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봄 새롭게 이용한 서비스가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스푼 라디오. 유명한 서비스지만 이용해 보지는 않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도무지 짬이 안 났기도 하고. 다만 유튜브에서 광고를 종종 접하며 '한 번은 들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PD연합회 강연을 들으러 갔는데 거기서도 이 서비스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강연 주제가 '유튜브로 간 라디오'였고 수강생 가운데 라디오 PD도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스푼 라디오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업에서도 주목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올 초부터였나. 스푼 라디오 앱을 깔아서 듣기 시작했다. 주로 밤에 들었는데 내가 들은 채널은 동화책을 읽어주는 채널이었다. 그것 말고 여러 채널을 들어가긴 했는데 동화책 읽어주는 채널이 가장 개성 있고 들을만했다. 채널 상관없이 특징을 이야기하면 일단 들어가면 "OO님, 어서 오세요"라고 진행자가 인사를 해준다. 요즘 라디오 채널도 '출석 체크' 시간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붐붐파워에서는 "OO님 입장~" 이런 식으로 출석 체크를 한다. 진행자가 청취자 이름을 불러주면 밀접하게 소통하는 느낌이 들긴 하다.
스푼 라디오 채널을 다 분석해보지는 않았다. 내가 들어가는 시간대에는 소통 방송이 많았다. 소통 방송은 내 입장에선 콘텐츠가 그냥 그랬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잡담하는데 그 대화 당사자가 되고, 진행자가 좋으면 그 시간이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면 시간이 아깝다. 당황스러운 채널이 하나 있었다. 거기는 들어가니 인사하고 나서 나이를 물었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답 안 해도 상관없는데 내겐 놀라운 점이었다. 소통 방송은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나왔다.
사진=픽사베이
앞서 말했듯 동화책이나 일반 책을 읽어주는 채널도 있다. 이런 채널은 많지 않다. 책 읽어주는 방송도 진행자 역량이 중요하다. 발음도 정확해야 하고, 등장인물에 따라 연기도 해야 한다. 목소리도 좋아야 하고. 정확한 발음의 중요성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기 수업을 예전에 들으면서 절감했다. 같은 단어도 뜻 또는 한자마다 발음도, 억양도, 강세도 다르다. 그때 강사였던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이런 걸 구분하지 않고 읽는 사람이 많고, 그걸 모른 채 듣다 보니 지식을 폭넓게 쌓지 못해 아쉽다" 이런 요지로 말씀하신 적도 있다.
동화책 읽어주는 채널이 가장 들을만했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진행자 목소리도 좋았고, 연기도 잘했다. 성대모사를 아주 잘하는 분이었다. 진행자로서 센스도 괜찮았다. 스푼 라디오에 대한 내 생각은 이 채널을 듣고 느낀 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좋은 채널이라고 생각하는데 팬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진행자와 방송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듣다 보면 '스푼 라디오는 이렇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 생각이 라디오를 마음 편하게 듣는 데 방해가 되는 게 있었다. 이제는 듣지 않는데 스푼 라디오 문제라기보다 '나와 안 맞아서'가 그 이유다.
내가 편하지 않았던 건 '여기 진행자도 긱 일자리더라'는 것이었다. 긱 일자리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장단점이 있는데 그림자도 있다 보니 마음이 답답해지는 게 있긴 하다. 방송을 들으면서 진행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이전에는 어떤 방송을 했는지 물어보고, 방송하는데 사전 준비를 하는지 물어봤다. 수수료 비중도 물어봤다. 이걸 진행하면서 보람될 때도. 이분은 동화책 읽는 방송을 하기 전에 소통 방송도 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방송에서 거두는 수익이 시급 수준으로 안 나올 때도 있고. 방송 몇 시간 전부터 준비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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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들으니 '아프리카 TV나 유튜브처럼 이것도 누군가에게 생계수단일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TV에서 별풍선을 쏘듯 여기서는 스푼을 쏜다. 청취자가 듣고 마음에 들면 진행자에게 스푼을 쏜다. 1000원을 내면 10개를 쏠 수 있고, 금액대별로 개수는 다양하다. 진행자도 스푼을 쏴달라고 독려한다. 청취자가 "방송 듣고 힐링했어요"라고 말하면 "그럼 힐링 값 좀 받아볼까요?" 이렇게 말했다. 스푼을 쏘면 세리머니도 한다. "짤랑짤랑" 이런 말도 하지만 거액의 스푼을 쏜 청취자는 특별하다. 왕 성대모사를 해주기도 하고.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자주 들어오는 청취자, 스푼을 종종 많이 쏘는 청취자는 대우가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당연한 거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더 대우하고 싶으니까. 간혹 방송을 듣다가 다른 방 갔다가 돌아오는 이도 있다. 그런 이에겐 "OO님, 어디 갔다 왔어요" 이렇게 말하고. 스푼을 많이 쏘는 청취자를 유형화하긴 어렵다. 진행자에게서 좋은 말을 듣거나, 생각해주는 말을 들은 청취자가 거액의 스푼을 쏘는 걸 봤다. 쌍방향 소통 콘텐츠 또는 플랫폼에서는 이런 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 싶었다.
이 채널은 동화책 읽어주는 틈틈이 소통 시간도 가졌다. 청취자가 올리는 메시지나 질문에 답도 해주고. 난 이 방송을 하면서 어떤지 많이 물었는데 나더러 "이분은 항상 이런 질문만 하신다"라고 해서 뜨끔했다. 동화책을 다 읽고 나면 다음 시간에 읽을 책을 청취자에게서 신청받아 선정했다. 주로 진행자에게 있는 책을 고른다. 또 진행자에게는 그를 보좌하는 매니저가 있다. 채팅방을 흐리는 이용자는 퇴장시키기도 하고. "스푼 라디오는 진행자를 위해서 뭘 해주나요?"라고 물었더니 매니저들이 "플랫폼을 제공하죠"라고 답했다. 뜻을 밝히기 어렵지만 '스아치'라는 용어가 있다고 들었다. 이건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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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듣다가 봄부터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일반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까닭도 있고. 스푼 라디오보다 기존에 듣는 방송국 라디오나 팟캐스트가 더 편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 이유는 스푼 라디오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나와 그 플랫폼이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불편한 점이 있기도 했고. 시간을 들여 방송을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진행자에게 미안하지만. 스푼을 달라는 멘트가 듣기 편하지 않았다. 들은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다. 요즘은 유료 팟캐스트도 있으니까. 그러나 늘 무료로 라디오를 듣다 보니 이 경험이 난 익숙하지 않았다.
나보다 젊은 세대는 아프리카 TV를 통해서도 그렇고 별 풍선이나 스푼을 쏘는 식으로 진행자를 후원하고 유료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 익숙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그걸 읽고 나니 '아, 내가 불편하게 느낀 건 세대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난 여기에 맞지 않는 세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기사도, 음악도 비용을 들여서 이용하는 콘텐츠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대화가 중심인 라디오는? 팟캐스트는? 시장이 더 성숙해야겠다 싶기도 했다. 방송국은 그 대가를 방송국이 진행자에게 지불했고. 스푼 라디오 같은 채널은 청취자가 이를 지불하는 데 플랫폼은 여기서 수수료를 취하고.
오디오 콘텐츠는 이 시장이 얼마나 성숙해질지 잘 모르겠긴 하다. 팬덤을 만들고, 진행자와 청취자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잘 구축하면 진행자도 수익을 잘 올릴 수 있긴 하겠다. 근데 그러려면 진행자 개인 매력 외에 콘텐츠가 많이 중요할 듯하다. 단순히 위로받고, 달달한 목소리와 다정한 말로 잠을 잘 재워주고 이런 걸 넘어서서. 뭔가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보이는 라디오도 있지만 오디오는 영상과 달리 이를 소비할 수 있는 감각이 제한적이다. 귀르가즘도 있지만 보고 들으며 느끼는 만족과 듣기만 하면서 느끼는 만족의 강도, 범위는 차이가 있다. 감각이 하나 더 열릴수록 만족도가 더 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세대 차이와 비용을 더 내고 싶지 않은 옹졸한 마음에 스푼 라디오를 더 듣지 않는다. 내가 돈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콘텐츠를 많이 발견하지 못했기도 하고. 많지는 않지만 동화책 읽어주는 채널을 들을 때는 나도 스푼을 쐈다. 그게 너무 적어서 송구하지만. 계속 스푼을 쏘면서 방송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방송국 라디오를 듣거나 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BBC 라디오나 이케아 수면 팟캐스트를 들으며 잠드는 게 아직은 마음이 더 편하다. 몰랐던 세계를 알아간 데 만족하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