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by 오리궁뎅E

"우와~겨울왕국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부산에서 게임 디자인 공부를 하더니, 두어 곳의 회사에서 일도 했던 딸.


서울로 가기 한 달 전, 집에 와 머무르는 동안 함께 여행도 하고 드라이브도 했다.

드라이브 코스는 남편과 내가 주말마다 드라이브하는 곳이었다.


부산에 있는 동안 좀처럼 눈 구경을 하기 힘들었는데 엄마ㆍ아빠랑 드라이브하며 계속 탄성을 질렀다. 2년 전의 일이다.


이번 주말에도 같은 곳을 드라이브했다.

수주팔봉과 수안보를 지나고 두어 시간 가까이 슬로조깅을 하듯 달리는 길은, 사계절을 몇 번씩 보아도 늘 새로운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엊그제 다녀간 딸내미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석에 경산한우를 사 왔었다.

"엄마ㆍ아빠랑 꼭 함께 먹고 싶었어."

"아직 인턴인데 정직원 되고 나서 사도 되는데..."

"그럴까도 생각했는데, 정직원이 될지 어떨지 몰라서."


학벌이 능력과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고졸인 우리 아이가 이름만 대면 많은 이들이 알 만 한 N사에 들어갔을 때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 인간승리란 게 이런 느낌일까. 내가 잘되는 것보다 자식 잘되는 게 더 기쁘다는 걸 비로소 알겠더라.


인턴쉽 4개월 후 코 빠트리며 집에 왔다.

"무조건 네 편이야. 남들이 다 좋다 해도 네가 잘 맞는 곳이 좋은 거야.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부딪혀서 알게 되는 게 공부인 거야."

남편이 딸아이에게 말했다.


그 말이 아이에게 얼만큼의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의 말이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난 그냥 아팠다.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푹 자라고 했다. 자는 동안 난 그저 햅쌀로 찰진 밥을 짓고, 더덕을 무치고, 콩가루 묻힌 냉이로 된장국을 끓이고, 등심 새우살을 구워 주었다.

밥 먹으며 2년 전 드라이브할 때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눈이 있는 풍경은 텐션 높은 나를 고요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비 오는 풍경과는 또 다른 차분함이다. 나뭇가지에 얹혀 있던 묵직한 눈이 '툭!' 하고 내 가슴에 떨어진다.


눈 내린 풍경은 드라이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지만, 그걸 낭만이라고 하기엔 나에겐 아직 사치스러운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