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사호선. 아홉시 이십일분. 공연을 보면 항상 쫓기듯 나온다. 무용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용을 하는 사람들이고(내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 무리들 중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항상 이렇게 쫓기듯 나온다. 미술 개인전 혹은 단체전이든, 무용 공연이든, 우리들만의, 혹은 그들만의 볼거리가 되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 공연과 전시회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비상(飛上)이라는 무용공연을 보았다. 김강민이라는 무용수를 sns를 통하여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춤 선과 그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가 좋다고 느껴서 그 사람의 소식을 줄곧 보곤 하였다. 그를 통하여 이 공연도 보게 되었다. 공연은 CJ 아지트에서 진행되었는데 소극장이라서 무용수의 몸짓과 표정들이 세세하게 잘 보였다.
사실 유튜브에도 많은 공연 영상들이 있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그 에너지들, 기억의 잔상에도 남기 힘든 그 몸동작을 생생하게 느끼기 위하여 한 달에 몇 번씩 공연을 보러간다.
공연을 보기 전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나만의 느낌을 얻으려고 공연에 대한 정보는 잘 보지 않는 편이다. 공연 정보나 줄거리 등을 보면 그 틀 안에 갇히는 편이라, 항상 나중에 공연 정보를 찾아본다.
공연이 시작되고, 처음에 한 사람이 나와서 의자를 밟아가며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허공을 바라보며 헤매는 느낌이었고 직접적이고 설명적인 공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등장한 한 원을 빙빙 도는 사람. 위태롭게 뛰고 있었는데 목적 자체를 잃은 듯 보였다. 역시 설명적이었다. 그래도 조금 궁금했던 건 이런 설명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는 공연이 어떻게 끝까지 이야기를 풀어 낼 지, 였다.
또한 한 여인은 자신의 옷을 주우며 껴입고 있었고(사실 이 장면과 비슷한 장면을 다른 공연에서 본 적이 있어서 무용 또한 다른 예술과 비슷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구나 싶었다.), 다른 남자는 속에 썩혀 있는 것들이 그의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보였고, 또 다른 남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 같았다.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다 여자의 발작. 한 남자는 위로해주려 그녀를 껴안았고 극도로 불안한 그녀는 회피하고. 경쟁과 욕심으로 가득 찬 심리는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앞서 위로 올라가려고 경쟁하고 위에 있는 모습에 매료되어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싸움.
나는 공연을 보면서 항상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특징이 있는데 오늘은 원을 무한으로 뛰는 사람에게 집중했다. 춤에 대하여 많이 집착이 없어 보이는 몸동작이 좋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그 움직임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잔잔하면서 독특한 매력이 있는 그 몸짓, 힘없이 터덜거리는 것 같은 몸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그에게 매료되어 보았다.
여자의 발작은 마지막 순간에도 지속되고 남자가 여자를 껴안으면서 공연이 끝났다. 너무 아픈 공연이라서 마지막에 남자가 여자를 안았을 때, 울 뻔 했다.
안무가가 많은 걸 느끼며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욕심도 많고 포부도 크지만 자신 앞에 남겨진 건 목적이 희미하고 어딘지 모르는 길 뿐. 열심히 무엇인가를 부단히 하지만 자신의 길은 보이지 않고 남는 건 공허와 극도의 불안감. 사실 이전에 나 또한 느껴본 감정이라서 이 공연이 나에게 너무너무 아팠던 공연이었다. 나에게 있었다는 걸 잊고 살았던 그 감정을 이 공연을 통하여 다시금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포옹했을 때, 감정이라는 건 아주 깊게 느껴본 사람만이 알고 말로 표현하기 매우 힘들기에 현재의 나는 극도로 불안한 과거의 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꽤 많았다. 사람들이 모르는 고통. 보이지 않고 남들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지 못하는 게, 그들에게 설득하지 못하는 이 고통이 아팠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왜’에 집착하는 타인들. 사실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설득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들에게 상처받았던 나날들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좋은 공연이었다. 그 때의 기억과 감각들을 다시 회상시켜주고 그것에서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예술을 한다는 것에 큰 감사를 느꼈다. 아주 생생하고 깊게 살아있는 느낌을 내 작품을 통하여, 혹은 남들의 작품을 통하여 느꼈을 때의 그 감정의 움직임이란 삶의 생생함에 기여하기 때문에. 그러한 감각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주고 공연해준 안무가와 무용수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