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r와 closer

영화 클로저

by hari


* 어떠한 상업적인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며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져 있고 스포가 있는 글입니다.




아마 4년 전이었다. 오빠는 군대에 갔기에 나는 방을 두 개를 썼다. 오빠 방은 주로 나의 휴식공간이 되었

다. 그 때는 아마 12월인가 1월쯤이었는데 고 삼 입시중이라 일주일에 하루만 쉬었던 것 같다. 그 쉬는 날에 오빠 방 큰 거울 앞에서 영화 클로저를 처음 보았다. 그 이후로 삼년 동안 20번 넘게 이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앨리스의 의상과 머리와 외모를 보느라 분주하였고 두 번째에는 처음 이별을 겪은 뒤, 그 다음 부터는 여러 남자들을 만난 뒤 혹은 만나면서 보았던 영화였다. 나는 어느새 앨리스와의 공통점이 많아지기 시작했지만 나의 상대방들은 댄의 전반적인 특징과 비슷하기 보다는 조각난 특징들이 맞닿아 있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를 나와 비교한다면 ‘나’라는 앨리스 한 명과 여러 명의 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나에게는 소중하고도 아픈 영화였다. 근 1년 간 이 영화 대신 프랑스 영화에 빠져 있다가 이번에 메가박스에 단독으로 재개봉 하였기에 바로 달려가 조조영화로 보았다. 포스터만 10장 넘게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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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는 컬럼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의 이미지가 나오면서 동시에 시작된다. 영화 클로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나는 클로저를 생각하면 영화의 가장 앞부분이 떠오른다. 어두운 화면 속 빛이 들어오며 데이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의 노래가 잔잔하게 흐른다. 그 뒤 커다란 빨간 글씨로 closer라는 글씨가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closer란 무슨 의미일까? 첫 번째로는 close(가까운, 친밀한) - closer(더 가까운, 더 친밀한) 이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이중적인 의미로 closer(닫는 것, 폐색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왜 이러한 단어를 이 영화의 제목으로 붙였을까? 그것은 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본다면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낯선 사람들이 나온다. 그 첫 번째 만남이 앨리스와 댄이다. 그 둘은 서로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다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마치 이전에 만난 것 같은 친근함 웃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다가 앨리스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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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stranger.


그들은 초록색과 아이보리 색이 섞인 병원의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샌드위치의 껍질을 잘라내고 먹는 댄과 바다에 오줌을 싸기 때문에 생선(참치)을 먹지 않고 두 바늘 꿰맨 앨리스. 부고 기자인 댄은 앨리스에 대한 완곡 표현으로 ‘무방비 상태’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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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 상태는 앨리스가 겪은 교통사고일 수도 있고 앨리스에게 갑자기 들어온 사랑일 수도 있겠다. 그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떠한 위험 요소를 막아낼 겨를 없이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댄은 앨리스를 처음 만났던 당시 여자친구가 있었고 앨리스는 자신이 만나던 남자를 떠났다. 그녀는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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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한 뒤 떠났다고 하였다. 이 내용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이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클로저는 대다수 것들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중적인 동시에 큰 덩어리로 연결되었다는 해석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클로저를 볼 때마다 새로운 면들과 새로운 해석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랑을 주제로 한 달달한 로맨스 영화랑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뒤 비슷한 영화를 찾고자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을 보았지만 그것들은 현실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랑에 대하여 표현한 느낌이 강하였다. 이 영화는 어쩌면 사람의 감정과 심리에 대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어떠한 설명 없이 미래로 뛰어 넘는다. 앨리스와 댄은 동거를 하게 되고 댄은 앨리스의 삶을 빌린 책을 출간한다. 그 책의 프로필 사진을 찍던 도중 사진작가 안나를 만나 사랑을 느낀다. 여기에서 앨리스와 안나는 상반된 위치에 있는 인물 같다. 앨리스는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방랑자 같은 이미지를 지녔고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인물이다. 그것의 예로는 자신의 감정이 다 소멸되었다고 여겼을 때, 혹은 상대와의 관계가 완연히 끝났다고 느꼈을 때 그 관계를 연장시키지 않고 자발적으로 상대를 떠난다. 하지만 안나는 다르다. 능동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인 여성이고 현실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이 댄과 만나면 안 된다는 현실적인 사실로 인하여 그에게 감정이 끌림에도 불구하고 그를 쉽게 받아주진 않지만 항상 여지를 남긴다. 폐쇄적으로 마음의 벽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열려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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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앨리스를 보면 철없는 어린아이 같으면서 유심히 살펴보면 주체성 있는, 자기 세계가 뚜렷하다는 걸 느낄 수 있고, 안나를 보면 어른스럽고 현실적이며 온화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능동적이지 않은 인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댄은 그러한 둘의 상반된 이미지로 인하여 익숙해지고 안정적인 관계가 된 앨리스를 뒤에 놓아둔 채 안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는 그녀들의 상반된 특징을 둘 다 자신이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게 아닐까?

안나는 큐피트(댄)의 역할로 래리를 만나게 된다. 댄은 안나인 척 하고 래리와 성인 채팅을 하다가 래리에게 아쿠아리움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한다. 아쿠아리움은 안나가 자주 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나는 과정은 생략한 채 또 다시 영화는 미래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8.JPG 네 명의 주인공이 다 모였다. 앞에는 안나와 댄, 뒤에는 앨리스와 래리가 있다.

안나는 사진 전시를 하게 되고 그곳에 네 명의 주인공이 다 같이 모인다. 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주인공이 만나는 시퀀스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네모의 꼭짓점에 서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감성적이지만 변덕스럽고 이기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는 댄과, 사실에 집착하며 약삭빠르지만 감정적인 부분에는 무뎌 항상 외로워 보이는 래리, 차가운 척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방어기제인 앨리스와, 이타적인 척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숨기기 위한 방패로 내세우는 안나.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특징들을 한 움큼씩 쥐어 다르다가도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이 시퀀스에서 진실과 거짓에 대한 짧은 앨리스의 의견이 나온다. 남의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찍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사진들은 거짓투성이라 한다. 마치 진실이라는 것이 하나의 큰 덩어리라면 거짓은 그 진실을 감추기 위하여 예쁜 색으로 얇게 칠해져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이 합쳐진 그 덩어리를 쪼개지 않는 이상 거짓만 보게 되고 거짓의 예쁜 칠만 보고 아름답다고 여길 것이다.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논하는 것은 바로 이 관계인 것 같다. 우리는 분명 진실과 거짓이 합쳐진 큰 덩어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고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할 것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말이다. 어떤 이는 그 덩어리를 쪼개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덩어리를 쪼개어 적잖은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진실이라는 덩어리는 아주 적나라해서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고 해도 다시 우리를 확인 사살하는 동시에 어떠한 거짓으로도 포장하지 않은 것이기에 어쩌면 우리가 꺼려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러한 진실과 거짓의 관계는 아주 모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순수하게 진실이라는 것과 아주 순수하게 거짓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99%의 진실 속 1%의 거짓이 있다면 그것은 완연히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1%의 거짓 때문이다. 그러기에 누군가에 대하여 그 사람이 솔직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 특히 래리와 댄은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중요하게 여긴다. 래리는 안나가 댄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안 뒤 그녀에게 댄과의 성관계 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묻는다. 또한 거짓과 진실의 관계를 이용하여 댄을 이용하기도 한다. 안나와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 전 그녀와 성관계를 한 것도 댄이 그 사실을 안 뒤 안나를 떠나게 하게끔 하는 계략이 들어가 있었고 앨리스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댄에게 숨겼다가 후에

“실은 거짓말 했어. 알리스와 잤네. 끝까지 숨길 만큼 자넬 용서 못 하겠어.” 라고 한다.

래리는 진실이라는 꾸밈없지만 잔인한 것을 댄에게 건네 준 것이다. 그것을 건네받은 댄은 또 다시 앨리스에게 진실을 원한다. 앨리스에게 확인을 하고 싶은 것이다. 댄은 앨리스에게 그녀가 래리와 잤다는 진실을 원함과 동시에 포장되어진 거짓의 희망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댄에게 래리와 자지 않았다며 거짓을 내세운다. 그녀는 진실을 직시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진실을 내세우지 않아야 할 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주 생생한 진실 보다는 침묵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또 다시 미래로 넘어간다. 댄과 앨리스만 등장하는 시퀀스가 나온다. 그들은 한 모텔방에서 처음 그들이 만났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갔던 병원 의자의 색, 댄이 먹었던 샌드위치, 교통사고의 상처로 세 바늘을 꿰매야 했지만 두 바늘을 꿰맨 앨리스, 댄이 앨리스에게 말했던 ‘무방비 상태’ 이러한 이야기를 한 뒤 댄은 앨리스에게 래리와 성관계를 맺었냐는 사실을 물어본다. 그녀는 거짓을 이야기 하다가 댄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그녀에게 다시 확인을 하기 위하여 앨리스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는 진실을 안 뒤 댄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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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love you anymore, good bye.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안녕.

그녀는 처음 댄을 만났을 때, 댄이 그녀에게 남자를 어떻게 떠냤냐고 물었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댄을 떠난다. 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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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 – 제인 레이첼.



래리는 스트립 클럽에서 앨리스를 만났을 때 그녀의 진짜 이름을 원했다. 앨리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제인이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앨리스라는 대답을 원했다. 래리는 항상 진실을 원했고 자신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단언하였음과 동시에 그것을 이용하였지만 그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었다. 진실을 원했지만 알고 보면 거짓을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다. 댄 또한 마찬가지이다. 진실을 원했지만 간절하게 거짓을 원했기에 앨리스는 어떠한 진실도 혹은 거짓도 말 할 수 없이(혹은 다 말한 뒤) 그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낯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갔다.

10.JPG 앨리스가 댄과 처음 만났을 때 갔던 장소. 이곳에서 자신의 가명을 따와서 댄에게 자신의 이름을 앨리스라 소개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래리와 안나는 다시 만나 서로 같은 이불을 덮고 있지만 안나는 댄을 등지고 잠을 청하고 있다. 그리고 앨리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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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간 듯 첫 장면과 동일한 ost가 나오고 그녀는 낯선 사람들 사이를 당차게 걸어가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남자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는 댄이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댄 말고 다른 낯선 사람이 앨리스의 맞은편에서 그녀를 향하여 걸어올 듯이 말이다. 낯선 사람들은 그녀의 겉모습을 본 뒤 매료되어 다시 힐끔힐끔 혹은 대놓고 뒤돌아보며 그녀를 쳐다본다. 낯선 사람들이 말이다. 그녀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말이다. 그녀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 혹은 자신이 들키기 싫은 모습까지 다 본 뒤 그녀를 떠날까봐 미리 자신이 그 사람들을 떠나려고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속였던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품은 것 같다. 그녀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내보이기 두려웠던 것이고(혹은 진실을 내보일 필요성이 없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낯선 사람들은 ‘진실’을 원함과 동시에 모순적으로 ‘포장된 거짓’을 원했다. 가까워질수록 정보, 그리고 어떠한 치장도 없는 벗겨진 진실을 알려고 했기에 그녀는 그들을 닫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다시 낯선 것들을 가져온다. 진실이라는 것과 거짓이라는 것이 생성되기 전의 낯선, 거리감이 없는 것들. 그러기에 closer(더 가까운, 진실을 원하는)는 closer(닫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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