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절박하게 만든건, 어린 환자였다.

by 박지용

뇌수술을 많이하던 레지던트 시절 기억이다.

척추 수술만 한지 벌써 4년째가 되었지만

4년간의 레지던트 시절은 8할이 뇌수술이었다.


사실 뇌출혈 환자의 연령대는 대부분 고령이다.

똑같이 다쳐도 나이 많은 환자에서 뇌출혈이 쉽게 발생한다.

자발성 뇌출혈도 마찬가지다.

40대도 많은 동맥류 파열과 비만/고혈압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이다.

나이가 어린 환자가 뇌수술을 하는 경우는, 확실히 적은 편이다.


하루는 응급실에 10대 후반 남자애가 크게 다쳐서 왔다.

CT 결과는 외상성 뇌출혈.

수술까지 가는 외상성 뇌출혈 대부분은 정맥이 찢어져서 피가 난 경우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출혈이다.


그런데 젊은 환자는 조금 다르다. 두개골이나 뇌를 덮는 경막위 동맥이 찢어진 경우가 많다.

동맥파열은 정맥파열과 다르다. 확연히 다르다.

정맥파열은 피가 줄줄 흐르지만, 동맥파열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온다.


환자의 상태도 똑같다. 동맥파열은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관심 많은 분을 위해 추가설명하면, 정맥파열은 보통 뇌와 뇌를 덮은 경막 사이에 피가 차는 SDH경막하 출혈인 경우가 많고, 동맥파열은 경막과 두개골 사이에 피가 차는 EDH경막외출혈인 경우가 많다)

CT소견으로 SDH, EDH 구분하는건 모든 의대의 족보입니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했다. 눈빛이 조금 피곤했을 정도 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횡설수설 대화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의식을 잃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도는 밈 같은게 있다.

'수술을 해도 죽고 안 해도 죽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들이 뇌수술 설명할 때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설명을 많이 해보긴 했다.


하지만 젊은 환자는 다르다.

수술이 얼마나 빨리되느냐,

이 환자의 경우엔 30분 차이로도

걸어나갈 수도 있고 식물인간이 될 수도,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브레인 파트가 정말 힘든 이유다. 새벽에 응급수술이 너무 잦다)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EDH, arterial bleeding
그것도 10대의 어린 환자!


거기서 다급하고, 절박해지지 않는 신경외과 의사가 얼마나 있을까?

(수술방에서 머리 소독 전 동공에 불빛을 비춰보니 한 쪽 동공이 풀려있었다. 그야말로 초응급 상황)


절박한건 의사 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깐깐하던 마취과 선생님들도 상황 설명에 서둘러주셨고,

수술방 어시스트와 스크럽을 서주던 간호사 분들도 최선을 다해주셨다.


메스로 머리를 크게 째면서 나오는 출혈은 최대한 생략.

평소 같으면 보비나 바이폴라 같은 소작기로 지혈하면서 출혈을 잡으면서 했겠지만,

정말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라 피가 나더라도 클립만 쓰면서 빠르게 진행했다.

'레이니 클립' 두피를 저런 파란 클립으로 찝어서 지혈한다. 출처:surgicaltechie.com

이후 머리에 드릴로 구멍을 세 개 뚫는다.

새끼손가락 들어갈만한 구멍 사이로 딱딱히 굳어있는 피덩어리가 보인다.

이어서 다른 드릴로 구멍들을 서로 연결해서 잘라내고 손바닥만한 두개골을 들어낸다.

드릴로 구멍 사이를 연결하는 그림. 출처:Aaron Cohen-Gadol M.D.


SDH의 경우엔 경막까지 째야 그 밑에 피가 있는데,

EDH라서 두개골만 열면 피덩어리가 바로 나온다.

피덩어리를 봤다면 이제 감압은 완료 된 것이다.

여기부턴 천천히 수술해도 된다.


출혈부위를 확인하고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지혈을 마치고

평소와 같이 꼼꼼하게 수술을 마무리했다.


결과는 좋았다. 정말 다행히도.

동공이 풀릴 정도라서 솔직히 한쪽 팔다리는 잘 못 쓰게 될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히도 걸어서 퇴원했다. 1달 정도만에.


사실 정말 잘 해드리고 싶은데 결과가 안 좋은 경우도 많았다.

안 좋은 기억도 많았기에 그만큼 절박하게 매달렸던 기억이다.



절박함이 보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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