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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eul Sep 07. 2020

(스포주의) 예스, 발레!

인도 빈민가 소년들의 발레 도전기로 살펴보는 인도의 사회상

빌리 엘리어트를 참 좋아한다. 어릴 적 책으로 먼저 접해, 영화와 뮤지컬까지 모두 섭렵했다. 영국 한 광산마을에서 태어난 빌리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춤에 대한 재능과 열정으로 세계적인 무용수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는 내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코로나가 한창 확산되며 어디 나가기도 뭐한 요즘 넷플릭스 추천영화를 휘적휘적 넘겨보다 <예스, 발레!>라는 영화를 발견했다.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거의 인도판 빌리 엘리어트 아닌가? 그렇게 빌리에 대한 애정 하나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두 명의 빌리, 아시프와 니슈 

근데 이 영화에서는 알고 보니 빌리가 두 명이었다. 바로 아시프와 니슈. 

아미루딘 샤와 마니시 차우한이라는 두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이 두 명의 천재가 우연한 계기로 뭄바이 댄스스쿨에서 만나 함께 성장하며 미국 발레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아시프는 원래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힙합 댄스를 추는 아이었다. 무슬림이면서 다른 종교의 축제에 가서 한탕 즐기고 온다거나, 생선을 파는 곳에서 무리를 지어 춤을 춰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혼나기 일쑤이다. 하지만 아시프의 재능을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형이었다. 아시프의 형은 자신이 배달을 나가는 뭄바이 댄스스쿨에 아시프를 반강제적으로 등록시키고, 그렇게 아시프는 생각지도 못한 발레 수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아시프가 시작부터 가족의 지원을 받은 것과 달리, 니슈는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아들이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황금모자’를 타와도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에 가서 번듯한 직장을 잡기만을 원한다. 니슈는 아버지를 속이고 댄스학원에 몰래 등록하게 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 학원 지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아시프와 니슈는 뭄바이 댄스학원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아주 냉랭하기 그지없다. 아시프는 TV에 나왔던 니슈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느끼는 듯 공격적으로 굴어대고, 니슈는 그런 아시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두 빈민촌 소년 사이에서 동지애가 싹트는 건 미국에서 온 까칠한 발레 선생님 사울 에런의 집에서 같이 살면서 부터이다. 투닥거리며 함께 사는 동안 둘 사이에는 우정이 피어오르고, 발레 수업도 계속된다. 각종 가정사, 비자문제 등이 얽혀있지만 결국 이 둘은 오레건 발레 씨어터에 합격하고, 두 소년이 미국 포틀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도 사회를 잘 보여준 <예스, 발레!> 

두 소년의 재능이 어려움 속에서도 꽃피는 과정을 그려낸 이 영화는 감동적이었지만 구성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아시프와 니슈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한 스토리 안에 모두 담으려다 보니 내용이 다소 정갈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으며, 힌두교 여자댄서와 아시프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연애 기류 등 메인 줄거리와 상관 없어보이는 듯한 내용까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러한 곁가지 요소들이 오히려 인도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앞서 말한 힌두교 여자댄서와 아시프의 이야기는 인도 내 종교갈등 양상을 잘 드러낸다. 힌두교에서 가장 큰 행사인 디왈리 축제에서 무슬림인 아시프가 그 여자아이와 춤을 추자 오빠가 찾아와 아시프 일행을 공격한다. 단순히 종교가 다른 남자아이와 어울려 춤을 췄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 초반에 아시프는 타종교 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큰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부딪히는 인도의 현주소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관찰 가능한 것은 인도의 빈부격차 양상이었다. 빈민층인 니슈는 토슈즈를 구입할 여력이 없어 수업참여를 거부당하기도 하고, 집에서 쫓겨나 학원에서 살며 학원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씻을 물도 없어 에어컨에서 나온 물을 모아 춤추고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닦아낸다. 이에 반해 니슈의 친구인 니나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산다. 집 지하에 니나만을 위한 발레연습실이 있을 정도이다. 니나가 니슈를 불러 집에서 같이 연습하자 니나의 부모님은 니슈 때문에 빈민촌에서 유행하는 결핵에 옮는 게 아니냐며 반감을 표한다. 판잣촌과 부유층의 대저택을 오가는 사이에 인도의 심각한 빈부격차 양상을 엿볼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눈에 띈 것은 소년들이 뉴욕 조프리 발레스쿨의 하계 프로그램에 합격했음에도 미국 비자심사에서 탈락해 결국 첫번째 미국행 티켓을 놓쳤다는 점이었다. 소년들은 분명 장학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혼에, 재산이 없어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비자를 받지 못한다. 오레건 발레씨어터에 전액장학생으로 합격했을 때도 변호사에게 비자를 발급받는 건 무리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차저차한 과정 끝에 결국 비자를 받는 데 성공하지만, 이 장면들은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더라도 빈민층에게는 기회가 크게 제한되어 있는 인도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실 이건 인도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영화에 반영된 인도 사회의 각종 갈등을 들여다보고 나면, 그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무용수가 되어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미루딘 샤와 마니시 차우한의 이야기가 한층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언뜻 부수적인 것으로 보이는 많은 에피소드들을 한 영화에서 다룬 감독의 의도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코로나 재확산세로 마음이 퍽퍽해지는 요새, 마음을 촉촉하게 해줄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이 영화를 한 번 틀어보는 건 어떨까.




*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라는 문화예술 웹사이트에 기고되었던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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