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vostok in russia_2016
"바다 보러 가고 싶어?"
행사 구경을 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걸 헬퍼 친구들이 흘려듣지 않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이 말하길 3박 4일 일정 동안 바다를 볼 수 있는 자유시간은 지금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내가 여기를 또 언제 오겠나 싶어 가겠다고 했다.(이후로 블라디 보스톡과 인연이 이어져 2~3번 더 왔다는 건 다음번에 쓰게 된다.) 이때에는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를 처음 간 거라 혼자서 가까운 마트 나가는 것도 가도 되나 걱정했었다. (이후에는 혼자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잘했지만.)
어쨌든 헬퍼 친구들 말로는 가까워서 금방 갔다 올 수 있다고 해서 그럴 거라 믿었다.
이후 3시간 30분 동안 걷게 될 거라고는 나 혼자서만 예상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헬퍼 친구 두 명이서 밤 산책을 나섰다.
헬퍼 친구들은 둘 다 러시아인인데, 한 명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 아주 조금 대화가 가능했고, 다른 한 명은 영어와 한국어 둘 다 안 되는 친구라 바디랭귀지로 소통했다.
특히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했는데 마침 나도 '화양연화'앨범의 수록곡들을 좋아했어서 함께 사람 없는 길거리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2016년 당시 BTS가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쓸거라 생각 못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그 조짐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셋이 대화는 길게 하진 않았지만 마음과 노래로 하나가 되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한적한 시골길을 다니는 느낌인데 일탈하는 듯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친구들만 따라서 계속 걸어가는데 지름길이라며 낭떠러지 같은 철조망 길로 안내해주었다.
분명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바다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왜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르막길만 오르는 걸까 의아했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냥 생각하길 포기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는데..
눈앞이 정말 황금처럼 반짝거렸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동안 말없이 풍경만 바라보았다. 하늘빛은 적당히 어두운 푸른색이었고, 바닷물에 비친 거리의 조명들은 더욱 반짝이며 빛났다.
아마 내가 이 날 이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 광경을 몰랐을 거란 생각에 나를 데려와준 헬퍼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고 나니 헬퍼 친구들이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본격적인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날 올라갔던 곳은 금각교가 보이는 명소 '독수리 전망대'였다.)
전망대로 가는 길에 보았던 경기장 같은 작은 공원을 가로지르니 위에서 봤던 바다가 좀 더 가까이 보였다. 근데 사실 이때 진짜 바닷가 근처 앞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두 친구들은 또다시 나에게 바다를 더 가까이 보고 싶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내 체감상 너무 많이 걸은 것 같아 다들 지치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그건 정말 걱정일 뿐 이 정도 걷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가깝다고 가자고 했다. 그래, 이 친구들이 이렇게 생각해서 구경시켜주려는데 좀 더 욕심을 부려 다 보고 가자 생각했다.
그렇게 언덕길에서 내리막길로 바뀌고, 주변에는 나무보다 건물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와 큰 건물들이 보이는 순간, 서울 토박이는 이렇게 걸어서 바닷가를 갈 수 있다고? 의문이 생기며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 친구들을 따라가는 것에 또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온 이상 이제 진짜 포기하고 돌아갈 수 없었다. 꼭 바다를 보고 가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얼마를 더 걸었을까, 작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된 공원이 나왔다. 당시 나도 사전조사를 전혀 못해갔기도 하고, 이 친구들이 장소마다 설명을 해주지 않아 여러 곳을 보고 다녔지만 정작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아르바트 거리였다.
아르바트 거리를 따라 쭉 내려가니 해양공원이 나왔다. 해양공원 좌측에 큰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은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대형 영화관이라고 했다. 작은 듯 큰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바다에 다다랐을 때 너무 캄캄해서 바닷물은 잘 안보였지만 물살이 출렁이는 느낌이 느껴졌다. 탁 트인 기분.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다.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도심에 질려 갑갑함을 느끼며 살다 보니 이렇게 탁 트인 청량한 장소가 그립다.
바다 구 경도 실컷 하고 이제 남은 건 숙소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굉장히 오래 걸어 내려온 것 같은데 또 그만큼 걸어 올라가야 한다니..
당 충전을 하고 힘내야지 싶어 24시 마트에 들러 마실 것을 샀다. 친구들이 추천해준 복숭아 주스를 마셨는데 굉장히 진하고 맛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여러 개 사가고 싶을 정도였다. 주스를 마시니 힘이 좀 생기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우리가 내려왔던 길 반대편으로 올라가서 또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이때가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 거리에는 정말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는 밤 10시 이후로 술을 판매하지 않는 데다가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법이 있기 때문에 걱정했던 만큼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보다 거리가 더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 맞은편에서 3명의 젊은 남자애들을 마주쳤는데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왔지만 우리 친구들이 잘 대처해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고,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이렇게 무사히 밤 산책을 마쳤고, 친구들의 예상대로 이 시간이 3박 4일 일정 동안 유일한 자유시간이자 러시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