자상거래 기업이 떠올랐다. 그 회사가 분사하면서 대표를 새로 임명했는데 개발자였다. 그는 분사 이전 모기업에서 인공지능 사업단장도 맡았고, 분사 이전 그 서비스가 자회사에 있을 때는 그 자회사의 최고 기술 책임자(CTO)였다.
그분은 개발자로서 탁월한 분이었다. 그 회사에 오기 전 어느 기술 대기업에 있었고, 그 기업에 오기 전에는 AI 기업을 창업, 그 대기업에 매각했다. 그분이 이커머스 기업 대표가 됐다고 했을 때 조금 의외긴 했다. 순수 학자, 개발자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모기업에서는 그 서비스를 기술에 방점을 두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자상거래 기업이 IT 회사이고 플랫폼 업체이지만 유통업체이기도 하다. 업종마다 다를 듯하다. 다만 전자상거래 기업에서 개발자와 경영인의 이미지가 딱 겹치지 않았다. 돌아보니 나도 편견이 있다. 그분이 경영을 나쁘게 한 것 같진 않다. 그 회사는 성장세는 위축됐지만 분사 당시 목표대로 지난해 연간 흑자를 냈다.
앞서 언급했듯 '문과생은, 인문학도는, 비공학도는 왜 공학을 알아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저자는 '어느 경우이든 계몽된 공학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정부와 산업계에 어떤 주장을 하는 누군가는 '기술, 과학, 경제 분야의 지식으로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사회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말주변이 있어야 하며, 존경받아야 하고, 도덕과 미학 감수성이 탁월해야 한다', '말 그대로 교양 있는 엔지니어 라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난 이 부분이 문과생, 인문학도, 비공학도에게 시사점 있다고 생각한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술, 과학, 경제 지식이 필요한 건 여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기술이 사회발전을 주도하는 세상이고, 우리 먹고사니즘도 여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술에 관심 갖는 건 당연하다. 그 기술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해하려면 기술 작동방식과 의의를 기초 수준이라도 알아야 한다. 거기에 대비해야 하니까. 또 기술 발전에 소외당하지 않고, 내 현재와 미래가 기술에 그저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기술 부작용을 상쇄하려면 역시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 전문 지식에는 못 미쳐도 교양 수준으로 기술, 과학, 경제 지식은 익혀야 한다.
언젠가 한 해외 담배회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였다. 이 회사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했다. 그 제품은 '담배계의 애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제품은 유해성 논란에 시달렸다. 물론 그들도 담배가 몸에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제품을 홍보할 때 논리는 이랬다. 궐련 담배보다 이게 유해성분을 덜 노출한다고. 특정한 맛이 나는 담배를 맛있다고 자꾸 피우면 몸에 해롭듯, 그 제품도 결국 반복해서 피우면 유해성분은 쌓이지 않을까. 그 회사에서 반대론자에게 주로 하는 말이 '과학적으로 따져 보자'는 거였다. 그 회사도 연구소가 있다. 자신들은 과학 연구를 토대로 그 제품이 덜 유해하다는 걸 입증한다고 한다.
난 그 말을 듣는데 소외감이 들었다. 난 과학을 모른다. 특히 담배와 관련된 건 더더욱. 과학을 따지고 들면 여기서 소외되는 사람이 나뿐만 아닐 것이다. 흡연자도 예외일 수 없고. 과학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그 말은 맞지만 과학 지식이 부족하면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논의에 참여하고 싶어도 끼기 어려울 것이다. 억울하면 공부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 공부해야지. 공부 안 하면 거기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걸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거기 사람들과 그 회사 제품 유해성을 두고 논쟁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기술, 과학, 경제 문제에 발언권이 약해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지난 주말 이종사촌 언니 1과 대화하면서 이 책 이야기를 했다. 이 언니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의학전문대학원에 가서 결국 마취과 의사가 됐다. 언니에게 물어봤다. "언니는 공학 지식이 평소 일하는 데 도움돼?" 그 언니는 그 부분을 좀 고민했다고 했다. 근데 마취도 기계로 하는 거라서 관련이 있다고 했다. 특히 논문을 읽을 때 공학 지식이 도움된다고 하고. 이 책 이야기를 하니까 언니는 다 읽고 나면 자신에게도 빌려달라고 했다. 이제는 의사지만 아직 공학도 자세가 남아있는 게 멋있어 보였다. 꼭 기술이 아니라도, 인문학도 이종 분야에서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 전공은 무슨 도움이 되나. 굳이 전공이라기보다 내 전공을 포괄하는 사회과학을 생각해본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과 교수님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나, 그중에서도 왜 정치지리학을 전공했나 이런 질문을 했다. 그분은 원로 교수님이었는데 사회과학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과학은 인간의 자기변명이야."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한다만. 돌아보면 사회과학도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구나.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왜 갈등하는지, 왜 사회는 이렇게 변해야 하는지. 지금은 인간을 다루는 일을 하지 않아서 직접 영향은 주지 않는 듯하다. 다만 나 자신을 이해할 때 '인간의 자기변명을 연구하는 학문'이 실마리는 주는 듯하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