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리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차오르는 기분이 좋다. 그건 언제나 나를 따뜻하고 향긋하고 포근하고 안정감 있고 열정적으로 생기있게 살아있게 해주는 나의 진정한 엄마같다. 그냥 정말로 대지의 어머니. 마치 가이아같은 존재.
그래서 나는 이 행위에 대해서 방해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곤 했다. 누군가가 내 작품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나의 가장 큰 행복을 방해하는 누군가들을 싫어하기에 사실 내가 작업을 하면서 제일 중요했던 게 자유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나의 생각이 있는데 그게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2022년에 나는 그런 혼란을 또 다시 겪었다. 나는 미술계와 최대한 멀어지고 싶은 것도 있어서 다른 이들이 그대로 가는 FM의 방식대로 가지 않고 무용하는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낸 것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서로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의 작품을 인정해주고 좋아해줬다. 난 그게 너무 행복했다. 사람들은 인정에 너무 박하고 머리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피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순수회화가 아닌데, 그 방식이 아니라면 틀렸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그게 무척 불편하다.
2022년에 나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우리는 엄청 좋아했지만 틀어지는 부분이 꽤 많았고 정말 많이 싸우다가 나도 나의 진심을 모르겠다는 헷갈리는 지점이 생겼다.
그리고 그 때 작업적으로 혼란을 겪었는데, 어느 고지식한 한국화를 하시는 분이 본인의 방식이 아니라고 나를 함부로 판단했다. 난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그 방식대로 그릴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그건 내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색광선이라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작업이 너무 안 되어서 절망하고 절망하는 기간을 보냈다. 오빠랑 관계도 헷갈리고, 작업에 대한 중요도도 높아지니 너무 압박이 되고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몸까지 아파서 골골거리고 있다가 오빠에게 연락이 왔는데, 웬만해서는 말 안 하려다가 너무 아파서 새벽 2시에 펑펑 울면서 너무 아프다고 하니까,
오빠는 내일 아침에 일이 있고 사업하는 사람이라서 항상 바빴는데,
네가 괜찮다면 지금 우리집에 와서 나를 돌봐주고 가도 되냐는 거였다. 오빠 집은 수원이고 나는 반포여서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는데 그 새벽에 꾸역꾸역 갑자기 와서는 나를 달래주고 또 아침에 떠났다.
나는 그 때 녹색광선을 느꼈다. 내가 진심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는데, 결국엔 어느 순간이든 진심은 살아서 생동하고, 진실과 진심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선택하는구나를 느끼고 그 경험이 여전히 나에게 너무 고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날에도 작품을 보면서 더이상 작업을 못 한다는 절망감에 빠져있다가 오빠가 우리집에 와서도 작업을 놓지 못하고 새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오빠가 집에 나가고 나서 나는 자동적으로 그림을 완성시켰다. 온전히 진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그 이후로 다른 작업들도 수월하게 할 수 있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뜻깊은 작업이었다.
녹색광선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또한 나의 것들을 선택해준다. 오빠랑 헤어지고 나서, 작년에 친한 친구를 만나는 날에 내가 상태가 괜찮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있어서 창작의 녹색광선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엄청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데 그 친구를 보면 연한 분홍색과 진한 분홍색이 함께 있는 듯 한 귀여운 생각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 친구랑 같이 춤추고 그림그리면서 했던 작업을 다시 꺼내서 수정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