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에서 만난 차와 사람.
중국 운남성 쿤밍(곤명)에서 리장 고성까지.
이번 여름 휴가 여행지는 중국.
나의 첫 중국여행이자 첫 자유여행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대만이나 홍콩이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나처럼 혼자있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적인 부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할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 나의 단순한 결론은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을 가자 였다. ㅋㅋ 쉽게 말하면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고, 현대식 고층빌딩이나 상가들도 없어야하며, 철저히 자연적이고 날씨도 좋아야했다. 그리고 휴가가 길지 않았기에 여행지도 너무 멀지 않은 곳이어야 했다. 이것 저것 따지다보니 옆나라 중국 그 큰 대륙에는 분명 내가 원하던 곳이 있을거라 생각했고 결론은 운남성을 택했다. (다행히 같이 가는 남자친구가 중국어가 능통해 나의 가이드로 낙점되었다.)
여행 출발 전, 중국 지도로 운남성의 위치를 보아하니 대륙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었다. 쿤밍 공항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리장역까지 7~9시간을 가야했다. 어림 짐작으로만 거의 서울에서 여수까지 가는 느낌이랄까. 미리 예약해둔 항공편과 기차편을 스무스하게 타고 갈 수 있을거라는 믿음과함께 출발.
경유지인 옌타이에서 무려 3시간 30분정도의 연착으로 모든 계획은 무산되었다. 쿤밍에 도착하니 기차 출발시간이었고, 쿤밍공항에서 기차역까지는 대략 차로 40분거리였다. 그렇게 리장행 기차를 타지못했고 그시각 기차는 막차였고 다음날까지도 좌석은 매진이었다.
이 날 리장에 도착하기까지 있었던 정말 파란만장한 일들은 나중에 기록하고 차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어렵게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인테리어부터 창틀이며 기와, 작은부분 하나하나가 먼 옛날로 돌아간 것같은 느낌을 충분히 주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 곳에 떨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고 드디어 여행을 왔다라는 실감이 났다.
옛날부터 차를 무역하던 운남성에는 상인들이 주로 묵어가던 ‘객잔’ 이라는 숙소가 있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숙소가 되었지만 그 느낌만은 정말 고스란히 남아있어 몇백년 전으로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객잔을 여럿 운영하는 사장님과 친해져, 여행에 대한 이것저것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물론 대화는 남자친구가, 나는 벙어리였다.ㅋㅋ)
여기 사장님은 우리가 하루 여행 일과를 마치고 객잔으로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왔냐고 물은 뒤, 그에 맞는 차를 대접하며 오늘 하루의 여행에 대해서 들어주고 내일 여행의 일정도 도와주신다.
길면 2시간. 물론 나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여행을 하다가 깨닳은게 하나 있다. 시계를 보지 않으면 여행이 길어진다는것.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나같은 직장인들은 여행이 항상 길어야 일주일~열흘이다. 여행 계획을 너무 타이트하게 짜버리면 시계를 보고 마음을 졸이느라 진정으로 여행을 즐길 수 없게된다.
예전에 남자친구와 국내 여행지에서 3~4시간 빗길을 정처없이 걸었던 적이 있다. 여행기간은 딱 1박 2일. 소중한 낮 시간을 빗길 속을 걸으며 지금이 몇시인지 몇분안에 목적지에 도달할지에 대한 생각을 접고, 오가는 대화와 지나가는 풍경들에만 집중했었다. 결과적으로 아직도 나의 기억엔 그 때 그 걷던 길의 발자국소리, 빗소리. 그 때 그 대화와 목소리톤, 축축했던 무릎의 온도들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그 때는 내 머릿속에 머나먼 과거 한 순간의 영원한 찰나로 기억되어져있다.
일정을 마치고 온 우리에게 차를 대접하던 사장님이 그랬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씻지도 않고 짐도 풀지 않은 채, 몇시간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때 들었던 차에 대한 설명들, 리장에 대한 이야기들과 자기 자신의 사업 이야기. 이 모든 것들과 사장님의 끝내주던 보이차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찰나로써의 장면으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