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주구장창 나열한 글

by hari

이사간다.

이태원에서 살았다.

처음에 이사왔을 때 일주일 간 울었다. 동네가 너무 무서웠고 여대 앞에서 살았을 때에 비하면 새벽에 나가기도 무섭고 연령층과 사는 사람들도 다양하며 몇 번 집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사람과 비밀번화 키를 올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섯달 동안은 집에 거의 없었고 작업실에서만 있었다. 작업실 멤버들과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사람들과 많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음지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살면서 그 앞에 바에 자주 놀러가지 않다가 혼자 슈거스컬이라는 바에 갔다. 새벽이었는데 꼭 가야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서 아이들과 만났고 알고보니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항상 정돈되고 말끔하고 공부하고 여자들만 놀고 꽤 많이 남자도 만나긴 했지만 남자인 친구들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의 무질서가 신기했다.
그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왜냐면 아직 그 아이들에게 미래가 오지 않았으니까. 현재에 많이 충실한 아이들이었다.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내 지인들을 보면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다. 한 무리가 있으면 다른 무리와 완전히 상반된 무리들이고 대다수 무리들이 그랬다. 한 명만 알고 지냈다기 보다는 여러 무리들을 알고 지냈다.
특히 작업실의 오빠들과 동네 친구들은 엄청 극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내 전시 때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신기했다.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싶었다.

작업을 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하고 싶다'라는 나만의 틀과 한계를 지정해 놓으면 내 재능을 막아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고 낯선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보라 해서 나는 점점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라는 특징은 있는 채로.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나를 한정짓지 않고 막무가내로 확 쳐냈다가 마무리로 정리하는 정도로 작업을 하는 것.

일주일간 이삿짐을 정리하고 과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느라고 몸도 너무 지치고 마음도 너무 지쳤다. 게다가 너무 독한 약을 먹어서 몸이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오늘 하루는 거의 잠수를 타고 있었다. 내가 너무 날카로운 고슴도치 같은데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그 가시들을 찌를까봐 무서워서
내가 찌른 뒤에 감정에서 깨어났을 때 후회할까봐 그 가시들을 나로 향하여 찌르고 있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화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그게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예전의 실수를 되감기 하고싶지 않아서.

항상 작업을 보면 날카롭다. 의도적으로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얇고 날카로운 선을 좋아한다. 다듬어진 선을 좋아해서 예전에는 정돈하며 그렸는데 이제는 폭력적으로 그리다가 나중에 정돈한다. 그게 진짜 내 속에 있는 화와 폭발적인 감정인 것 같다.

이번에 그리고 있는 것은 기억에 대한 그림인데
예전에 우리집 아래층을 허물었을 때 언니와 함께 주운 유리조각을 통 안에 넣어두었다. 나는 그걸 소중한 사람한테 나누어주곤 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났거나 혹은 멀어졌거나 그 둘 중 하나인데
가끔은 너무 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을 때도 있다.
어쩌면 나는 유리조각이다. 하지만 찔러도 아프지 않는 조각인데 나 자신은 너무 아픈 유리조각이다. 그 유리조각을 매개체로 해서 추상작업을 진행중이다. 날카롭고 차가운 색상의 유리조각을 누군가들이 껴안고 있다. 그 어울리는 색이 노란색인 것 같다. 포근하고 따뜻하다. 나는 누군가들을 안는 걸 너무나 좋아해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안아주곤 했다. 내가 그 사람들의 머리를 껴안고 그 사람들의 입이 내 목에 닿는 걸 너무 좋아했다. 너무 포근했고..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안아준 게 아닌 날카롭고 예민한 나를 그들이 따뜻하게
안아준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업도 그런 식으로 한 거고. 은진언니와 빈이와 동현이. 보고싶다

지금 방을 계속 정리하고 있다. 혼잡하다. 내 머리도 혼잡하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로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예전만큼 나약한 인간은 아니니까.
아까 머리가 너무 아파서 효창공원에서 산책하다가 나라는 인간을 상상했다.
동그란 철인데 망치로 두들김 당하고 있었다. 고통스럽고 깨부서질 것 같은데 그만큼 단단해지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그리고 걸으면서 좋았다. 나는 햇빛이 좋다. 자연 위에 앉아있는 햇빛이 좋다. 모든 것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있는 것 같다. 아까는 산책하다가 어떤 나뭇가지가 구걸하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웃겨서 웃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그냥 사니까 사는 거지. 무얼 위해 살아야 되는지 고민했었는데 나는 실은 돈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걸 목표로 두곤 했는데
따지고 보면 나는 그냥 여유롭게 문화생활 하고 그림그릴 작업실 넉넉하게 있어서 그곳에서 작업하면서 가끔 산책도 하면서 니카랑 그리고 사람들이랑 재밌게 살면 되는 것 같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 것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냥 나이고 싶고 그냥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 아프기 싫지만 웃긴 건 아까 산책로에서도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계속 오르막길로만 갔다. 그곳에 태양이 더 많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올라가기 힘들 것 같지만 천천히 가면 딱히 힘든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위에서 많은 걸 바라보니 더 좋았다. 나는 고통받기를 선택하는 인간인 것 같기도 하다.

또 울고 있는데 맨날 나는 혼자 질질 짠다. 그래도 옆에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저번에 엄마한테 울면서 소리질렀을 때 엄마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 예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우울증에
대해서 말한 이후로 엄마랑 연락을 끊었었는데 엄마가 그 이후로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내가 언제 죽을 지 모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좀 슬프다. 울면서 엄마한테 말했을 때 엄마는 다 들어주고 울고싶으면 더 울고 더 소리지르라고 했다. 아빠도 그 이후로 더 다정해졌다.

우리 다같이 그냥 요즘 사람들 다같이 힘든데 괜히 나 혼자 힘든 것 아니냐고 투정부리는 게 싫다. 따지고 보면 내가 현재 살아가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미래생각하면서 불안해 하고 있는 것 보면 웃긴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스트레스 왕땅 받으면서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여유롭고 가끔은 마음이 아프고 가끔은 감동받으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들도요.

미완성 - 내가 안았지만 나를 안아줬던 것들
요즘 나는 이렇게 고요하다
유리조각
보고싶은 동현이
나의 이태원
로로와 나
운동중인 문근오빠
미완성 - 나의 이태원
완성 - 관조,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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