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전반부 읽는데 한 달, 후반부 읽는데 하루가 걸리는 책."
1/3쯤 읽고 완독하는 것을 포기했다가 다시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누군가 남긴 이 한줄 리뷰 덕분이었다.
초반과 중반부의 지루함을 견디고 끝까지 읽는다면 당신에게 또다른 진리가 펼쳐질 거라 확신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당대 최고의 분류학자로, 평생에 걸쳐 물고기를 수집해 이름을 붙이고 종을 분류한다. 말 그대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자이다. 그는 결국 우생학을 옹호하는데까지 나아가는데, 인간과 어류가 다르고 어류 중에서도 종이 다르듯 세상은 '우월하고 열등한 존재들'로 구분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구에게 넌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 - 본문 중에서
그러나 그가 죽음 직전 맞닥뜨린 진리는, 자신이 온 생애를 바쳐 분류하려고 애썼던 '물고기'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가 열등하다고 치부했던 존재들(장애를 가졌거나, 인종이 달랐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숨을 불어넣으며 삶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이." - 본문 중에서
세계의 불가해함을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임의로 그어놓은 모든 선과, 기준과, 편견의 잣대를 지워버리고 혼돈 그 자체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나는 곧잘 누군가를 판단하고 쉽게 결론지어 버리곤 한다. 학벌, 부, 사회적 지위 등으로 모든 것이 수직계층화 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얼만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때때로 내가 가진 조건들로 스스로를 '저 사람보단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무서워지기도 한다.
내가 판단한 사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매번 질문하면서 살아가는 것.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규정지어버리지 않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다정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