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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오카 서점 MORIOKA SHOTEN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서촌에 신기한 서점이 문을 열었다. 흔한 베스트셀러나 추천도서는 없다. 달랑 한 권의 책만 세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매달 한 권의 책이 주인공이 되는 공간인 ‘한 권의 서점’이다. 한 권의 서점은 매달 첫날 단어 하나와 함께 그 단어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을 선정한다. 신·구간, 독립출판물 등을 구분하지 않고 책을 고른 뒤 책의 내용과 연관 있는 사진과 영상을 함께 전시해 책에 대한 경험을 극대화한다.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서촌 한권의 서점 전경 / 출처 : 묵사마의 좋은장소이야기 블로그


현재는 서촌 내 숙박업체와 연계해 숙박 고객이 입실 당일 이 서점에 들르면 잠옷과 책은 물론 서촌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점의 역할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생활정보 등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을 넘어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광장의 몫까지 맡을 수 있게 확대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한 권의 서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 https://m.blog.naver.com/archiry/221568973342




도쿄 중심지 긴자에 위치



cmyk interior&Product 홈페이지 참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점도 변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소비자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에 흔들린다. 우리는 클릭 한 번이면 서점에 가지 않고 책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이야기는 없다. 서점으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 서점에 들어섰을 때 풍기는 종이냄새,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서점에 직접 가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서점에서 영화감상회나 북토크 같은 이벤트를 여는 등 사람을 모으는 광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됐다. 그 결과 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서점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한 권의 서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런데 ‘한 사람을 위한 한 권’을 추구하는 배려는 이곳이 최초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일본 도쿄의 중심지 긴자로 떠나볼 필요가 있다. ‘한 권의 책을 파는 서점’이라는 콘셉트를 최초로 내건 ‘모리오카 서점’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긴자는 고급 부티크들이 몰려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모리오카 서점이 있는 1번가는 서점과 어울리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조용한 거리다. 이곳에 간판도 없이 책 한 권만 파는 서점이 5년 넘게 자리 잡고 있다.


모리오카 서점이 처음 문을 연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점 대표인 모리오카 요시유키는 고서적 전문 서점인 잇세이도 서점에서 8년 동안 점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엔 도쿄역 근처에 개인 서점을 열었다. 그는 개업 초기부터 책만 파는 게 아니라 갤러리와 대관 업무를 병행하면서 기존 서점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대안서점을 표방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안’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오래된 빈티지 책이나 잡지 수집자들을 이끈 ‘카우북스’, 예술 분야의 헌책을 주로 판매한 ‘림아트’ 등이 대안서점의 선구자였다.

도쿄 나카메구로에 있는 마쓰우라 야타로의 카우북스



모리오카 대표는 대안서점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정기적으로 출판기념 전시회를 열었고, 다양한 업체와의 협업을 지속했다. 특히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계 디자이너 소냐 박의 브랜드 ‘아트 앤 사이언스’와 협력하고, 데님의류를 만들어 파는 브랜드 ‘캐피탈’의 본사 내 서점에 들어갈 서적들을 선별해주는 등 ‘2차원인 책의 내용을 3차원의 공간에 내놓는다’는 독특한 취지를 구현하려 노력했다.


마침내 그는 책 출간행사에서 파생된 전시회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고 판단해 아예 한 권의 책만으로 꾸리는 서점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특별히 분야를 정해놓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책을 매주 한 권씩 소개하는 서점을 2015년 5월 도쿄 긴자에 새롭게 개점했다. 모리오카 서점은 매주 화요일 새로운 책이 들어오는 시기에 맞춰 내부를 재구성한다. 선정한 책 한 권을 중심으로 가지를 뻗치며 다양한 파생상품을 전시·판매한다. 가령 책이 사진집일 경우에는 사진 전시회를 열고, 미술책이라면 갤러리 역할을 한다. 책의 저자와 편집자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서점에 상주하면서 방문객들을 응대하고, 북토크를 즉석에서 열기도 한다.

cmyk interior&Product 홈페이지 참조




매주 화요일 새로운 책 선보여

사실 출판대국인 일본에서는 모리오카 서점이 지향하는 대안서점의 형태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난 적 있다. 특히 영국의 〈가디언〉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서점 10’ 목록에 든 일본 교토의 게이분샤 서점은 1975년 창업 이래 직원들이 직접 서가 진열을 맡아 판매부수나 발매시기 등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큐레이팅한다. 서점에 갤러리와 카페를 같이 운영하면서 책과 독서의 기능을 확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결과 서점 주변에 여러 특색있는 가게들도 들어서면서 서점이 있는 교토 이치조지 지역은 지금도 독특하고 개성 있는 분위기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다.


 교토 이치조지에 위치한 케이분샤 서점 


주말이면 2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이는 도쿄의 츠타야 T사이트 역시 도심 한가운데서 녹음이 울창한 휴양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책과 음악·영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내 집 같은 공간’을 표방한 곳이다.

도쿄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츠타야 T-SITE 전경, 기획의 정수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장소


비록 후발주자이긴 해도 모리오카 서점이 지닌 브랜드로서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책이 지닌 핵심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제공하는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서점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정보를 판매하는 공간에서 감성과 취향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를 지워버렸다. 이러한 단순화가 ‘가장 분명한 공간’이라는 인식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모리오카 서점은 서점뿐만 아니라 어느 상품이든 서비스든 비슷비슷해져 버린 시대에 새로운 전략을 과감히 실현해 성공시킨 대표적 사례다. 그들은 소비자에게 많은 것을 제안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제안했다.

수많은 책 사이에 묻혀 어느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큐레이팅은 이제 흔해졌다. 머리로 하는 이해보다 마음속 공감의 무게가 더 커질 때 브랜드는 소비자의 내면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기술을 고안해내는 대신 자신이 세상에 제시하려는 삶의 방식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모리오카 서점은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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