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by hari


그림을 그릴 때 주제가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삶에서도 목표가 중요하듯이.

실은 예전에는 삶의 목표가 너무 뚜렷했다. 막연한 성공. 그리고 명예. 하지만 이번 년도에 많은 회의로 목표를 버렸다. 굳이 목표를 가지지 않고 현재를 살고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를 살되 아주 큰 덩어리라는 목표를 가져야 현재 또한 단단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가 없으면 이곳저곳 휘날리며 나를 잃기 쉽다.

너무 자기 주장이나 주관이 뚜렷하면 폐쇄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열어두곤 했는데 너무 많이 열어두어 나의 중심 또한 무너지고 무뎌지곤 했다. 중심이 있되 문을 열어놓기. 그림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

주제는 관조이다. 아직 내가 모든 것을 관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꼭 하고 싶은 담담한 주제이기도 하다. 기억을 잊으려 하지 않고, 직시하며 묵묵히 바라만 보기. 기억에 빠져 현재의 내가 기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

내 기억의 색을 바탕에 칠했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 흰 색으로 덮었는데 검정으로 다시 덮을지도 모르겠다. 주제만 정하고 다른 부분은 많이 열어두었다. 그리고 유리조각이라는 기억의 매개체를 넣을 예정이다. 누군가를 위한 그림도 아니고 온전히 나를 위한 그림이 될 것이다. 나는 더 단단해지고 싶다. 감정이 많았던 사람이 단단해지면 어떠한 다른 힘이 생길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 또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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