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배움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남은 9점을 위해 수강했던 3과목의 기말고사를 마치던 날, 마지막 제출의 버튼을 누르며 느꼈던 감정은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시원함과 아쉬움, 후련함과 공허함이 오묘하게 교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끝까지 해냈다”는 단단한 마음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140학점을 모으기 위해 어떤 과목을 공부했고 어떤 자격증을 취득했는지 엑셀 파일로 정리해 보니,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힘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만큼 했네’라는 확인의 한숨이었다.
학점은행제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까지 긴 여정이 될 줄 몰랐다. 광고에서는 “1년 반이면 끝납니다!”, “2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 말이 맞지 않았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는 일,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는 과제 제출과 시험 준비, 살다 보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학점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고, 학사 신청 버튼을 눌렀을 때의 묵직한 성취감은 그동안의 고단함을 모두 끌어안아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휴대폰에 도착한 짧은 문자 한 통.
“학사 취득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데 생각보다 벅찬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담담함이 먼저 찾아왔다. 아마도 긴 시간을 버텨온 감정들이 조금씩 식혀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학위증을 천천히 바라보니 마음 "그래도 해냈네"라는 작고 울림이 있었다.
왜 이 도전을 시작했을까
돌아보면 이 도전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일정 학력 요건을 충족해야 했고, 그 방법을 찾다가 학점은행제를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유는 조금씩 변화했다.
‘학위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늘 누군가의 기준 안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회사 일, 일상생활…. 그러다 보면 정작 나 자신에게는 투자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기 쉽다.
하지만 이번 도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고, 내가 나에게 준 하나의 기회였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일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집중력도 예전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책을 펴고, 시험을 준비하고, 배움의 자리로 돌아온 것. 그 자체가 큰 의미였다.
이 글을 읽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
혹시 지금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 있거나,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두려워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속도가 느려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 걷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나는 단기간에 끝내지 못했다. 집중해서 20분 넘게 앉아 있는 것조차 어려운 날도 많았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고, 기억한 것은 자꾸만 빠져나갔다. 나에게는 광고 속 이야기와 달랐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하려는 욕심을 줄이고, 3개월 단위의 작은 계획을 세웠다. 그 작은 계획들이 쌓여 결국 140학점을 완성했다.
배움은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속도로 지치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여정에서 분명하게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 도전에는 반드시 ‘버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 그냥 오늘 하루 공부 10분을 해도 되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어도 되는 그런 작은 용기 말이다. 그 작은 용기들이 쌓여 어느 순간, 목표가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무엇을 꿈꾸고 있다면, 이미 절반은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방법이 있다면 해보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나 또한 그랬다. 해야 할 이유보다는 안 해도 되는 이유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되는 도전
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잠시 쉬어야지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더 큰 갈림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공계 학사 자격이 있어야 응시할 수 있음”
특정 자격증의 안내 문구 하나가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놓았다. 단순한 한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시 공부해야 하나?’
‘또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맞을까?’, 지금 그 고민의 중간에 서 있다.
이미 한 번 긴 여정을 걸었기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학사 과정을 끝냈다는 사실은 끝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문을 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큰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일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출발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은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조금 더 신중하게,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예정이다.
배움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도전은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다시 시작하는 용기만 있다면 그 길은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현실적인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