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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tic Oct 27.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꿈을 좇는 과정의 메타포 '길'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오랫동안 영화 작업을 함께해 온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이 끊긴 찬실(강말금)이 꿈(영화)만 좇았던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영화다. 찬실이는 당장 일이 끊겨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반강제적으로 꿈과의 거리를 두게 된다. 찬실은 생계를 위해 소피(윤승아)의 집에서 일하고, 갑자기 찬실의 삶에 등장한 김영(배유람)에게 호감을 느끼며 연애를 통해 삶의 만족을 추구하려 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지 감독(서상원)이 죽은 첫 장면 이후 찬실이가 영화를 함께 해 온 이들과 가파른 길을 오르며 시작한다. 흔히 길은 꿈을 좇는 과정에 비유한다. 따라서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가파른 산길이나 끝없이 이어진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보고, 꿈을 좇는 과정은 힘듦과 어려움이 동반되는 과정이라고 쉽게 말해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이 장국영(김영민)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을 제외하고 찬실이 주변 인물들과 함께 내려가는 길인 것은 한번 짚어볼 만하다. 또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길은 김초희 감독이 영화를 꿈꾸던 과정에서 마주했던 고민과 성찰이 맞닿아 구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영화에서 길은 다시 말해 찬실이가 꿈을 좇는 과정이다. 불확실한 꿈처럼 귀신인지 모를 인물 장국영이 머물러 있고, 찬실이 예찬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의 한 순간처럼 별거 아니지만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는 할머니(윤여정)의 공간으로 향하는 길은 그녀가 꿈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끝없이 이어진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소피의 집으로 향하는 길도 계단이 놓여 있다. 찬실은 더 길게 늘어진 계단은 힘차게 오르면서, 소피의 집으로 이어진 작은 계단에서 헛발을 내디딘다. 현실에서는 계단을 오르며 헛발을 짚는 것이 특별할 일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삐걱거림’은 우연이 아니다. 찬실은 작은 계단에서도 헛발을 짚을 만큼 현재 꿈을 좇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을 드러내며, 소피의 집에서 생계를 위해 구한 가사도우미의 일이 찬실이 꿈과는 멀어지는 방향으로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을 의미한다.


 찬실은 김영과 함께 걸을 때면 늘 평평한 길을 걷는다. 장국영이 희미한 꿈이라면, 이름의 유사성에 기대어 김영은 꿈을 좇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인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해줄 존재다. 찬실은 갈망했던 영화와 함께하는 삶이 좌초되어 힘들 때 나타난 남자 김영을 두고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이란 섣부른 판단을 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꿈을 좇는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고독을 상쇄시켜줄 누군가와 함께하는 길이라면 오르막길보다 가기 쉬운 평평한 길일 것이라는 선택을 한다. 또, 찬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위한 산책길에 김영과 동행하는데, 함께 걷는 둘의 모습은 로맨스가 진전되는 것 같은 풋풋한 모습인 데 반해, 음악은 미스터리 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찬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김영과 함께하는 길인지에 의문을 표하듯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찬실이 영화를 함께해온 이들과 동행하며 내려오는 길은 꿈을 좇는 과정이 항상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며,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것처럼 힘든 순간도 있을 수 있다며 위로를 건넨다. 찬실은 혼자 멈춰 서서 말한다.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이어진 다음 장면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인 것은 장국영의 질문에 대한 찬실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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