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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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어렸을 때

-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이니

라는 대답에 항상 /푸른색이요, 하늘색이요./라고 하곤 하였다. 괜히 여자 아이들이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나는

- 하늘색이 좋아요.

라며 말하곤 하였다. 확정적으로 그 색을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분홍색을 좋아해야 한다는 통념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두 가지의 원피스를 제일 좋아했는데 한 개는 푸른색의 긴 원피스였고 하나는 보라색의 긴 원피스였다. 다른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그 두 가지의 원피스를 반복하며 입었다. 그러다가 이모와 대전의 어떠한 곳에 놀러 갔었는데 그곳에 있는 철사에 원피스가 찢어졌었다. 보라색의 원피스 말이다. 그 찢어진 곳을 주머니로 만들어서 그 옷이 해질 때까지 입었었다. 푸른색의 원피스는 중학교 담을 넘다가 담에 원피스가 걸려서 그 옷이 허벅지까지 찢어졌었다. 아빠에게 업혀서 울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점점 내가 높아가며 좋아하는 색들이 다양해졌고 무슨 색이 제일 좋냐는 질문에 확실하게 어떠한 색이 좋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나는 모든 색깔들을 다 좋아하곤 하였다.

강박적인 우울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줄곧 검푸른 색으로 작업을 하였고 다양한 색을 쓸 때보다 내 색을 찾은 기분이어서 줄곧 그 색만 쓰곤 하였다. 그때에는 맑은 것에 관심이 없기에 그때의 글을 들여다보면 다 깊은 바다색이었다.

간간이 나의 푸르고 푸른 글을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하였다.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그 순간을 잃어버릴까 하는 아쉬움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날의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 쓴 뒤 그 글의 맑음이 느껴졌었다. 어느 순간부터 글의 슬픔보다는 글의 맑음 들을 더 따라가고자 하였던 것 같다. 점점 변해가고 있는 내가 흥미롭다.

작업을 한 뒤 내 손을 보면 푸른색의 물감들만 내 손에 덕지덕지 발려 있다. 손톱 사이에 껴 있기도 하고 손가락 끝에 묻어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 작업을 보았다며 어땠냐고 물어보면 파랗다고 하였다. 파랗고 파랗고 파란 작업들이다.

웜톤이었던 내 피부색 또한 쿨톤으로 변하였고-실은 원래 쿨톤이었는데 웜톤인 줄 착각하며 몇 년간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옷들 또한 차가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내 첫인상이 어떠냐는 질문에 차갑다는 말이 제일 좋았다. 차가움에는 여러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차가우면 멀어 보이지만 가깝고 차가우면 여리고 스러지는 이미지가 있다. 차가우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타인을 위해주는 마음도 깊다. 섬세하면서 예리하고 적절한 거리감 또한 있으며 무례한 행동 또한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차가움은 자기방어일 수도 있지만 아주 섬세한 감정이 들어있다. 차가움은 조심스럽다.

차가움에는 슬픔이 있다. 아주 차분한 슬픔 말이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슬픔은 기분이 좋다. 가끔은 눈을 감고 푸름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에는 따뜻함이 감추어 있다.

어제는 나의 가장 푸른 날이었다. 3월 22일은 내 생일이자 물의 날이다. 탄생석은 아쿠아마린이며 그것은 아주 맑은 푸른색이다. 나는 내 생일이 항상 싫었던 것 같다. 생일이라는 날은 기쁘면서도 슬픈 날이기도 하였다. 아주 중요한 날이지만 허무하기도 하고 기대를 하기도 한다. 항상 나는 나 자신이 그 기대를 깨버리기 때문에 슬프기도 하였고 오히려 생일 때마다 나를 고립시키기도 하였다. 그 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흥분하며 노는 것은 너무 낯설었고 그러한 소란 또한 싫었기 때문에 어릴 적 친구들과 모여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일에 지나라는 단짝 친구와 함께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곤 하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생일날에는 푸름이 과하여 항상 검푸른 색이었고 나는 그 검푸른 색을 이기지 못하여 항상 눈물짓곤 하였다. 어제 하루도 그러할까 노심초사하였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있는 나와 우울을 함께 한 친구와 뛰어다녔다. 그 친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하였다.

- 내가 제일 힘든 시기에 너를 만났을 때 너와 함께 있는 게 좋았어. 다른 사람에게 ‘나 죽고 싶어.’라 말하면 다른 사람은 나를 포개어 안아주곤 하였는데 너는 항상 나에게 ‘나도 죽고 싶어.’라고 하곤 하였지. 우리는 둘 중 한 명이 죽고 싶다고 할 때마다 다른 한 명은 나도 죽고 싶다 말하였고 그 감정은 더욱 격정적으로 변하곤 하였지. 술 마시고 아침 8시에 택시를 타서 아저씨께 마포대교로 가달라고 하였을 때, 아저씨가 우리를 말리지 않으시고 그곳으로 갔더라면 나는 이미 죽어있었을 거야.

우리는 그때에 비하여 아주 건강해져 있었다. 푸른 에너지가 넘쳐났고 나는 우리의 맑은 에너지가 보기 좋다고 생각하였다.

잠시 인터넷을 보았다. 세월호 인양 소식이 보였다. 한 개의 뉴스를 클릭해보니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주고받았던 카카오톡 대화창이 떠 있었다. 푸름이 있었다. 아주 깊은 의미의 푸름이 나에게서 떨어졌다. 세월호는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용한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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