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추거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다. 내가 겪은 현실이지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용기를 내서 이 이야기를 푸는 것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꺼낸다.
세상은 여러 에너지들의 파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지구에 온 목적은 너무나 간단하다. '사랑'이다. 사랑의 실천만이 우리를 살게하고 우리가 사는 것이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잘 울었다. 욕구불만도 많았고 감정이 지나치게 픙성하고 왕성했다. 그것은 불안정적인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있지만, 선천적으로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에너지를 지니고 태어나고, 태어나는 순간에 고통을 안고 태어나는 이도 있다. 그것이 나다. 아주 예민한 정신적 고통에도 커다랗게 반응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나 스스로와 세상간의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스물 한 살때 일이 터졌다. 심한 우울증이 왔고, 그 원인과 이유와 상황은 사실 간단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자발적으로 우울의 속으로 들어갔다.
우울이라는 것은 고질적인 기생충과 같은 전염병이다. 자신이 우울 그 자체라고 착각하게 되고,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노력한다. 왜냐하면 우울의 목적은 그것이다. "나 우울해. 위로해줘."
사람은 누구나 자발적으로 정신적으로 혼자 설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우울이라는 것은 그 힘을 과소평가하고 짓밟으려 한다. 그것이 우울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타인에게 기대고, 스스로 제 발로 서지 않고자 한다. 우울은 일종의 다른 방식의 사랑 표현이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감춘 거짓 사랑이다.
엄청난 우울과 악에 매료되어 있다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그 끝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울의 끝은 없다. 그냥 무한 우울의 반복이다. 너무 깊고, 끝없는 깊은 바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스스로의 숨을 죽이며 그곳으로 내려가고 있는 무의미한 행위를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올라오려고 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다행히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다.
그리고 나는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서서히, 천천히,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무런 과장 없이 그 때의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빠져나오기 직전에, 내가 잘 보이고 싶어하던 사람과 카톡을 주고받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 집에서, 어렸을 때의 사진을 보며 말이다. 그 날 부모님 집에서 내가 약 다섯살 때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 사진 자체가 충격이었다. 나는 분명 우리 엄마를 증오한다고 생각했는데 기억 나지도 않는 그 사진의 장면을 보자마자 원초적인 사랑이 올라왔다.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이성도 아닌, 무엇이라 말 할 수도 없는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에 충격을 받고, 나는 나 스스로를 믿기 시작했다. 그것이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내가 잘 보이고 싶어했던 사람이 나에게 '멋있다' 라는 말을 하자마자 이전까지의 잘 보이자했던 모든 수고가 마치 물거품처럼 허황된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자 하는 것은 사랑을 구걸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보이진 않지만 사랑으로 자연스레 연결된 존재들이다.
그 때부터 나는 다시 정신적으로 신생아가 되었다. 순간을 선택하는 일 부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입장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법,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도 다른 의견때문에 우리는 헤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는 다시 현재 이 순간에 돌아온다. 우주는 우리가 성장을 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한 가지 상황에 대하여 해결하지 못했을 경우, 그 상황을 미래의 어느 지점에 다시 놓고 우리의 대처능력을 키워준다. 그것을 인지하며 행동하면, 그 상황에 대한 분별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다. 과거에 본인이 어떠한 행위를 하였건, 단 한 순간의 파장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단 한 번이면 부정적인 파장이 긍정적으로 파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그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단지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내가 경험한 수많은 신비들, 업장에 대하여 대처하는 것들, 물질적인 것에 대한 환상.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고 그것은 수단이다. 우리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이해관계에 얽매이고, 우리 존재를 그저 그것밖에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가끔 '현실의 벽' 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환상이고, 마음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 자신이 욕망없이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 용기만 있디면 우주는 그것을 도와준다. 진심은 통한다.
나는 사람들이 정말 단순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주 많은 편견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과소평가 하지 않고,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고, 너무 혼자서만 고립되지 않고, 더불어서 순수한 아이처럼 돌고래처럼 서로서로 돕고 나누면서 살았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다. 사랑, 그것은 본질이다.
우리는 하나이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는 숲이고 한 인간과 한 존재의 압축판인 셈이다. 우리는 숲의 하나의 나무이고 몸의 하나의 장기이다. 전체가 소중하듯, 그 한 존재존재가 소중한 것이다. 그 한 존재가 아프거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전체가 서서히 아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의 균형을 조절하기 위하여 신은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것을 한 순간 깨우치게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깊은 우울에 빠져있다가 나를 다시 살려준 것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전파시키며, 삶에 대한 사랑을 전파시키며 다시 살으라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덤으로 삶을 다시 선물 받은 것이라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있는 그대로의 것들에게 자기 자신이 오해하는 생각과 감정과 마음을 덧붙이며 사람들이 싸우며 오해하며 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며, 서로의 다른 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토닥이며, 우리가 우주 전체라는 것을 인지하고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있고 하나라는 것을 느끼며 다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