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디자이너의 러시아 패션 콘테스트 참가 기행_4

Vladivostok in Russia_2016

by SUHDODO
20160521_120833_HDR.jpg 러시아 가정식 아침식사


마지막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대망의 본 쇼가 시작되는 날이라 희미하게 설레는 기분이 감돌았다.

사실 첫 해외 콘테스트 참가라는 사실에만 의미를 두자 싶어 수상에는 별 욕심이 없긴 했다.

그저 타지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다 새롭고 흥미로워 재미있을 뿐이었다.


식사는 주방장님께서 감자요리를 많이 해주셨다. 감자 샐러드에 감자조림 그리고 보르쉬와 모르스 주스인데 감자조림과 샐러드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맛 하고 아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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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쇼 리허설


아침을 먹고 바로 본 쇼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이 날은 본 쇼와 함께 오프닝까지 있어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다. 오프닝에서는 어린이 컬렉션이 진행됐는데 V*G*S에서 모델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다. 이 패션쇼에 서는 모델들은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일찍이 교육시켜 키우고 있다. 내 쇼를 섰던 모델들도 전부 여기 학교 출신들이었다.


20160521_145401_HDR.jpg 호텔 런치


점심은 특별히 마지막 날이라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먹었다. 호텔은 학교 부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손님도 우리 테이블 하나밖에 없는데 나오는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거의 3~40분? 걸린듯하다.. 그래도 계속 학교 카페테리아의 가정식만 먹다가 양식을 먹으니 새롭고 좋았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스테이크와 몇 가지 음식들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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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쇼 백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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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쇼


본 쇼의 막이 오르고 내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옷매무새를 손보며 백스테이지에서 내 컬렉션을 바라보았다. 모델들이 입고 있으니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직접 쇼를 내 눈으로 볼 시간은 없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면서 모델들이 들어오면 바로 다음 디자이너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탈의를 도와줘야 했기에 무대에 올라가는 것만 보고 들어왔다.


모델들이 워킹을 시작하고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오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을 때,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두근거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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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모든 쇼가 끝이 나고 시상식만이 남았다. 차례로 상장과 디자이너를 호명하는데 아무런 기대를 안 하고 있었던 터라 생각 없이 서있었는데 낯선 듯 익숙한 이름이 불렸다.


SUHDO LEE

나는 내 이름이 불린지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헬퍼가 알려줘서 정신을 차렸다.


그때의 내 얼굴을 봤다면 얼빠진 표정이 가관이었을 거다.

얼떨떨하면서도 놀라운 감정으로 상을 받으러 무대 앞으로 나가 상을 받았다. 내가 아시아권 참가자 중 유일한 수상자라고 했다.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내 옷이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긴가민가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상금은 따로 없었고, 상품으로 일반 스팀다리미와 디자인 여름캠프 초대권을 받았다. 항공권, 식비 및 기타 생활비는 본인 부담이고 숙소와 프로그램 활동비 등만 제공해준다고 했다. 여름캠프는 받으면서도 걱정스러웠다. 언어가 안되는데 괜찮을까? 그전까지 러시아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야겠다 등등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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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마트에서의 야식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나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나는 그동안 고생해준 헬퍼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함께 야식을 먹기로 했다. 다들 많이 지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근처 24시간 운영하는 마트의 푸드코트에서 피자를 먹었다. 그리고 마트 쇼핑도 하면서 헬퍼 친구들에서 간식을 고르라고 하고 간식까지 쥐어 보냈다. 나는 부상으로 받은 여름 디자인 캠프를 참가해야 해서 1~2개월 후 다시 방문하게 됐는데 헬퍼 친구들은 그때가 방학 시즌이라 다들 고향에 돌아간다고 했다. 아쉽지만 보게 된다면 다시 보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20160522_091507_HDR.jpg 숙소 창가


순식간에 지나간 듯한 3박 4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하루, 이틀만이라도 자유시간을 보내고 왔으면 싶었지만 일꾼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밀린 업무를 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비행기 탑승 전까지 시간 여유가 조금 있어 오전에는 기념품을 사러 근처에 나갔다 왔다. 러시아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기념품으로 뭘 사야 할지 몰라 그냥 초콜릿 위주로 샀고, 공항에서 마트료쉬카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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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는 비행기 안


그렇게 또 짧은 비행을 하고 한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엄마가 택시를 타고 마중 나와주었다.

집까지 편하게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가 저녁때 가족들과 식당에서 축하파티를 했다.

외가 쪽 식구들이 모이면 항상 나에게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과연 내가 기성복을 만드는 직업을 갖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까지는 내 개인 브랜드를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점점 잘 모르겠다. 혼자서 하기엔 내가 할 수 없는, 하기 귀찮은 일들이 있고, 여럿이 하기엔 나와 뜻을 함께 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과연 그렇게 하면서 쌓은 경험들을 가지고 직업으로서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첫 해외 콘테스트&패션쇼를 경험하면서 좀 더 견문이 넓어진 것 같아 좋았고, 제2외국어에 대한 필요성도 느꼈던 좋은 기회였다. 더불어 이런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