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본질을 바라보는 세밀한 관점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낳는다
2005년 일본 게이오대 에리카 프로젝트 팀은 자국 내 민간 기업과 협력하여 최초의 전기차 에리카를 개발했다. 8륜 구동, 리튬이온 배터리로 구성된 이 전기차는 1회 충전으로 약 300km를 달릴 수 있었고, 최고 시속은 무려 370km/h에 달했다. 당시 고이즈미 수상은 에너지 혁명의 스탠다드라고 일컫으며 일본 시장에 안성맞춤인 자동차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애당초 전기를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 것일까? 속도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본질이 아니다. 전기차의 본질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해 최고의 주행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에리카 프로젝트는 처참하고 실패했고 이 차가 상용화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에리카 프로젝트의 실패를 떠올리면서 몇 달 전 부터 진행하고 있는 회사의 CI&BI 리뉴얼 프로젝트에 관해 내가 구상하는 방법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해외에 본사를 둔 국내 유수의 브랜딩 에이전시를 파트너사로 선정하여 함께 구상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서 그들은 줄곧 CI와 BI를 변화, 성장을 위한 본질로 인식하고 그 과정을 메타모포시스(metamophosis,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변태)로 규정하고 있었다.
CI와 BI의 변화는 수단이지 본질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업을 수행하고 있는 회사의 의도를 기반으로 미션(Why) - 비전(How) - 핵심 가치(What)를 규정하지 않고 형식적 역할만을 CI 와 BI에 담아낸다면 브랜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물론 파트너사는 표면적으로나마 임직원 워크샵, 타사 분석 등을 통해 변태를 위한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디자인적으로 심미안이 우수한 심볼마크와 로고마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는 나는 업계에서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파트너사가 소셜 네트워크에 난무하는 (자칭)브랜딩 에이전시와 동일한 방법으로 '파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더 많은 문헌조사와 세밀한 과찰을 조금 더 했더라면, 그런 "조금 더"의 행동이야말로 클라이언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