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25
여행지의 골목길을 걸을 때 빈집이 눈에 띈다. 대체로 잡풀이 우거져 있고, 지붕은 기울고 금이 간 벽은 얼룩이 져 있다. 화초 한 개 없는 마당엔 햇빛만 이글거리고, 항아리 몇 개와 요강이 앞마당으로 나와 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왔냐고,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적적했는데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며 반가운 손짓을 할 것만 같아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얼마 전 시골 여행 중에 만난 기와집 한 채가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아한 위엄이 깃들어 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하여, 시간에 대하여, 세월에 대하여 조용히 성찰하고 있는 듯 의연하기까지 하다. 삐걱거리는 마루에 윤기는 없었으나, 가지런히 배열된 나무와 희미해진 나뭇결에 한때 단란했던 가족의 온기가 스며있는 듯하다. 손바닥으로 쓱, 먼지를 쓸어내고 앉아 본다. 어디선가 수저며 그릇 부딪치는 소리,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빈집은 적막을 피할 수 없다. 잠시 앉아 있는 동안 하얗게 쏟아지는 마당의 폭염이 얼굴을 덮쳤다. 오히려 사람이 살았던 빈집 보다 여름날의 지독한 폭염이 펄펄 살아있는 것만 같다.
갈수록 시골의 빈집이 늘고 있다. 그 많은 빈집을 두고 우리는 모두 어디로 떠난 것일까.
사라지는 것들에게 마음이 간다. 특히나 옛 기와집이나 방앗간, 양조장, 시골 학교 등은 보기에도 아깝다. 하지만 이것들은 새것에 양보한 것이 아니라 한때의 영화를 누렸던 생을 반추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조용히 침묵을 견디며 자신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크게 애석해할 일도 아니라는 듯.
가끔 사라지는 것들에게 말을 건다. 어여쁘다 눈 맞춤하던 눈길과, 소중하다 쓰다듬던 손길, 다정한 사람을 위해 종종거리던 발걸음일랑 잊고 시간의 켜를 쌓는 것들이 스러지고 있다. 점점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프랑스 음유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레오 페레’는 ‘시간과 더불어, 간다, 모든 건 다 떠나간다.’고 노래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사라질 여름날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그러나 결코 우리들의 여름은 사라지는 게 아님을 또한 알 수 있다. 오늘 새벽에 느낀 바람 한 줄기가 문득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작가님들 안녕하세요~ ^^ 그동안 글 올리지 못한 날이 길었습니다. 마치 무엇에 들린 듯 글을 멀리 했습니다. 글을 향한 마음은 지척인데 실천은 아득했습니다. 염려해주신 작가님들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 듬뿍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