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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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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민 Nov 10. 2021

'비현실'에서 '비'를 지울 때 보이는 것

MBC 예능 <호적 메이트>

 현재 MBC 간판 예능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 대부분의 시작이 매년 ·추석 연휴에 방영하는 파일럿 방송이었다는 점이다. MBC 예능의 강자로   있던 이유가 이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구해줘! 홈즈> 등의 굵직한 이름들이  성공 문법을 따랐다.

 그 반열을 잇는, 올해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은 바로 <호적 메이트>이다. 태어나보니 호적으로 나란히 묶인 형제·자매·남매들의 현실적인 케미를 다룬 관찰 예능으로,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번 정식 편성이 확정되었다. 특집으로 구성된 두 회차에선 배우 김정은과 김정민 자매, 농구 선수 허웅과 허훈 형제, 배우 이지훈과 이한나 남매의 여행 및 일상을 통해, 달라도 너무 다른, 그렇지만 너무 닮은 호적 메이트의 모습이 그려졌다.     


‘호적 메이트’가 아니라 ‘적’ 메이트?

 <호적 메이트>의 매력은 서로가 가족이라는, 당연한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논란을 빚지 않을 솔직함, 일명 ‘~하라고 체’를 기반으로 한 명령형 대화, 속 깊은(?) 짜증 등을 모두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특히 프로그램의 ‘호적 고사’라는 코너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호적 고사는 “같은 듯 다른 호적 메이트의 성향 차이를 알아보는 <호적 메이트>의 공식 퀴즈”이자 인터뷰인데, 세 쌍의 비슷한 듯 다른 답변에서 프로그램의 묘미를 발견한다.

 “호적 메이트의 행동 중에 ‘이건 정말 싫다’” 하는 것에 대해 언니 김정은은 “(동생의) 세상을 사는 방식”이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다. 항상 착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동생이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답이었지만, 언니는 그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뒤이어 훈훈한 멘트를 나누던 두 사람에게 “둘 중 배려의 아이콘은 누구”냐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도 동시에 “나”라고 대답하는 자매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허웅과 허훈 형제 또한, 함께 하는 ‘수상 플라이보드’ 승부에서 자신의 실력이 월등하다며 서로 승부욕에 기름을 붓는데, 그런 와중에 허웅은 “훈이가 도전하는 모습은 잘한 것 같고, 저는 훈이보다 높게 탔고.”라며 인정할 건 하되, 아닌 건 아니라는 형제 식 선 긋기를 보여준다.

 때로는 호적 메이트가 아니라 그저 ‘적’ 메이트 같기도 한, 유쾌한 그들과 방송은 단순히 관계의 단면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앞서 솔직한 공격을 일삼던 그들은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방송을 통해 낯간지러움을 휘발시켜 생일 선물과 작지만 소중한 마음을 주고받는 자매가 있는가 하면, 시즌을 마치고 지친 동생에게 힐링을 선물하는 형,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형제가 있었다. 이지훈과 이한나도 과거에 서로를 위해 했던 말이 상처와 오해가 되었던 경험을 솔직하게 툭 털어놓으며 진심을 공유하는 남매의 애틋함을 보여주었다.     


호적 메이트 속 현실과 비현실

 개인적으로 세 쌍 중 가장 인상 깊던 호적 메이트는 이지훈·이한나 남매이다. 그들은 방송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이이다. 동생이 휴가 날 편히 쉴 수 있도록 직장까지 마중을 나가 집에서 건강 식단으로 밥을 차려주는 오빠, 그리고 꼭 붙어 길을 걷거나 뭉친 어깨를 풀어주는 동생이 조성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매의 에피소드는 세 쌍의 출연진 중에서도 가장 짧았는데, 그런 분량에도 관찰 패널들은 그들을 ‘비현실적인 남매’라고 규정하고 영상을 계속해서 정지하며 첨언을 늘어놓는다. 이에 스튜디오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던 이지훈은 “비현실이라 생각은 안 하는데”, “부모님이 그래서 그럴 뿐”이라 말하며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흔치 않은 남매의 모습이 그저 그만의 이유로 ‘비현실적’이라는 말에 갇히는 것은, 더 큰 포용력을 가질 수 있는 방송의 메시지가 퇴색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방송에선 이지훈·이한나 남매가 걷는 거리를 마치 만화 같은 필터를 씌워 이상적인 남매의 면모를 부각한다. 이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그들의 ‘이상적인 것’이 만화 필터 등의 재미 요소로 유지되고 패널들의 입담으로 더욱 발전될 수 있었으나, 방송 전반에서 반복된 비현실에 관한 지적이 오히려 이의 매력을 가린 듯했다. 앞으로 시작될 정식 편성에는 더 다양한 호적 메이트의 모습을 통해, 비현실에서 ‘비(非)’를 지운, 현실의 형제·자매·남매들이 자연스레 그리고 따스하게 용인되기를 하는 바람이다.

 <호적 메이트>가 예능 포화의 세계 속 빛을 발할 수 있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기대를 내걸 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도 서로의 호적 메이트로 (태어난다, 안 태어난다)”라는 질문에, 흔쾌히 “태어나고 싶다”라고 답하거나,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안 태어난다”라고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어렵고 어쩐지 뭉클하기도 한, 호적 메이트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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