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 am not there Oct 15. 2022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괜찮은 어른이 되기

아이가 내년이면 5살(만 3세)이다. 이쯤 되면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을 계속 다닐지 유치원으로 옮길지를 고민하게 된다. 대한민국 보육시스템은 0세부터 7세까지 ‘어린이집’에서 보육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은 보육기관, 유치원은 교육기관으로 5세 때부터 다닐 수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즘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가’보다는 ‘어떤 좋은 교육을 시키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조기교육, 사교육을 위해 맞벌이를 하고 이사도 간다. 부모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며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습득을 원한다. 그러면서 가족간의 갈등이 생기고 사회적으로도 아동자폐, 우울, 학대 등 사건사고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이것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가? 이 방향은 맞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삶은 어떤 세상일까?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는 미래는 안전한 미래라는 일차적 사고에 갇혀 있다. 그래서 언젠간 돈이 될 어떤 ‘능력’을 위해 지금을 살으라고 말한다. 이대로는 내 사회적 가치가 낮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더 채우라고 채근한다. 아이들은 입시를 위해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를 하고, 청년들은 대기업과 공무원이 되기 위해 정해진 공부를 하거나 이것저것 스펙만들기로 자신의 몸을 혹사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전업주부도 퇴직아저씨도 제2의 취업 준비에 바쁘다. 그러다가 열심히 내 몸을 혹사했는데 미래는 오지 않고, 지금은 미래와 간극이 너무 크다는 자괴감과 우울에 빠진다. 사회주의도 아닌데 다들 비슷한 미래를 꿈꾼다. 이 엇비슷한 미래가 불편하다면 이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내가 바뀌어야 내 삶도, 자라나는 아이들 삶도 변화 할 수 있다. 이 획일적인 삶의 방향은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오지 않은 미래만 꿈꾸기에 ‘지금, 여기’가 항상 부족해 보인다. 세상이 말하는(유행, 트랜드) 삶은 내 몸을 통과한 것이 아니다. 진짜 삶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생각을 탐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모른다. 그냥 유행하는 음식, 여행지, 라이프 스타일을 막연히 동경하고 따르는 것 뿐이다. 외부의 틀에 자신을 맞추기에 자신의 오늘, 지금의 생각과 몸을 돌볼 줄 모른다. 나의 오늘 생각과 몸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생력이다. 자생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본연의 것인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 존재가 되어 스스로 생명력과 에너지를 발휘한다. 나의 딸은 자연분만을 기다리며 40주하고 5일이 지나 양수가 터졌다. 16시간의 진통 중에 자궁문이 2센티 밖에 열리지 않아 제왕절개를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의 한쪽 눈은 실핏줄이 터져있었다. 아이도 나 못지않게 자궁안에서 나오려고 용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뒤집기를 할때, 앉을 때, 기어 다니고 설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눈을 감고서도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연습을 했다. 지금도 킥보드를 타고 놀이터 철봉에 매달리며 자신의 신체를 탐구하고 생각지 못한 언어와 표정을 만들어 내며 생생하게 자라고 있다.

 어른이 된 나도 한 생명, 아이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생력을 잃어버렸기에 길을 잃은 것이다. 타인의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의심해봐야 한다. 좋아보이는 ‘타인의 삶’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였는가? 모두가 맞다는 그 길이 나를 위한 삶인가? 아이때 기어다니고 걸음마를 떼며 세상을 탐구하고 몸을 수련하듯이 용을 쓰며 살아야 한다. 내 몸을 통과하는 생각과 변화들을 기민하게 경험해야 한다. 자생력 있는 사람의 오늘은 불안하지 않고 변화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불안하고 두렵지 않은 부모의 아이는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