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옥의 야심작
늦은 밤 머리를 감고 머리에 트리트먼트를 잔뜩 바르고 스팀 타올로 말아 올렸다.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뱀처럼 보인다.
너무 많아 여기가 지옥다리를 건너가는 곳인가 싶을 정도라 짜증이 올라왔다.
'나이 탓이야? 아님 지금 맞고 있는 다이어트 주사 때문인가? 짜증 나네'
소파에 털썩 앉아 티브이를 켰다.
채널을 돌리는데 홈쇼핑 방송에서 채널이 안 돌아간다.
'아 씨 모야'
리모컨의 배터리 그림에 점멸등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 참'
홈쇼핑 방송에서는 나노 샴푸의 광고가 방송되고 있었다.
길고 풍성한 머리를 한 쇼호스트 둘이 정말 입에 침이 마르게 샴푸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었다.
나노 샴푸 이거 닥터 옥 박사님이 개발하신 샴푸인데라며 블라블라...
화면 속에 닥터옥이 샴푸병을 들고 "이 샴푸 한 병엔 나노 전달체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그리고 그 전달체는 사용자의 DNA ‘신호’를 따라갑니다.”라는 맨트가 적힌 사진 한 장이 커다랗게 클로즈업이 되었다.
쇼호스트 한 명이
"저 두 달 전 방송에 이거 제 사진 좀 보세요" 하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말 과장 좀 보태서 스미골 같았던 머리카락이 지금은 숫사자만큼 수북해진 게 아닌가?
또 다른 쇼호스트는 커다란 도끼빗을 들고 나와서 자기 머리를 빗고 빗고 또 빗었다.
그러면서 빗을 보여주는데 머리카락이 단 한 개도 빠지지 않았다.
빗을 요리조리돌려가며 너무나 당당한 표정으로 '봤지? 봤지? 안 빠져 진짜라니까!'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서로 머리카락을 당겨가며 가발 아니라고 확인시켜 주고 두피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카메라까지 들고 나왔는데 어찌나 빽빽한지 두피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브로콜리두피가 되어버렸어요!"
'하 저거 모야 정말이야?'
방송에서는 1번 세트 매진 2번 세트 곧 매진이라며 서두르라고 했다.
한 병을 다 쓰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100프로 반품이 된다는 맨트에 나는 어느새 핸드폰을 들어 주문을 하고 있었다.
쇼호스트 둘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정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고 집 나간 머리카락이 돌아오는 경험을 하실 거라는 맨트가 내 귀 양쪽으로 웅웅 거리듯 들려왔다.
나는 머리에 감긴 수건을 풀며 머리를 툴툴 털었다.
머리카락 수십 개가 또 마룻바닥에 떨어지고 그 머리카락을 보며
'과연 니 들이 돌아올까?'
바로 다음날 아침 출근길 샴푸가 도착했다.
'뭐야 얘도 새벽배송이야?'
만원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틈에 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또 짜증이 슬 올라오는데 그 와중에도 핸드폰으로 여자의 톡내용을 본의 아니게 훔쳐보게 되었다.
'이 샴푸 대박이야 근데 좀 이상하기도 해.'
'여튼 너도 한 병 줄게 써봐 ㅇㅇ ㅋㅋㅋ'
'뭐가 이상한데?'
'글쎄 잘 모르겠는데 머리카락이 돌아오는 느낌?'
'뭐야 머리카락에 눈이 달렸냐 돌아오게 ㅎㅎㅎㅎ'
'그치? ㅋㅋㅋㅋ'
대략 이런 대화내용였는데 아침에 도착한 나노샴푸가 맞는 듯했다.
여자의 하얀 블라우스 어깨 위로 까만 머리카락이 툭 떨어졌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안 빠질 리가'
샴푸를 쓴 지 일주일이 흘렀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확실하게 빠지는 거는 줄었다.
욕실 바닥에 기분 나쁘게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 수가 줄기 시작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앞쪽 훵했던 머리도 왠지 차오르는 느낌이다.
새로 생기는 머리가 있는지 거울에 코를 박고 들여다봤지만
이내 '일주일 만에 자랄 리가' 없지. 빠지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야 라며 닥터옥의 샴푸병을 톡톡 건드렸다.
'반품은 안 할 것 같네'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진 캄캄한 욕실 안 나노샴푸병 안의 나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