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왕성 폭포

그리고 삶

by hari

여전히 바쁘게 사는 최근이다. 바쁘게 무엇인가를 파고드는 게 좋다. 무얼 찾는지 몰라도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깨닫고 행동하는 하루하루들.
최근에는 니체의 책을 읽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공부나 교제, 일이나 취미, 독서 등 무엇인가 새로운 일에 맞닥뜨렸을 경우의 현명한 대처 요령은 가장 넓은 사랑을 가지고 맞서는 것이다. 꺼리는 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 오해, 시시한 부분을 보아도 즉시 잊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며 전체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잠자코 지켜본다. 그럼으로써 드디어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그것의 심장인지 확연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좋다 혹은 싫다와 같은 감정이나 기분에 치우쳐 도중에 내팽개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넓은 사랑을 갖는 것. 이것이 무언가를 진정으로 알고자 할 때의 요령이다.


이 구절이 좋게 느껴졌던 까닭은, 나는 항상 무엇이든 깊게 파고드는 습관이 있으나 내 마음 자체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 분주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그들의 말에 의하여 왔다갔다 치우치기 바빠 어차피 끝까지 해야 할 일도 중간에 고민도 많이 하고 이곳저곳으로 마음이 자주 움직였다. 결론적으로 끝까지 완수하기는 하지만(성격상 포기를 잘 못한다.) 중간에 마음이 불편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년도 목표는 누군가에게 휩쓸리지 말자는 것이다. 나라는 기둥을 다시 만들어 내고 싶다.
미래에 대하여도 고민을 많이 하곤 했는데 사실 고민할 시간에 무엇이라도 찾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나는 그랬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찾으라고. 사실 기회는 언제든 주어질 수 있는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기회를 놓치기 마련이다.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무엇이든. 피카소는 자신은 어떠한 것을 찾기 보다는 기회를 붙잡고 절대로 놓지 않는다고 했다. 나 또한 지금, 나 자신을 길러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이번에 갤러리 coso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추상 미술이라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내 많은 힘을 담은 작품들이라 애정이 크다. 내면의 힘들에 집중한 작품들이라서 가끔 ‘저거 나도 하겠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많이 속상하지만 그래도 내 분신과 같은 작품들이다.

하리
mob. 죽은 물고기들만이 강의 흐름을 따라간다. 줏대없이 이곳저곳 치이며 흘러가는 것을 춤으로 표현한 무용을 보았고 그 에너지를 그렸다.
속도.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소름끼치는 안무와 음악들을 그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무가와 무용수가 출연했다.




매일 작업을 하다가 고등학생 때 친구와 즉흥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여행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쿠키앤 치즈였나? 그 케익을 들고 새벽 5시 30분에 해장국을 먹은 뒤, 6시에 지하철을 탔다. 7시에 버스를 탔고 미친 듯이 잠들었다. 눈을 떠 보니 강원도였다. 항상 해수욕장을 가다가 이번엔 속초 영금정을 갔다.

18에만 불이 붙었다. 이런 18~


열시 정도였는데, 햇빛에 비춘 바닷물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넋을 놓고 봤던 것 같다. 생각보다 따뜻했고 꿈꾸는 듯한 황홀감이 들었다. 아름다웠다는 말로 충분치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열두시 쯤에 어디를 갈까 찾다가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싶은 마음에 설악산 7-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설악산으로 향했다. 또 나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고 눈을 뜨니 설악산이었다.
그림 같은 장면이 눈앞에 있었고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다. 너무나 즉흥적이고 그림같고 현실성이 없었기에 꿈 속을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이후로 돌산은 가본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돌산의 그 장관에 넋을 잃었다. 사년 전에 정선의 금강전도를 모작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와서 정선이 왜 그런 식으로 산을 묘사했는지에 대한 느낌이 확 전달 되었다. 신기했다. 정선의 그림은 정말 극사실화였구나, 라는 걸 느꼈다.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겉모습 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집중한 그림을 그렸다고 하였는데, 책에서 배웠을 때에는 많이 와 닿지 않았다가 최근에 작업을 많이 하고 설악산에 와서 이러한 경험을 느낀 뒤로 예전 동양화가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내적인 에너지에 훨씬 집중하였기에 조형적인 사실성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컨버스화를 신고 등산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오히려 신발이 얇아서 돌의 느낌을 더욱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고 지압받는 기분이 좋았다. 산에 오르기 전에 안내판에 있는 스트레칭을 하고 돌을 쌓아 올리며 기도를 했다.
계곡이 나왔는데 추운 날씨 탓에 물이 다 얼었다. 하지만 속에서 물의 흐름이 들렸다. 위에서는 망치질 하듯 딱따구리가 울었고 얼은 물들은 태양빛에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름다웠다.


삼십분 거리를 거의 한 시간 넘게 올라갔다. 멈출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었기에 우리는 계속하여 멈추어서 그들을 관찰하고 다시 올라가고를 반복했다. 중간에는 큰 바위에 누워 잠들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 얕은 태양빛이 따스할 정도로 내리쬐는 그곳은 아주 평화로웠다. 모든 것을 잊고 나 자신이 미세한 존재이지만 그 미세함을 행복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자연들. 아주 작은 존재이기에 모순적으로 더욱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었던 경험. 좋았다.


비룡폭포는 얼어있었고,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폭포라서 별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곳을 가기 위한 길들의 경치가 더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비룡폭포가 아닌 토왕성 폭포였다. 꽤 추워졌고 900개 이상의 계단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비룡 폭포를 보았기에 토왕성 폭포도 그것과 비슷하겠거니 해서 가지 말까, 생각했는데 이왕 온 거 올라가자는 마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친구는 고소공포증이 있고 나는 빈혈이 있다. 올라가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벌어진 계단 사이로 추락하면 바로 죽는 것이었는데, 그리 무섭진 않았다. 사실 다리를 건너올 때에도 바람 때문에 굉장히 많이 흔들렸는데 오히려 떨어지면 바로 죽겠거니 하는 생각에 더 무섭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한테도 말했다. 어중간하게 다쳐서 고통스럽게 사는 것 보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바로 즉사이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ㅋㅋ)

그리고 계단을 오를수록 끝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다른 산들은 그래도 끝이라는 감 조차 있는데 이곳은 끝이라는 감 조차 없었던 것 같다. 포기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목적지가 아예 보이지 않아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사실 포기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무엇인가 내 뒤에 떠밀려 가는 기분까지 들었다. 엄청 힘들었지만 어차피 등반한 뒤 다시 내려갈 것 더 힘든 뒤 내려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올라갔던 것 같다. 차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저 올라갔던 것 같다. 안내판에는 0.3km 뒤에 도착이라고 써져 있었지만, 아예 폭포는 보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걸음 내딛으니 정상이었고, 거짓말처럼 폭포가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숭고하고 경외감까지 드는 장면이었다. 자연의 경외감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다. 너무나 숭고해서 무섭다는 표현마저 아까울 정도의 경외감이었다.
오르면서 삶의 과정에 대하여 많이 느꼈다. 사실 정상이랄 것도 없고 목표라는 것도 어찌 보면 등반하는 것처럼 다시 내려가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엄청 힘들 때, 아주 조금만 발을 디디면 고지가 갑자기 보인다는 것을. 정말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아주 소중하고 커다란 것을 느낀 날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등반을 한 뒤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신과 위로를 주었다. 너무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삶에서 완성은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걸.
내려갈 때에는 거의 30분 만에 내려갔다. 집 까지 가는데 또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2층 아저씨와 당구 치다가 박살나고 골프 치다가 박살났다고 하셨다. 잘 지내고 계셨으면 했는데 꽤 잘 지내고 계셔서 좋았다. 나와 아빠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었는데, 점점 내 진로가 확고해지면서 과학과 자연히 멀어졌다. 미대에서는 과학 점수를 보지 않았기에, 대학을 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만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도 과학을 한 적이 없었다. 중학생 때 과학과 수학을 제일 좋아해서 밤 하늘의 달의 모양을 분석하고 느끼곤 했는데 요즘에는 어떠한 원리로 달 모양이 바뀌는 지 다 까먹었다.
작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뉴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우주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철학적이라서 매료되며 읽고 있다. 사실 사람들이 우주를 알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미세한 존재인가에 대하여 좌절하곤 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우주의 존재를 통하여 미세한 존재인 나 자신이 위로 받는 느낌이다. 그 광활하다는 표현조차 담기기 힘든 우주 속에서 아주 미세한 존재인 내가 어떠한 사건, 어떠한 수치를 겪어도 그것은 사실 별 것 아니라는 위로. 사실 별 것인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우주라는 광활함에 위로를 받는다. 태양 챕터는 다 읽었고 지금은 지구에 대하여 읽는 중이다. 완벽하게 이해 되기 보다는 그 흐름대로 읽고 있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게 아까워서 항상 꽉꽉 채우며 살고 있다. 아주 바쁜 와중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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