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걸 정의내리기 위해선 언제나 불충분한 스스로를 바라봐야 한다.
완벽이라는 것들을 정의내렸을 때 떠오르는 위인들, 인물들, 그리고 스스로 비교하는 그런 마음들,
혹은 과거의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현재까지도 습관적으로 버리기 힘든 행동들, 카르마들, 그런 것들을 말끔하게 없애고 싶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
실은 이런 불완전한 행동들과 사유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말끔히 없어진 채로 정돈되고 잘난 그런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진실로 완벽이라는 언어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있다.
누군가는 한 타인을 평가하며 불완전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한 타인을 평가하며 완벽하게 보이고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탐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없고, 그렇다 해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 또한 없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임에 틀림 없지만 동시에 그 상태가 완벽의 상태이다.
불충분하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잡으며 나아가면 어느 지점에 충분할 정도로 잘 하는 자신이 보이지만 스스로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언제든 다시 원점이다. 그건 사유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이다.
살아가며 평가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볼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 만큼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나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완벽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만큼 객관적으로 정의내리기 힘든 주제이다.
한 사물이나 개인을 바라보아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 역사는 무수히 많고, 그 뿌리의 기저를 캐 내어도 끝도 없이 나오는 건 이야기이고 시나리오다. 그 시나리오에서부터 비롯되는 생명의 에너지는 사유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타인과 함께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다.
우리는 불완전한가? 우리는 불충분한가?
아니다. 한낯 개인으로써 나 자신도 그걸 평가하기 힘든 문제이지만, 비록 마음 속 흉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완벽하다. 그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 완벽하게 말끔한 상태가 아닌, 흉터를 지닌 채로 앞으로 나아가며 사유하고 깨닫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
종종 머리로 원하는 것들을 취하지 못하는 것에서 부터 비롯되는 상실감으로 우리는 온전히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자 하고,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취한다.
하지만 진짜의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면, 그것을 정말로 취해야 하고, 정말로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지에 대하여 솔직한 언어로 대답해보자면,
생각보다 적은 답변들이 되돌아온다. 실은 그 적은 것 속에 정말 많은 것들이 되돌아오는데, 있는 모든 것들과 존재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나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변한다.
행복은 우리가 쟁취할 수 없이 바람같은 것이다. 그건 물질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잡을 수도 없는 바람같은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도파민 같이 무언가를 이용하고 사용하고 행동해야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진짜 행복은 그 불어오는 바람을, 그 순간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감각할 때에야 비로소 지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 또한 보내주고 고통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수반한다. 고통은 우리 삶에 필요 없지만 항상 있는 것이다. 억지로 고통을 좇아 에고를 키우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통이라는 것 또한 살아가며 있는 자연스러운 특징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삶을 두 번 살 수 있고, 타인의 인생 또한 되짚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조건이 없지만, 조건지어진 사랑을 경험하고 그 고통을 느낀 뒤,
있는 그대로의 더러운 타인의 모습까지 지나쳐 보았을 때 그 타인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타인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 사람의 못난 모습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때, 이상하게도 타인에 대한 사랑을 진짜로 느낄 수 있다. 그건 깊은 신뢰이다.
그러니 충분하지 않아도 충분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도 사랑해도 되며, 완벽하지 않은 그 상태가 완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