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가는 길
누군가를 고통을 지체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으니 ‘호상’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나서 빙빙 차를 돌린다.
종종 보았던 누군가가 올해 초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늙은 주인집 강아지가 더위를 먹은 것인지 무지개를 건너려는지 사흘 채 사료도 물도 먹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다.
그러면서 한참 생각 끝에 떠오른 문정희의 시
마흔 살의 시
문정희
숫자는 시보다도 정직한 것이었다
마흔 살이 되니
서른아홉 어제까지만 해도
팽팽하던 하늘의 모가지가
갑자기 명주솜처럼
축 처지는 거라든가
황국화 꽃잎 흩어진
장례식에 가서
검은 사진 테 속에
고인 대신 나를 넣어 놓고
끝없이 나를 울다 오는 거라든가
심술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심술이 나고
겁이 나는 것도 아닌데 겁이 나고 비겁하게
사랑을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잊기를 새로 시작하는 거라든가.
마흔 살이 되니
웬일인가?
이제까지 떠돌던
세상의 회색이란 회색
모두 내게로 와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새 옷을 예약하는 거라든가
아, 숫자가 내 기를 시든 풀처럼
팍 꺾어 놓는구나.
사라지는 것은 모든 것은 아름답지만
소중한 누군가가 떠나는 시간을
차마 편안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왜 슬픔은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일까?
호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