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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에게서 배운 글 쓰는 마음

단숨에 읽어 내려간 매거진 B '잡스-소설가'편

by 딱정벌레
사진=매거진 B

매거진 B 잡스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연재물이다. 지난해부터 잡스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1탄은 에디터 편. 이후 셰프와 건축가도 다뤘다. 지난달 네 번째 시리즈 소설가 편이 나왔다. 오랜만에 글을 다루는 직업인 이야기가 나와서 기대했다. 잡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리즈가 에디터 편이었다. 이것도 글을 다루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특정 업을 다룬 콘텐츠가 한창 붐을 이룬 듯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생의 이모작, 삼모작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라는 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참고로 3탄까지는 모두 종이책으로 샀다. 근데 몇 달 전에 잡스 시리즈가 리디북스에 전자책으로도 나왔다. 일찍 좀 내주지. 한편으로 잡스 시리즈는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맛이다. 컬러풀하지 않고 흑백으로 돼 있어서 전자책이 잘 어울리기는 하다만. 잡스 특유의 두께, 질감 이게 읽는 재미를 더한다. 들고 다니면 멋스럽기도 하고. 소설가 편을 고대하던 내 마음을 생각하면 이번 시리즈도 종이책으로 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근데 언젠가는 전자책으로 사고 싶었다. 소설가 편은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다(비용도 훨씬 더 저렴하고).

잡스 시리즈는 인터뷰 형식으로 돼 있어서 가독성이 좋다. 그러나 Q&A 형식으로 된 글 모두가 다 읽기 좋은 건 아니다. 내용에 따라 안 읽히는 것도 있고. 사실 셰프나 건축가 편은 잘 읽히지는 않았다. 낯선 업종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소설가 편은 지금껏 읽은 잡스 시리즈 가운데에서 가장 집중력 있게 읽었다. 남의 글을 만지는 걸 넘어 자기 글을 쓰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장강명 작가나 김연수 작가 등 친숙한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잘 읽힌 것 같다. 와 닿는 내용도 많고. 내용 자체도 정말 좋았다.

사지=픽사베이

난 소설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소설과 결이 다르다. 독자로서 소설가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는 까닭도 있지만. 넓게 보면 모두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교감할 수 있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 했다. 읽어보니 역시나 그랬고. 새롭게 배우고 깨달은 점도 많았다. 비대면 시대에 글은, 소설은, 작가는 좋은 선생님이다. 요즘은 다른 일을 하면서 글 쓰는 이도 많다. 잡스에서 인터뷰한 소설가 가운데에서는 전업 작가도 있지만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글 쓰는 작가도 있다. 그분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새벽에도 자기 전에 읽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힘들어서 기술 콘텐츠 쓰는 데만 집중할 때 읽었다. 온갖 생각이 수시로 머리에 똬리를 트는 걸 그냥 내버려 두던 시기. 그 무렵 다른 이의 콘텐츠, 거기 너머 그의 통찰이 내 생각을 더 숙성시키는 데 도움되는 듯도 했다. 글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머리가 더 혼란스럽기도 하구나. 글 쓰면서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외에 여러 가지 욕망이 끼어들 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어쩔 수 없는 건데 그 욕망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지는 것 같고.

소설가 편은 내용이 너무 좋아서 다 읽어가는 게 아쉬웠다. 주워섬기고 싶은 내용도 풍부했다. 독서노트에 저장한 내용이 리디북스에서 읽은 책 가운데에서 가장 많았다. 96개. 종이책이라면 다 밑줄 그었을 내용(난 종이책에 줄 치는 거 안 좋아한다). 독서노트를 다시 훑어보니 내가 정말 즐겨 읽었구나 싶다. 그 내용이 궁금해서 이 글을 보는 사람에게는 내가 이러쿵저러쿵 소회를 밝히는 게 지겨울 수도 있겠다. 다음 문단부터 책 내용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진=픽사베이

인터뷰 내용은 아니지만 잡스의 소설가 정의가 마음에 와 닿았다.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사랑을 받는 소설가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및 공감 능력을 지닌 이들'이라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좋은 소설가가 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는 내용도. 눈에 띄는 비유가 있었다. '철학자나 사상가가 “말하자면 이런 거야”라고 직접적이고도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가는 “너 잠깐 이리 와봐. 나랑 같이 어디 좀 다녀오지 않을래? 다녀와보면 알게 될 거야”라며 누군가의 팔짱을 끼는 사람들'이라고.

참고로 요나스 요나손은 소설가를 '남이 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캐릭터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인데. 그는 글을 쓰면서 캐릭터를 구상한다고 했다. 150쪽을 쓰기 전까지는 그 어떤 캐릭터와도 친해지지 않는다고. 초고를 쓰고 나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수정하는 게 그의 작업방식이다. 문득 이 부분을 읽으니 '소설가에게 캐릭터는 자식 같은 존재겠구나'란 생각도 들고. 다만 요나손은 처음부터 한동안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자식과는 다른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다.

가장 많이 교감하고 교훈을 얻은 건 작가의 글 쓰는 태도, 자세였다. 퇴고를 '본질만 남을 때까지 덜어낸다(요나손)'는 말이 그랬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단어를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작업을 반복해요....(중략) 단어 하나하나 그 존재의 이유가 명확해야 하죠'라는 요나손의 말은 정말 공감이 갔다. 나도 모든 문장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맥락, 어느 위치에 이 문장이 들어가고, 이 단어를 쓰는 건 다 치밀한 각본에 따른 거라고. 소설뿐만 아니라 비문학 글도.

사진=픽사베이

정세랑 작가 이야기는 남과 차별화한 작가가 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 자세를 배우기에 좋았다.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에 쓰기에 앞서, 자신의 포지션을 전략적으로 잘 잡아야 한다'라고. 이것도 소설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될 수 있을 듯하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온전히 나만의 생각이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만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만큼 내가 가장 잘해!' 그런 걸 자기 콘텐츠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공간 이야기도 유용했다. 난 실천하지 못하지만. 정세랑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이 의자에 앉았다가, 저 의자에 앉았다가. 높낮이를 조절하는 책상을 이케아에서 샀다고 했다. 서서 쓰기도 하고 침대에서 쓰기도 하고. 거실에도 큰 테이블이 있고. 문득 지난번에 아버지가 요즘 서서 책 읽을 때도 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확실히 한 가지 자세로만, 정해진 공간에서만 글을 쓰는 건 따분할 수 있다. 내 일신상에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글 쓰는 환경이 늘 고정되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할 때는 더 그렇지 않을까.

글 쓰는 게 두렵고 무서운 이에게는 마르크 레비 말이 도움될 듯하다. 그는 '매번 새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실패할 것 같고, 끝을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일지만, 자유의 감각이 두려움을 누르고 제가 소설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강경하게 밀어붙인다'라고 말했다. 사람은 늘 발전하고 싶어 한다. 글 쓸 때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는 데 그런 욕구가 영향을 주기도 하고. 시작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아지고 있는 게 느껴지고, 주변에서 좋은 이야기를 점점 더 들으면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사진=픽사베이

그 욕심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작업 시간은 더 길어지고. 스트레스는 더 받고. 두려움이 더 커질 때도 있다. 완벽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사실이고.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번민이 들고 속도가 잘 안 나고 집중도 잘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날은 작업을 과감히 접는 게 낫다. 또는 단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는 신경을 끄거나. 중단하거나. 본캐, 부캐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부캐가 여러 가지인 사람은 한동안 본캐에만 충실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장강명 작가 인터뷰도 있다. 이분은 기자 출신이라서 취재 방법이나 기자 시절 일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분은 소설만 쓰지 않고 르포도 쓰시는데. 난 작년 북 바이 북에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가 좋았다. 구조를 드러내려면 짧은 글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거나. 그때가 '산자들'이 나왔을 때인데 이게 노동 이야기이도 하다 보니 플랫폼 노동을 보는 시각에도 고민이 있으시고. 종합지 기자로 험한 취재도 많이 하셨겠지만 작가로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고민이 따뜻했다. 난 그때 아이패드 미니에 사인받았는데 그날 너무 뿌듯했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나온다. 여러 작가마다 공통된 답변이 있었는데 '타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소설의 힘/장강명 왈)'는 점이었다. 난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인간관계도, 콘텐츠 소비도 자기 기호에 따라 취사선택하기 더 쉬운 시대에는- 남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더 어려울 수 있다 싶기도 하다. 나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는 내가 잘 모르는 세계나 인간 군상을 문학으로 접하는 게 좋다. 물론 그 작품이 현실에 기반해야 하겠지만.

사진=픽사베이

전업 작가 이야기도 있는데 여기에 회의적인 이들도 있었다. 실제 편집자로 일하면서 자기 글 쓰는 사람도 있고. 장강명 작가는 '작가로서 현실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꾸준히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전업 작가가 되는 데엔 부정적'이라고.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현실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맞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도 깨닫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우는 터전은 일터인 것 같다.

로셀라 작가는 편집자 겸 작가인데 '절실해서 쓴다'는 그 이야기가 평소 생각과 공감되는 면이 있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1년간 그 아이디어와 싸운다고 했다. '쓰고 싶은 생각이 그것을 억누르려는 내 의지를 이기면, 그제야 써야 하는구나 받아들이고 쓰기 시작'한다고. '필요에 의해 절실해서 쓰는 거'라고 하는데 자기 안에서 소설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 와 닿았다. 난 일기처럼 쓰는 글은 특정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쓰곤 한다. SNS는 그걸 더 쉽게 만들었고. 근데 생각을 내 안에 좀 더 담아두다가 시간이 흐른 뒤 풀어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 기간에 생각이 발전해서 완결성을 갖출 때도 있으니까. 정답은 없지만.

내 글을 위한 편집자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도 내 편집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건 글 쓰는 사람 모두 자기만의(?) 편집자가 있고, 유용한 도움을 얻는 거지만(나만의 이상일뿐?). 로셀라 작가는 자신이 편집자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하는 듯했다. '자기 작품을 대할 때 두렵고 감정적'이 되고. '내 편집자도 내게 용기를 불어넣고 위로하며 에너지를 준다'라고. '편집자가 작가의 심리치료사나 ‘베이비시터’ 같은 도우미 역할을 한다'라고 하는 데 정말 공감이 갔다. 실수를 방지하려면,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제3의 시선이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

결핍이 사랑받는 이유일 수 있다는 시각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꼭 결핍만 그런 게 아니고 자기만의 특징인데. 정지돈 작가는 '사랑받는 소설가들은 잘 썼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기 보다 완결된 글에서 오는 특정 요소들, 어쩌면 부족한 지점들 때문에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조금 무모해 보여도 내가 잘할 수 있는 표현을 끊임없이 찾아가며 저만의 색깔을 소설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글뿐만 아니라도 사람이 사랑스러울 때도 그의 모자란(?) 모습이 치명적으로 매력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결핍돼 보이니까 더 사랑스러운 마음. 그걸로 우월감을 느껴서가 절대 아니고. 서로 채울 수 있는 거면 사랑으로 메우고 싶은 거다.

강원국 작가 글에서도 읽은 것 같은데 역시나 글쓰기는 체력이다. 가와카미 미에코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소설 집필은 곧 육체노동'이라고. 몸도 힘들고. 가와카미 작가는 마흔을 기점으로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한다고 했다. 누구든 그렇지만 글 쓰는 사람도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 머리나 손가락만 쓰는 게 아니니까. 또 산책을 하든, 책을 읽든, 다른 활동을 해야 생각이 트이고. 잘 안 풀리던 글에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 일단 글 쓰는 걸 쉬고 다른 걸 하다 다시 보면 글이 달리 보이기도 하니까. 못 봤던 문제점도 발견하고.

읽고 쓰는 게 계급 문제일 수 있다는 시각은 흥미로웠다. 가와카미 작가의 말인데 그는 '이야깃거리가 특별히 없어도 문화 자본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 발언권을 쉽게 얻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쓰고 읽는 행위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이는 '문화나 경제 자본의 많고 적음과 깊이 연결돼 있다'라고. 난 그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않지만 누군가는 그걸 하기 더 유리한 환경에 있을 수는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듯하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어떤 정보를 가독성 좋게 정제해서 전달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사진=픽사베이

글쓰기 중요성은 아무리 반복해서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아직 쓰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고, 쓰여야만 하는, 써야만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분명 존재한다'는 가와카미 작가 말이 마음을 울렸는데. 이것도 글 쓰는 게 특권일 수 있다는 것과 연관된 듯했다. 결은 다르지만 언론 역할도 그런 것 같고. 기술도 그렇고. 목소리를 낼 수 없거나, 내더라도 그게 약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 김연수 작가 인터뷰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도 포기하지 않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고.

그는 '지금은 쓸 수 있기에 써보는 것이죠. 달과 별처럼 누군가는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라고 하는데- 이건 좀 울컥할만한 말이었다. '나도 누군가 응원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해보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초고) 완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 완벽하게 다듬는 건 그다음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글이 안 풀려도 어떻게든 스스로 밀어붙여서 글이 나오게 해야 하고. 초고는 쓰레기이고, 고칠 건 산더미지만- 개선 과정이 주는 뿌듯함과 기쁨이 있고 (진짜) 완성=완벽=최선이 어느 정도 겹칠 때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는. 이 책 읽은 지 몇 주 됐는데 독서노트 보며 내용을 복기하고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이 재밌다. 이제 다시 글감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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